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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Jan 17. 2022

행복하지 않아

그래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오늘 글은 다소 두서없습니다.


요새는 한 달에 3만원 남짓이면 행복을 살 수 있다. 병원에 가고, 길게는 4~5주치까지 약을 타 온다. 매일 저녁 약을 삼킨다. 전의 약보다 확실히 낫다. 전의 약은 그저 억지로 증상을 덮어 둔 채 반 년이란 시간을 보내게했다. 지금 먹는 약은 뭐라고 할까. 되게 깔끔하다. 좋게 말하면 깔끔하고, 안 좋게 말하면 밋밋하다. 전의 약은 거의 둔기로 머리를 맞고 나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몸과 정신이 둔해지고 연기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연기가 사라진 대신 잊고 살았던 우울과 불안이 뾰족하게 다시 보인다. 고쳐 쓰자. 월에 3만원이면 덜 우울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일이 되기 전엔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를 좀 피부로 와닿게 느꼈다. 수단에서 총에 맞을뻔한 박은 내가 전에 먹던 약을 먹게 되었다. 그는 '이런 걸 먹고 살았냐? 잠을 자고 깨도 잠에서 깬 기분이 들질 않아, 둔해져, 멍청해졌어' 등의 말을 했다. 웬만하면 의사가 처방해주는 대로 약을 먹으라던 박의 말이 괜히 떠올랐다. 씁쓸하게 웃겨서 이제 알았냐? 라고 했다.


공연을 두 개 준비한다. 돈이 없고 서울에 살지 못해 안무팀 일원 1 정도로 남게 될 것 같다. 서울에 있거나 돈이 충분히 있었다면 기를 쓰고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 연습을 할 텐데. 놓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한다. 오늘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동사무소 복사기 앞에서 하루를 다 썼다. 공연 안무는 오늘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같은 업무를 맡은 사람은 한 시간동안 핸드폰을 보고 놀았고 나는 업무가 몰려 화가 났다. 혹시나 하고 산 복권은 역시나 안 됐다. 내가 복권에 만약 당첨된다면 꼭 서울에 가서 온갖 예술을 맘껏 누리고 살 것이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돈을 버는데, 돈을 벌어야 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 이 꽉 깨물고 서울에 친구 집에라도 갈까 했더니 버스비조차 없다. 통장잔고 58만원 중 면밀히 따져서 내 돈은 7만원에 불과했다. 결국 난 돈을 벌 수밖에 없다. 나이 서른에 동사무소 알바를 하는 내가 비참하고 없어보인다는 생각보다 공연에 오르지 못한다는 사실이 날 더 우울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야 차라리 고귀하게 슬픈 척이라도 할 수 있어서일지도. '난 예술가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어서' 코스프레가 가능하니까.


많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차가 갖고는 싶지만 그건 다른 사람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다.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 뭐.. 가끔 삼겹살 한 번 먹고, 한 달 수영, 댄스학원비 있고, 교통비 한 7만원. 보험 만 원. 핸드폰비 한 3만원 좀 안 되고. 잘 따져보면 나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은데 내 통장은 그보다 더 적은 금액만 가지고 있어서 서글퍼졌다.


수영을 한 달 반 정도 다녔다. 좋아하는 애랑 다녔다. 걔가 다니쟤서. 그래서 그만큼 다녔을 것이다. 하다 보니 솔직히 수영 자체가 꽤 재밌어졌다. 다만 그래도 걔가 없이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아닌가. 나도 내 마음이 되게 헷갈린다. 혼자서도 잘 갔다. 다만 걔가 자꾸 생각나긴 했다. 남자친구가 있으니 적당히 거리를 둬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든다. 얘는 왜 수영을 굳이 나랑 다니자고 해서.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안다. 그냥 그 근처에 사는 아는 사람이 나였을 뿐. 나는 어떤 이름으로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존경하고 많이 좋아하는 분께 의견을 여쭤보자 내 마음이 그 사람과 너무 가까이 있다고 했다. 떨어져 있어도 편안한 관계가 좋은 관계라고 하셨다. 그래서 거리를 두기로 했다. 잘 안 됐다. 잘 안 되고 있다. 며칠 전, 내 생일엔 얘를 만났다. 딱히 그 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걔는 그럭저럭 축하를 해 주었다. 나는 술에 취해 주접을 떨었다. 나는 주접을 잘 떨었고 걔는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을 몇 개 했다.


차라리 미워해 보기로 했다. 차근차근 하나씩 써내려갔다. 왜 얘랑 멀어져야 하는지. 하나씩 생각날 때마다 쓰다 보니 20줄이 넘어갔고 모두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다. 유튜브에선 '만나면 안 되는 사람' 에 걔의 행동과 말이 너무 잘 맞아떨어졌다. 나랑 만났을 때 헤어짐을 아쉬워하지 않는다던지. 나랑 하는 일련의 활동들이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거라던지. 나랑 있을 땐 기를 쓰고 술을 마시지 않지만 다른 곳에선 아무렇지 않게 안주를 고르고 술자리를 간다던지. 잘생기고 몸이 좋은 내 친구를 만났을 때 내게는 절대 알려주지 않던 집주소까지 알려주며 자기를 집까지 데려다주게 한다던지.


쓸수록 미워해야 할지, 미안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다 보니 멍청한 내가 미웠고, 기를 쓰고 걔에게 미안해하려고 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건 또 이것대로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중에 오늘은 내가 나올 공연에 올 거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없는 걸로 하자고 했다. 등신같이 왜 물어봐서. 왜 나는 비참함을 사서 느낄까. 프로필을 친한 여자애랑 있는 걸로 바꿔 봤다. 물론, 미동도 없다. 질투를 할 리가 없다. 관심도 없는 존재에게 질투는 사치인 법이다. 유치한 내가 너무 시시해서 죽고 싶어질 정도였다. 머저리와 미저리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갈등한다.


숨어 버리고 싶고, 또 들키고 싶어졌다. 인스타그램을 며칠 비활성화해볼까, 하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내게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내가 인스타그램 없이 시간을 잘 때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언제나 부담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되었든 간에. 그래서 내 마음을 한정없이 퍼다 얹으니 무겁고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괜히서글퍼졌다. 같은 실수를 강산이 변하도록 하는 나는 헛된 방향으로 수련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좋아요를 굳이 다시 찾아가 취소하고 달았던 댓글을 지웠다. 왜 나는 이렇게 이상할까. 들키고 싶고 숨고 싶다니. 정확히는 숨어 있는 걸 들켰으면 좋겠다. 특정 몇몇에게만. 딱 집어서 너희가 날 봐줬으면 하는 그런 어린애 같은 마음이 서른이 되도록 사라지질 않는다. 철없는 어른이다.


요새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몇몇에게 건넸다. 사실이었다. 전보다는 분명 나아졌기에. 우울로 우물을 파서 침울을 길어 먹는 짓거리는 좀 관뒀어요,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참 하잘것 없어 보이는 것들에 마음에 잔가시가 톡톡 박혀서 마음이 안 좋다. 누군가에게 연락이나 댓글을 달았는데 답이 없어서, 아니면 이게 부담일까 봐 마음이 안 좋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이미 멘탈이 개복치, 쿠크다스, 설탕유리란 걸 알고 있어서 서글프고 또 뭐 이런저런..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이 글을 닫고 나면 또 다시 돌고 돌아 머리를 스칠 생각들 때문에 결국 나는 잘 살고 있나, 라는 말이 맞나 싶다.


내일은 일을 가야 한다. 약을 먹고 자야 한다.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더 뒤죽박죽이다. 못살겠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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