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만의 실망만 하며 살고 싶어
가끔 인터넷으로 복권을 산다. 로또나 연금복권을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한 번에 천 원씩만. 그리고 일 주일을 기다리고 낙첨을 확인한다. 혹시나는 역시나, 도 아니다. 역시나를 확인하려고 들어가는 것뿐. 이런 의미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최근 몇 지인과 절연을 했다. 사람을 믿고 사는 데에 큰 비중을 두고 사는 내게 절연은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그 동안 헐겁지만 새로운 인연의 고리를 몇 찾았고 거기에 마음을 조금씩 쏟고 있다. 다만 예전만큼 마음을 쏟기가 조금 무섭다. 구질구질하고 바닥에 질질 끌릴 만큼의 미련을 그나마 털고 이유를 요약하자면,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이 너무 무섭다. 그래서 나는 복권을 사 보기로 했다. 좀 뜬금없나?
복권은 내게 많은 걸 요구하지 않는다. 딱 일 주일에 천 원. 강요도 안 한다. 사고 싶으면 산다. 나는 복권을 쉽게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내가 선택될 확률은 어마어마하게 낮다. 하지만 큰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크지 않다. 매 주가 끝나갈 즈음 확인하는 실망은 내가 선택한 실망인 셈이다. 많으면 일 주일에 천원씩, 한 달에 4천 원.
내가 느낄 실망이 딱 그 복권만큼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좋은 일이 생기겠지' '이번엔 좋은 사람이겠지'를 생각하고, 괜한 상상을 하고 혼자 발을 헛디뎌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그만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복권을 샀다. 천원씩. 한 달분의 실망을 사 천원에. 한 주의 실망을 천 원에 꾹꾹, 욱여넣는다. 내 불안의 가치. 내 실망의 가치. 거기서 멈췄으면. 4천원 안에 구겨 넣는 나의 불안과 실망. 이쯤 되면 복권 입장에서는 수지타산이 안 맞겠지만 그거야 내 마음이다. 아무도 그러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그리고 아직까지는 이 방법이 신기하게도 조금 도움이 되고 있다.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으면서 처음으로 내 마음에 대한 가치를 실감했다. 나름 많이 안정된 상태인 지금, 한 달에 대충 2만 원 정도면 무던하게 지낸다. 하지만 이것도 요새 이야기고, 매달 드는 병원비가 2~3만원이고 교통비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던 때가 있다. 그 돈이 못내 아까웠다. 내 '마음'을 위해 돈을 쓴다는 일이 허무맹랑한 돈지랄같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2만원이면 병원을 갈 수 있는데. 나의 평온을 살 수 있고 우울을 덜어내고 그 공간을 내 일상으로 메꿀 수 있는데. 그 때 문득 생각했다. 아. 내 마음의 가치는 돈보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더했으면 좋겠다. 하다못해 우울을 덜어낼 수만 있다면 좋겠다. 돈으로. 위안으로. 하다못해 나의 슬픔의 과녘으로라도 써먹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종종 복권을 산다. 요새는 마음이 전보단 편안한지 2~3주 간격으로 천 원씩 사고 있다. 딱 나의 걱정과 불안을 그 안에 구겨넣고, 천 원 만큼의 실망만 하고 살고 있다. 당첨이 되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영 없어 보인다. 다만 앞으로 천 원짜리 실망을 사는 마음은 한동안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 난 김에 복권을 하나 샀다. 이번 주도 천 원만큼만 실망하고 지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