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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연산 May 24. 2024

춤이 왜 추고 싶어요

'춤이 왜 추고 싶어요', 예술감독에게 들었던 질문이다. 그리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을 들은지 1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모르겠다. 설명이랍시고 말을 주워섬겨봤자 변명이 되고, 그냥 좋아서요. 라고 심플하게 대답하면 좋아하는 취미로 남겨두지, 라는 대답을 들었었다. 내가 업으로서, 내 하루와 1년의 주된 시간과 기간을 쏟아붓는 데에 춤이 왜 추고 싶냐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으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춤을 처음 배운 건 2012년이다. 진학한 대학교에서 겉돌고 있었고, 당시엔 랩을 했다. 매주 번화가에 나가 프리스타일 랩을 했다. 단어를 주섬주섬 모으고 그 단어들로 문장에 음을 입히는 게 좋았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내가 박치라는 사실이었다. 비트가 나오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좀 나아진 이후에도 단어가 꼬여 문장 같지도 않은 문장이 입에서 뭉그러진 채 튀어나왔다. 랩이라고 또 꼭 해야 되는 이유는 없었으나 그때의 랩은 내게 도피처이자 그나마 내가 좀 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더는 못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성격치고는 상당히 짧은 고민 끝에 춤을 배우기로 했다. 몸에 박자감을 넣으면 어떻게 되지 않나? 라는 무식하고 용감한 생각 덕분이었다. 그리고 춤을 배웠다. 고생 많이 했다. 지금이야 내가 성인 ADHD인걸 알고 있으니 스스로 이해가 가지만 그때는 내가 왜 그렇게 안무를 못 외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안무를 외우는 건 고사하고 음악을 내 멋대로 예상해서 틀리기 전에 동작을 먼저 해버리기 일쑤였다.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은 그러면 안 된다. 정확한 동작을 정확한 음과 박자에 리듬을 넣어 표현하는 것이 춤이거늘.(방금 문장은 당시 예술감독의 철학 중 일부이자, 그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내 기준이다)


그래서 2012년 이후로 춤을 얼렁뚱땅 배우다가 2024년이 되었다. 그 사이 랩은 관뒀다. 춤은 남았다. 그런데도 아직 왜 춤을 추고 싶냐, 춤이 왜 좋냐라는 말엔 섣불리 답을 낼 수가 없다. 내 처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시작했던 무수한 취미 중 살아남은 한 줌의 취미 중 하나라서요, 라고 해도 사실 맞기는 하고, 그 중 가장 내게 많은 경험을 안겨주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말해도 설명이 아니라 변명같고 각주같고. 그렇게 느껴진다.


'그냥 좋아서요' '재미있어서요' 는 뭔가를 배우는 데 있어서 두 가지 단계에서 쓸 수 있는 말 같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 할 만큼 해 보고,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답이었을때. 처음에야 분명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 재미있었다. 그리고 오래 춤을 췄지만 별다른 활동도 두각도 보이지 못하던 중, 나를 지나쳐 가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봐 왔다. 입시에 성공한 학생. 서울로 나간 무용수. 평범에 열심히 다가간 나의 친구들, 권. 한. 현. 나만 정체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고 고민이나 역경이 없진 않았겠지만, 놓지도 못하고 쥐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선 채 굳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나이먹고 낡아왔다.


내 삶이 평범의 범주에 들어가는 게 싫어서요. 일 수도 있겠다. 폄하가 아니다. 요새 세상에 평범은 정말 노력의 결과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적당한 나이에 연애, 결혼, 경력, 직장. 내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 하나 이뤄내고 있는데 나만 어설프게 춤을 잡고 있는 데엔 그 생활로 가는 게 무서워서이다. 그 과정이 무섭다. 어디 회사 신입으로 뽑지도 못할 나이에 가까워지는데 나는 여전히 여기 머물러있고 그렇다고 나아지고 있지도 않은 것 같으니. 상담과 치료를 받던 이십대 후반도 항상 불안했지만, 지금은 더욱더 불안하다.


그 불안 아래 이제는 회피를 하고 있다. 내년에 해외에 가야지, 라는 뭉뚱그린 계획 속에 대체 어디를 가야할지, 뭘 준비하고 고민해야할지. 무엇보다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너무 움직이지 않아 몸이 굼벵이처럼 오그라들었다. 굼벵이는 의외로 길쭉하게 몸을 펼 수도 있으니, 굼벵이나 구더기만도 못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글에서 내가 춤을 추는 이유를 물으면 '모르습니다' 가 답이다. 잘 모르겠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모르겠습니다. 이유가 많다면 너무 많아서 고를 수 없고, 이거다 싶은 이유가 명확하지도 않으니 또 모르겠다. 춤을 왜 추세요, 춤을 왜 추고 싶어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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