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낙이 없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혼자 있는게 좋다. 양가감정이 심하다.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둘 다 원하니 머리가 제대로 기능할 리가 없다. 사람이 좋다. 사람이 밉다. 한동안 글쓰기를 할 정신머리도 없었고 여력도 없었다. 막상 쓰자니 너무 내밀한 지점만 쓰는 일기장 같아서 머릿속에서만 몇 번 썼다 지웠다.
엊그제는 면접을 하나 보고 왔다. 잘 된다면 5개월간 계약직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다음주엔 대구를 간다. 현대무용 수업을 들으러. 막상 내가 기대했던 안무 만들기는 내가 할 수 없음에 아쉬웠다. 하지만 다리찢기 180도는 커녕 90도 하지 못하는 썩은 각목같은 내 몸이 수업이라도 버텨주면 다행일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한 대 피면 피가 좀 도는 것 같다. 약을 먹는다. 약으로 인해 담배가 줘야 할 순기능의 효능을 잘 못 본다. 각성상태를 만들어주는 약을 먹는데 니코틴 좀 들어갔다고 드라마틱하게 기분이 좋아질 리가 없다. 끊지도 못하고 하루 서너 대를 피고 있다.
술은 좀 줄였다. 내 인생을 톺아보면 항상 일정한 패턴이 보이는데, 내가 감당 가능한 선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그러다 사람을 보고 싶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집에 있어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순간 넘어서면, 그 날 나간다. 그러면 보통 혼자 술을 마시러 간다. 칵테일 바에 죽치고 앉아 시덥잖은 주위 이야기를 듣다가 관심이 가는 사람에게 가서 말을 걸어 본다. 물론 사회성이 바닥이라 뭐가 잘 될 리가 없다. 최근 바텐더는 나보고 그런 거 하지 말라 그랬다.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어도 잘 모르겠다. 뭘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며칠 전 술을 마시다 합석한 자리에서 나를 기억한다는 사람을 봤다. 누군지 알 수가 없어 기억이 안 나요. 누구시죠. 라고 했다. 머저리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날 사람들은 내가 춤을 추기를 원했고 나는 내가 대체 뭘 하고 싶고 뭘 하기 싫은지도 모른 채 그냥 쓸려다녔다. 여기 가요, 예. 이거 마셔요. 예. 통장잔고만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었고, 애꿏은 담배를 몇 개피나 핀 후에 자리는 파했다. 춤 비슷한 동작을 보여주기는 했다. 싸구려 위안도 되지 않아 그냥 다시 앉았다 밖에 나가서 비 구경을 하다 했다. 오빠는 말수가 없네요? 라는 말에 할 말이 없어요, 하고 뚱하게 답했던 것도 기억한다.
다음날 일어나서 이불을 찰 것도 없었다. 구연산이 구연산했다. 한 느낌. 말아먹을 거면 대차게 말아먹어야 정신이라도 차리는데 나는 내 일신에 관심이 워낙 지대해서 몸이나 마음이 다음날 아플 일은 잘 하지 않는다. 먹먹해지면서 동시에 선명해진 정신을 약을 먹은 이후 가지게 되었음으로, 나는 시큰둥하고 무덤덤한 인간이 되었다.
내 연락처를 받아간 이에게 되도 않는 몇 마디를 해 봤다. 그림 그리신다고요.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요?' 아, 본인이 어제 술 드시다 얘기하셨어요. 그래서 궁금해서요. 대화를 위한 대화가 무미건조하게 세 번 정도 오가고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 후 창을 닫았다. 이사람이랑 친해질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먼저 끊기도 그렇고 남이 먼저 끊으면 괜히 자존심 상하고 불쾌한 내 마음은 나도 당췌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밖에 나가면 부대낀다. 그럼 안에서는 행복해야 할거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힌다. 근데 난 방에서 하는게 좆도 없다. 일어나면 콜라를 하나 깐다. 약 먹고. 컴퓨터 키고. 게임을 한다. 게임도 좀 괜찮은 걸 하고 싶지만 조각조각 아주 파편이 된 집중력으로는 게임의 스토리에도 집중을 못 하므로, 관성같이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도저도 아닌 게임을 한다. 그러다 시간은 지나고 밤은 찾아오고 오늘도 보려 했던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영화도 못 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동안 격리로 갇혀 지냈을 때 영화 20여 편을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아주 주리를 틀면서 봤으니,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맞기는 한가 싶다. 할 거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사람이 밉다. 싫다. 최근 일을 하면서는 다 죽여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나중엔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남을 싫어하는 데에도 에너지와 열의가 필요한데, 내게는 그런 게 없다. 신경에 거슬리는 것들은 일상과 주위에 너무나 많이 널려있고, 나는 나를 세상과 단절시키고 가둠으로서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아니지. 해결은 아니고, 조치했다.
요새는 바라는 게 없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먼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끊었을 때도, 최근 알게 된 사람이 내게 무례하기 짝이 없게 굴어 술잔을 그 얼굴에 집어던져 그 눈과 이를 박살내버리고 싶은 날도 참았다. 나는 보고 싶은데 나를 볼 생각도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도 서운하고, 섭섭하다. 그런데 뭐 어쩔 수 없다. 최근엔 SNS에 나와 같이 밥을 먹었던 날에 대한 글을 올린 이에게 연락해 글을 내려주십사 요청했다. 내가 준 만큼의 반의 반도 회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사업이라면 내 정신은 집행부고, 예산을 받는다. 사업비. 정신력. 등등. 나는 그의 환심을 사고 싶어 무리해 비싼 밥을 샀고, 그는 sns에 그 식사를 올렸다. 하지만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그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나 길게 했는지에 대한 정보도 모조리 틀리게 알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내 지역에서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꼭 오겠다고 했다. 막상 가려니 멀어서 못 온다는 말이 왔다. 어쩔 수 없는 영역에서 여기서부턴 화가 난다. 서운하다. 그래도 내가 이 사람한테 뭘 맡겨둔 건 아니니 화를 낼 수 없다. 그는 자기가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뭐라도 자기가 해줬으면 하는 걸 얘기해보라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한 시즌만 꼭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한 화도 찾아보지 않았다. 거기에서 크게 실망했던 걸로 기억한다. 쓰고 나니 난 바라는 게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런 저런 일에도 일기에 쌍욕이 매일 적힌 걸 빼면 남에게 욕을 쏟아붓지도 않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내지도 않는다. 나를 방치하긴 하지만 자해 등을 통해 학대하지도 않는다.
정답이 없는 삶에 오답만 잘 피해가도 나는 내 한 몸이 할 수 있는 몫을 다하고 있다고 믿으려 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진즉에 오물같은 인간말종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니까. 미래가 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내려고 한다. 다만 사람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사회성이라는 옷과 가면을 쓰는 것이 버겁다. 친한 지인 몇은 내 말투가 너무 공격적이라고 했다. 왜? 라고 묻자 소위 말하는 '쿠션어' 가 없어서, 너무 포장 없이 이야기를 해서, 돌려 얘기할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 같아서라고.
그러면 내가 진심을 말하고 솔직하니까 그건 괜찮은 거 아니야? 라는 말같잖은 소리로 넘어갈 생각, 없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 그중 대다수가 구연산 너 개같아 하면 개같은게 맞는 거겠지. 그래도 최근 몇 년은 사람 안 물어뜯고 지냈다. 물어뜯고 싶은 자와는 거리를 두었고, 주위 사람에게 하소연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더래도 '딱 1분' 이라고 얘기하고 있던 일만 간략히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이 시기도 잠시고 언제고 지나갈 거라고 해주실 지 모른다. 아님 말고. 그런데 나는 이 상태로 몇 년을 살아왔다. 큰 불평은 없으나 언제나 날이 서있고 화가 나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싫은 건지, 사람이 싫은건지 잘 모르겠다.
둘 다일수도 있겠다.
사람인 내가 싫을 수도 있고, 그냥 내 맘 같지 않은 사람이나 상황, 세상이 싫은것일 수도 있다.
논리적이고 간략하게 말하는 능력은 애저녁에 잃어버렸고 정답을 찾는 능력은 가진 적도 없으니, 나는 언제나 오답을 피해가는 지뢰찾기 게임의 기분으로 살아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주름살이 생기고 기름지고 버석거리는 피부를, 실핏줄이 터진 눈알을 마주한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