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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Jan 07. 2024

읽지도 쓰지도 못한 채

읽고쓰는 문맹인 

읽고 쓸줄 아는 문맹인이 되어간다. 일을 시작한 이후, 읽는 일이 줄었다. 원래라고 많이 읽는 건 아니었지만 질적이든 양적이든 읽는 행위의 빈도 자체가 줄어버렸다.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일의 특성상 무언가를 쓰는 게 제한적이다. 


핸드폰이나 전자기기를 두드리지 않으니 담배를 필 때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는 것 정도 외엔 별 이득이 없다. 읽지 않고 쓰지 않으니 눈 가리고 입을 닫은 기분이 든다. 눈 가리고, 입 닫고, 귀 막고. 모든 기능이 정상인 채로 그 어떤 정보도 오가지 않는 존재가 된 것 같다.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글에 막중한 책임감을 지니진 않았다. 써야 할 일이 생기면 적었다. 그리고 발행했다. 가늘고 길게 꾸준히 써왔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오늘 이 창을 띄운 이유는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그리고 또 일에 가기 전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엊그제는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지인을 만났다. 그는 술에 많이 취해있었고 보지 못한 동안의 자신이 저지른 안타까운 사실들을 뱉고, 술집에서 비명이 비어져나오게 입을 막고 소리를 질렀으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다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변해버린 모습에 속으로 살짝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즐겁지 않았다. 감기도 낫지 않은 몸을 이끌고 간 곳에서 내가 그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2차를 가자는 그의 말을 거절하고 택시를 타러 갔다. 뒤에서 그의 욕설 섞인 고함이 들렸다.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잘 들어갔냐고, 그 전날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연락이 왔다. 예, 라고 대답했다.


왜 그를 만났는지는 모르겠다. 충동적이었다. 택시비 2만 4천원만큼 아까웠다. 차라리 만나지 못할 사람에 대한 약간의 애틋함으로 기억할걸.


내가 잡는다고 잡는 건 인연이 아님을 안다. 아니, 알려고 노력중이고, 아직도 시도 중이다. 


최근 그르친 인연이 하나 있다. 서로의 태도, 상대에 대한 마음의 무게가 달랐던 것 같다. 그러다 상대에게 내가 상처를 주는 행동을 했다. 생각하면 답답하다. 가슴 한켠에 돌무더기가 내려앉은것같고, 잠이 오지 않는다. 병원에 간 김에 홧병이 도져서 잠을 잘 수 없다며 잠을 잘 수 있는 약을 요청했다. 그러고 나면 오후까지 잔다. 


잠은 피난처가 아니다. 일어나면 여전히 나는 같은 상황이다. 예전, 내가 반대편에 있던 상황일 때가 있었다. 아주 오래 전. 그 때 나는 상대가 너무 미워서 울다가 화내다 잠을 못 자다를 반복했다. 일 년은 그랬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이제 와서 다른 상대에게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게 믿기지도 않아, 온갖 설명과 변명을 스팸마냥 보냈다. 답은 싸늘했다. 더는 의미가 없다 여겨 마지막으로 내가 일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보자 청했다. 거의 구걸이었다. 내일 그 사람을 만난다.


불안하다. 그가 어떤 말을 할 지 알 수 없다. 어떤 생각으로 나왔는지. 내게 통보를 하러 왔을지, 내 말을 듣고 받아들여줄지도 모르겠다. '전략'을 짜는 것도 어이가 없다 생각했다. 말도 단어도 행동도 모두 도구일진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있는 사실만을 말할 것인가. 상대의 입장에서 상상해본 나를 설명할 것인가. 그 어떤 말도 와닿지 않으면. 아니면 내가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나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착잡하다. 


그와 사이가 틀어진 직후, 나는 게임을 10여만원 어치 샀다. 게임엔 저장/불러오기 기능이 있다. 뭔가에 실패하면 그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 15초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결정을 내리기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를 택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주 잠시나마 거기에 매몰되어보려 했다.


ADHD약을 먹은지 2주에 접어든다. 약을 먹고 좋아진 점 겸 안 좋은 점은 집중이 잘 된다가 아닌, 딴생각을 덜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틱하게 집중이 잘 되진 않으나, 내 슬픔에서조차 집중을 오래 못 하던 내가 이제 거기에 온전히 마음과 생각을 쏟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게임도 내 상황에서는 도피였고, 그 안에는 내 걱정만이 가득하다. 


지금 문제가 있다는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엔 삶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가슴이 요동칠 일도 없었고 설레거나 불쾌하거나 착잡할 일도 없었다. 나쁘지 않은 지루함이라 여겼다. 의욕이 없어도 주어진 일은 해냈고 그에 따른 돈은 쌓여 갔으니까. 그러다 그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온 거다. 들어온 건지, 들여온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정신차려 보니 교집합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은 미련과 기대를 갖지 말라 한다. 상대가 태도를 똑바로 하지 않은 데에도 책임이 있다고. 나도 잘 한 일 없다만 그 사람도 이상하다는 둥. 미련.집착.기대.실망. 날 구성하는 대부분은 이것들일텐데. 이게 없는 나는 대체 뭘까.


그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른다. 그가 울 수도 있고, 내가 울 수도 있다. 무미건조하게 끝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새 읽고 쓰고 보고 듣는 데에 무심했다. 


며칠 후면 일을 하러 간다. 또 한동안 없다. 건강히들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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