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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Feb 26. 2021

실비보험 없이 사는 삶

뼈가 부러져서 다행이다

나는 실비보험이 없다. 귀마개를 제대로 끼지 못한 채 급하게 들어간 사격훈련 이후 한 달 정도 모든 소리가 나야 할 소리보다 낮은 음으로 들렸고, 의사는 소음성 난청을 진단했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그걸 이유로 가입을 거절했다. 다행히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청력은 회복되었지만 나는 그때 이후 실비보험을 넣을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한 달에 내가 쓰는 개인 용돈이 적으면 5만원, 많으면 20만원 정도이던 시절 꾸준하게 나갈 돈이 생긴다는 건 차라리 공포였으니까.


가끔은 내가 의사표현을 똑바로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조교가 무서워도, 사격장의 분위기가 무거워도 귀마개가 제대로 꽂히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었어야 한다고. 다들 조용한 분위기여서 그걸 깨지 못하고, 말을 차마 못한 게 후회로 남는다.


엄마는 내 걱정이 되면 항상 나를 혼내곤 하신다. 조심 좀 하지, 이러면 보험 못 넣잖아 하면서 타박. 어릴 적 친구랑 놀다가 머리가 깨져서 온 날도 뭐 비슷했다. 다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 걸 알지만 엄마는 참 표현에 서투르다. 안다. 다 나 좋으라고 그러는 건데 뭐. 그래서 한동안은 잔병이 있어도 병원에 안 갔다. 못 갔나? 기록이 남으면 실비를 못 넣는다나. 자주 체하는 나는 그래서 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래도 정말 골골대면 엄마도 맘이 약해 병원에 얼른 다녀오라고, 엄마 카드로 결제해, 그러곤 하셨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지금은 실비를 넣을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발이 찢어져 꿰맸고, 갈비뼈가 부러져 진통제를 몇 주치 받았다. 곰팡이성 피부병이 생겨 병원을 다녀오고 약을 처방받았다. 이 세 가지 일이 모두 한 달도 안 되어 일어난 일이고, 작년 하반기부터는 어깨가 좋지 않아 계속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그 많은 약봉지가 끽해봐야 진통소염제 등이라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다. 이런 글을 내 이름을 걸고 쓴다는 것 자체가 나중에 보험 심사에서 짤리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순간 들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니 나도 참 나다 싶다.


갈비뼈가 부러졌단 진단을 받은 날, 내 증상은 맹장염과 비슷했고, 주위의 간호사 지인은 맹장염이나 요로결석을 의심했다.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병원에 갔다. 큰 병원에 가는 시간을 놓쳐 목요일 저녁에 간 가정의학과에서는 여기저기를 눌러 보더니 간이 부은 것 같은데? 하고 의뢰서를 건넸다. 걱정이 커졌다. 간이라니. 그거 진짜 큰 일 생길 때까진 티도 안 나는 장기라며.  금요일에 2차 병원을 갔다. 진료를 거부당했다. 내가 타 지역에 주소지가 되어있던 까닭이다. 2주는 무슨 4주씩 집 안에서 꼼짝도 안 한 인간이, 본가에 있을  땐 시내버스를 한 달 반 넘게 타지 않고 가장 멀리 간 곳이 아파트 분리수거장인 사람인 나를 열심히 어필했으나, 병원은 냉랭했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검사는 다음날에 나온다고 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증상이 맹장염이라고 계속 의심하고 있었고, 나는 불안했다. 토요일에도 병원은 열어요, 응급실로 오시면 되세요, 하고 뜨악하게 말하는 접수원의 말에 나는 '돈이 없어서 토요일에  수가 없다구요' 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간 병원에서 검사를 했다. 엑스레이, 초음파 검사, 피검사. 점심 시간이 겹쳐 한 시간 반을 더 떨었다. 병원에 같이 가준 친구에게 괜히 괜찮은 척을 했지만 진짜 속으로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끝나 다시 간 병원에서 덜덜 떨며 신청한 피검사의 결과를 들었다. 내 수치는 모두 정상이었다. 뜬금없이도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금이 갔는데 생활하다가 본인도 모르게 틀어져서 결국 부러진 걸로 보인다고. 지금까지의 증상은 뼈가 신경을 눌러서 그런 걸로 보인다고. 그때 나는 뼈가 부러졌다는 말에 정말 크게 안도했다. 나는 뼈가 부러져서 다행이란 생각을 살면서 처음 했다. 초음파 비용도 뼈가 부러진 거라며 보험이 되는 걸로 처리해 주었다. 4만 원 정도가 덜 들었던가 그랬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안도와 웃음, 울음이 잔뜩 섞인 숨을 픽픽 뱉었다. 입은 웃었고 눈에선 눈물이 났다.


만약에 이랬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이나 내가 보험비를 꾸준히 낼 만큼의 여건이 되었더라면. 앞으로 다칠 일 없으면 되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의사가 내게 난청 진단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뭐 그런 생각. 이미 지난 일을 꺼내 씹는 버릇은 도무지 고쳐지질 않는다.


우울증 10년 차, 나는 약 없이 지내 왔다. 정확히는 약값은 감당을 못 하겠고, 부모(정확히는 엄마의 반대로. 아버지는 내가 우울증이 있는지조차 정확하겐 모른다)의 반대로 인해 병원에 못 가서. '너 보험 못 든다' '너 취업 못 한다' 의 이유 등으로 인해서. 요새의 증상이 몇 년 전보다 심하진 않다. 그래서 생긴 여유는 '보험이 있었으면 그래도 정신과를 찾아가는 데 덜 망설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몇 년 전보다 안정된 지금이야말로 차분하게 약을 먹으면서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은 욕구가 드는데, 내 통장도, 업이 없는 현실도 나를 주저하게 한다. 보험을 넣으면 감당은 할 수 있을까. 거부당하거나 내가 여기저기 아팠던 것 때문에 보험비가 비싸진 않을까.


기껏 번 돈은 도움이 별로 되지 않았다. 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뿐. 번역일 깔짝, 조사원 일 잠깐, 또 다른 조사원 일 몇 달. 먹고 사는 데에 어마어마한 지장이 현재까진 있지 않았지만, 꾸준한 돈이 나간다는 생각을 하면 무섭기 그지없다. 핸드폰비는 또 어떻고. 나는 한 달 25000원짜리 요금을 쓴다. 불만은 없다. 다만 버스를 타곤 할 때 신기하긴 했다. 드라마를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는 삶은 집에서 보고 싶은 영상을 핸드폰에 다운받아 오는 나의 삶보다 조금 나을까 하는 궁금함은 있다. 32기가의 공간에서 이걸 지우고 저걸 지워서 공간을 만들지 않아도 될까? 내 핸드폰 기종은 아이폰 6s. 핸드폰을 사던 시점에 이미 아이폰 8인가 뭔가가 나온 시점이었다. 벌써 기종이 12까지 숫자를 붙이고 나온 마당에 나는 약간 서글퍼졌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새로 핸드폰을 할 돈이 없어서 나는 새 핸드폰에 별 관심이 없다라고 안주해 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돈이 없어서 서글프단 얘기가 보험으로 빠졌다.


얘기가 길었지만 내가 돈이 없어 보험을 못 든단 얘기다.  우울증 약을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하고, 성인 ADHD 검사도 한번 받아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속상하다. 올해 5월인가 7월부터는 실비 들기가 깐깐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문득 생각나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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