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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Feb 15. 2021

재능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은 해야

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재능이 없다. 춤을 추는 게 그랬고, 연기가 그랬다. 그림도 노래도, 그리고 글까지 사실 나는 재능이 전혀 없다. 쓰는 나도 마음 아프지만 사실이다.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려 하면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문장이 머릿속에서 띄엄띄엄 둥둥 떠다닌다.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성인 ADHD인가. 여튼, 책을 덮고 글을 써 볼까. 핸들을 놔 버린 채 갈팡질팡하는 문장을 곧 마주하게 된다. 나만 좋아하는 다른 분야들도 비슷비슷하다. 대학 시절 공연했던 뮤지컬의 단장은 '너 춤 되니까 뽑은 거야 노래랑 연기는 좀 아니지'라고 했다. 오, 그럼 춤은 그럼 좀 낫나? 학원에 가면 나보다 몇 배는 짧은 기간을 춘 아이들이 그 몇 배만큼 잘 춘다. 빨리 배우고 습득한다. 나는 동작조차 따라가기 벅찬데 진즉에 안무를 외우고 느낌까지 살리는 아이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자주 봤다. 반면 나는 가끔 박자조차 잘 타지 못하는 모습을 거울에서 볼 수 있다. 그쯤 되면 내가 가엾다. 그런 날은 괜히 우울하다.


어설픈 재능은 가장 큰 족쇄이자 저주라지. 한때는 꿈이었고 지금은 꿈에서 한 단계 내려와 취미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분야가 몇 있다. 춤,노래,그림 뭐 그런 거. 한때는 내가 쉴 곳이었고, 도달하고 싶었던 곳이었다. 기대어 울 곳이었다가, 나를 울리는 무언가 이기도 했다. 사실 둘이 종종 역할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원래 둘은 같은 존재일 것이다. 동전처럼. 어쩌겠는가. 나만 좋아하는 관계는 이런 것을.


그중에서도 몇 년간 가장 애증의 분야에서 내려오지 못한 둘. 춤과 글.  몇 번의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쉽게 늘지 않는 구독자 수를 보면  속이 쓰리다. 내 글을 다시 찬찬이 훑어본다. 안 읽힐만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수긍과 함께 우울감이 찾아온다.


춤도 뭐 비슷하다. 작년 초에 학원의 발표회에 한 파트를 맡은 것을 마지막으로 공연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작년은 이런 일, 저런 핑계, 이런 변명으로 인해 거의 추지도 못했다. 돈 벌고 아프고 하는 거야 짠한 일이지만 결국 나만의 문제다. 하루를 쉬면 이틀을 날린다는 말이 생각나 초조하다. 내 실력이 나도 모르는 새 더욱 퇴화하고 있을까 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나는 취업을 해야 한다. 몇 주 전을 기점으로 사는 지역도 바뀐 마당에 춤은 사치에 불과하다고 속으로 계속 중얼대게 된다. 추고 싶지만 눈 앞의 현실을 뒤로하고 갈 수도 없고, 가도 실망할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나는 속상한 수준일 테니까.


하지만 이 모든 투덜거림에도 나는 계속 글을 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으니까. 11월 언저리부터 나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매일 하기로 마음먹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내가 어느 한두 분야에서라도 꾸준했다는 자기만족이 필요했다. 그런 계기로 시작했다.


글을 쓰지 못할 정도의 꽤 큰 일도 한 번 있었다. 반쯤 독립한 날. 하지만 그 날조차 뭔가 적혀는 있다. 그 날 이후엔 '의욕이 없고 심란하다' '적당히 대충'이라는 각 문장이 하루에 쓴 글의 전부인 날도 꽤 된다. 화가 많이 났었는지 욕 한두 마디가 적힌 날도 있다. 그래도 하루도 놓지 않았다. 그림도 마찬가지. 자기 전에 무조건 선 한번이라도 긋고 동그라미 하나라도 그렸다. 춤도 뭐. 다치지 않은 쪽 팔로 웨이브라도 하면서 놀았다.


뭔가를 좋아한다는 건 짝사랑과도 비슷하다. 상대와 잘 안 될 거란 걸 알아도 계속 붙잡고 있게 되는 핸드폰 같다. 연락이 오지 않아도, 답장이 오지 않아도 놓지 못하는 그런 거. 그래도 상관없다. 나만 좋아하는 사람이든, 일이든, 뭐든 하나쯤 있어도 괜찮다. 삶은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말해야 할 일이 앞으로도 많을 텐데. 그러면 내가 나 좋아하는 거 하나 정도는 덮어 놓고 해도 되지 않을까.


우울하거나 화가 많이 나는 날은 곰곰이 생각해본다. 오늘 같은 날은 생산을 해야 하나, 소비를 해야 하나.소비를 해야 하는 날은 음악을 골라 듣는다. 책을 읽는다. 영화나 만화를 찾아본다. 보통은 이미 봤던 영화를 다시 키곤 한다. 생산이 필요한 날은 글을 쓴다. 그림을 그린다. 춤을 추러 연습실에 간다. 특히, 체한 것같이 답답한 날은 글을 쓴다. 홀린 듯이 쓴다. 정신을 차리고 마주한 결과가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쓰고 나면 기분이 좀 낫다. 그 정도 의미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충분하다.


그래서 계속 쓴다. 내가 정말로 괜찮아서 하는 일 하나쯤은 하는 마음으로. 기대는 계획이 아니고, 어느 일이든 되어 있는 걸 보면 계획과는 거리가 일만 광년쯤 동떨어져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쓰면 좋다. 나만 좋으면 그만인 일도 있기 마련이다. 이걸로 뭘 대단한 걸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 아까 썼던 구독자 수나 공모전 결과 등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솔직히 쉽지는 않지만) 그냥 닿지 않아도 되는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 없어도. 이게 내게 돈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심지어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해도, 내 슬픔이나 불안을 풀어내 놓을 수만 있다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딱 그만큼만 내 어둑한 면을 덜어낼 수 있다면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도 썼다. 상상한 멋진 모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며 돈 걱정 한 번 안하는 멋진 창작자가 아니어도. 작가나 안무가, 이런 멋진 명찰이 아니어도 삐뚤빼뚤 써붙인 이름표라도 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고 믿으며 썼다. 아마 앞으로도 내 꿈은 나를 찌르는 가시가 되기도 할 거고, 닿을 수 없는 별 같기도 할 거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잘 빨아 말린 이불 같이 포근한 존재가 되기도 할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몇 주 후에 부러진 갈비뼈가 다 붙고 나면 본가에 들러 학원 일일권이라도 끊어 수업도 듣고 와야겠다.


 오늘도 적당히 대충, 안 괜찮으면 안 괜찮은 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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