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연산 Mar 07. 2022

천원짜리 실망을 사는 마음

그만큼만의 실망만 하며 살고 싶어

가끔 인터넷으로 복권을 산다. 로또나 연금복권을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한 번에 천 원씩만. 그리고 일 주일을 기다리고 낙첨을 확인한다. 혹시나는 역시나, 도 아니다. 역시나를 확인하려고 들어가는 것뿐. 이런 의미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최근 몇 지인과 절연을 했다. 사람을 믿고 사는 데에 큰 비중을 두고 사는 내게 절연은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그 동안 헐겁지만 새로운 인연의 고리를 몇 찾았고 거기에 마음을 조금씩 쏟고 있다. 다만 예전만큼 마음을 쏟기가 조금 무섭다. 구질구질하고 바닥에 질질 끌릴 만큼의 미련을 그나마 털고 이유를 요약하자면,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이 너무 무섭다. 그래서 나는 복권을 사 보기로 했다. 좀 뜬금없나? 


복권은 내게 많은 걸 요구하지 않는다. 딱 일 주일에 천 원. 강요도 안 한다. 사고 싶으면 산다. 나는 복권을 쉽게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내가 선택될 확률은 어마어마하게 낮다. 하지만 큰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크지 않다. 매 주가 끝나갈 즈음 확인하는 실망은 내가 선택한 실망인 셈이다. 많으면 일 주일에 천원씩, 한 달에 4천 원. 


내가 느낄 실망이 딱 그 복권만큼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좋은 일이 생기겠지' '이번엔 좋은 사람이겠지'를 생각하고, 괜한 상상을 하고 혼자 발을 헛디뎌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그만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복권을 샀다. 천원씩. 한 달분의 실망을 사 천원에. 한 주의 실망을 천 원에 꾹꾹, 욱여넣는다. 내 불안의 가치. 내 실망의 가치. 거기서 멈췄으면. 4천원 안에 구겨 넣는 나의 불안과 실망. 이쯤 되면 복권 입장에서는 수지타산이 안 맞겠지만 그거야 내 마음이다. 아무도 그러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그리고 아직까지는 이 방법이 신기하게도 조금 도움이 되고 있다.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으면서 처음으로 내 마음에 대한 가치를 실감했다. 나름 많이 안정된 상태인 지금,  한 달에 대충 2만 원 정도면 무던하게 지낸다. 하지만 이것도 요새 이야기고, 매달 드는 병원비가 2~3만원이고 교통비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던 때가 있다. 그 돈이 못내 아까웠다. 내 '마음'을 위해 돈을 쓴다는 일이 허무맹랑한 돈지랄같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2만원이면 병원을 갈 수 있는데. 나의 평온을 살 수 있고 우울을 덜어내고 그 공간을 내 일상으로 메꿀 수 있는데. 그 때 문득 생각했다. 아. 내 마음의 가치는 돈보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더했으면 좋겠다.  하다못해 우울을 덜어낼 수만 있다면 좋겠다. 돈으로. 위안으로.  하다못해 나의 슬픔의 과녘으로라도 써먹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종종 복권을 산다. 요새는 마음이 전보단 편안한지 2~3주 간격으로 천 원씩 사고 있다. 딱 나의 걱정과 불안을 그 안에 구겨넣고, 천 원 만큼의 실망만 하고 살고 있다. 당첨이 되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영 없어 보인다. 다만 앞으로 천 원짜리 실망을 사는 마음은 한동안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 난 김에 복권을 하나 샀다. 이번 주도 천 원만큼만 실망하고 지내 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하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