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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Mar 11. 2021

댄스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다시 한 번

 댄스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내 수중에 돈은 55만원. 20만원 정도 들어올 돈이 있다고 해도, 한 달 12만원 하는 댄스학원을 여기서 끊기엔 출혈이 크다. 그래도 다니기로 했다.


나도 사실 머리론 납득이 안 됐다. 그래서 온갖 이유를 가져다댔다. 방에 곰팡이랑 습기 때문에 피부병이 또 생기려 하니 집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 싶어서. 몸을 너무 움직이지 않으니 더욱 무기력에 빠져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몸의 모든 곳에서 고장을 일으킬 것 같아서. 같이 사는 사람을 마주쳐야 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이런저런 핑계를 가져다댔지만 진짜 이유는 그냥 춤이 추고 싶어서다. 가난해도 예술을 놓으면 안 된다. 굳이 나뿐만이 아니다. 누가 되었든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예술과 문화를 놓으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죽어 간다. 영혼이 말라비틀어져간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약은 독을 잘 쓰는 것과도 같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예술은 독이다. 어쩌면 중독일지도 모르겠다.  삶을 갉기도 했지만, 놓을 수 없다. 이런 독이 없지만 이런 약도 없다. 없으면 죽겠다. 다른 사람들이 어떨진 모르겠다. 배부른 소리고 철없다는 이야기도 질릴 만큼 많이 들었다. 그래도 못 놓는다.


주위 반응은 이쯤 되면 지겹다. 보통 비슷하다. '철 들어라' 부터 '그래 뭐 니 인생 니가 조지겠다는데' 라는 눈빛을 한 채 '어, 하고 싶은 일 하는 거 좋지 뭐' 라는 말도 듣고, 그 다음에 '내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도 많이 들었다. 나도 안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예술가라고.


그래도 변명은 했다. 몇 번은 고흐 이야기를 했다. 지금에야 어마어마한 미술의 대가로 추앙받는 그지만 그는 살아 있는 내내 정신병과 우울증, 생활고에 시달렸다. 죽어서 빛을 본 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어땠을까. 그는 항상 우울해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었다. 그래도 그렸다. 그를 갉아먹고 인생에 들러붙은 우울을, 본인 스스로의 생명을 태워  그림을 그렸다.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예술이란 존재한다. 아득하고 막막한 현실에서 예술이 있어 그나마 버틴다.


나는 고흐가 아니다. 고흐 얘기를 꺼내면 '근데 넌 고흐가 아니잖아' 라는 눈빛을, 가끔은 대놓고 핀잔과 '걱정해서 하는 말'을 듣는다. 그치. 나는 고흐가 아니다. 헤밍웨이도 아니다. 세상에 빛을 못 보고 존재조차 잊힌 채  스러져간 수많은 예술가와 다를 바 없다. 가끔은 내가 예술가는 맞나 싶을 때도 있으니. 하지만 웬만한 일은 이성적이어야 하며 형틀격식에 맞아야 된다고 믿어 의심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이라도 포기할 수 없는 예술이란 존재한다.


20대 초중반, 여행을 가면 꼭 스피커를 챙겨 갔다. 그냥 길바닥에서 틀어 놓고 춤을 추고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엉성하고 조잡하기 짝이 없는 춤을,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것마냥 췄다. 그때도 부스러기 같던 자존감은 '그래도' 내가 설정한 무대 위에서만큼은 순간이나마 가려 놓았다. 그때의 영상을 보면 웃긴데, 내가 너무 진지해서 또 숙연해진다. 그래, 댄서는 그래야 하고 나아가 예술가란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느꼈다.


춤을 처음 배웠을 때 선생님은 '네가 아무리 못난 걸 알아도, 그게 눈에 보여도 춤을 추는 순간엔 세상에서 제일 잘 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돼' 라고 했다. '그래도 아닌 걸 알잖아요?' 라는 말에 그는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가장 오랜 춤 친구이자 선생인 휘는 '업으로 해서 돈을 벌지 못하고, 원밀리언 같은 곳에 강사로 있지 못하면, 인스타그램에 수백 수천 명의 팔로워가 없으면, 그러면 댄서가 아니에요?' 라고 내게 물었다. 앉아서 고개만 음악에 맞춰 까딱거리는 것도 다 춤이랬다. 모두 예술이랬다. 그는 내게 형은 분명히 댄서고 예술가라고 한 글자 글자 힘을 주어 말했다.

 

 공과금과 월세, 각종 경조사비 따위에 치여 결국 예술을 놓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래도 다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나설 것이다. 어떻게 돈 10 만원이라도 만들어서 연습실이 있는 학원을 알아보던지, 그것도 아니면 공터를 찾아나서겠지. 그렇다. 이런 삶이 있다고 믿는다. 아무런 의심없이 풍차에 돌진하던 돈키호테처럼. 고흐처럼. 세상엔 말과 언어로 정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걸 놓치지 않고 살고 싶다.


지금 내게 살 공간을 제공하는 사람은 춤을 왜 춰야 하고 내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더 중요한 일' 에 쓰거나 모아야 한다고 한다. 그에게 이건 네가 담배 못 끊는 거랑 조금은 비슷하다고 말할까 하다가 참았다. 이해를 차마 구할 수 없을 걸 아니까. 그냥 그런 욕구의 존재, 나라는 존재를 인정만 해 준다면 충분히 감사하다.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에 예술이 꼭 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나의 능력과 노력의 부재 역시 잘 알고 있기에. 춤과 글이 실질적으로 통장에 숫자가 되어 찍힌다면 그보다 안도가 되는 일이 없겠지만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지 안 그럴지 알 수 없다. 이런 엉성한 예술의 소비와 생산 그 언저리에서, 발목께나 오는 물을 찰박거리는 나의 수준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내 손에서 놓치지만 않는다면 그것대로 안주하고 살 수 있을 거다.


뻔한 말이지만 한때는 음악이 내 전부였다. 음악을 관둔 후엔 춤이 나를 구원해주길 바라기도 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지금 비중을 크게 두는 건 글이다. 하지만 이제 와 글이 나를 구원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형태를 바꿀 뿐, 예술이라는 존재가 내 곁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으면 되고 너무 흐려지지 않기만 하면, 이럭저럭 살 수 있다. 예술은 구원이 아니다. 그냥 내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공기 같은 거지.


스티븐 킹은 꽤 오랜 기간 다른 생업을 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내 존경과 질투를 동시에 사고 있는 한 유튜버는 생업을 가지고 자신의 예술을 후원하라고 했다. 나도 그러려 한다. 하지만 너무 멀어지는 것만은 싫어 학원을 가기로 했다. 이곳은 낙후된 동네라 연습실에 돈을 냈다고 생각한다. 너무 멀리 가지만 않으면, 언젠가 내가 나를 후원할 수 있겠지. 내가 원하는 글과 그림, 춤을. 언젠간. 예술을 놓지 않고 덜 전전긍긍하며 살 수 있겠지.


댄스학원 결제했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니 최근 돈을 벌었던 내역을 생각하면 동기가 '학원비 벌어야지'였다. 막상 코로나 상태가 심각해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일신상에 큰 일이 생겨 학원을 못 갔을 뿐. 결국 돌고 돌아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학원비 말고 돈을 쓴 거라곤 프로젝터를 사 영화를 보는 거였으니. 이런 쫌쫌따리 예술 덕후가 사는 방법은 당사자가 생각해도 웃기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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