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연산 Oct 22. 2023

어디까지가 맞습니까

 6박 7일간 제주, 그리고 금토일, 3일간 공연/행사 알바를 하고 왔다. 사이에 병원도 좀 가고. 


아예 상반된 평가를 듣고 왔다. 그리고 기분이 좋을 때, 들떴을 때 글을 일부러 쓰지 않았다. 사람은 신기한게 슬프고 속상하면 남한테 여기 제가 억울하고 속상하오, 하고 뭐든 쓰면서 기분 좋을 때의 기록은 신기하게 남기질 않는다. 사람이 신기한 게 아니라 내가 그런 거일 지도 모른다.


제주에서는 욕을 많이 먹었다. 꼽도 많이 받았다. 자신에게 특화된 확실한 캐릭터가 있는 공연팀에서 내가 가진 가치는 너무 하잘것없었고, 공연을 보러 오는 게 아닌 왔는데 공연이 있네? 하는 곳에서, 시끄럽고 큰 음악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시피했다. 원래 할 수 있는 것도 위축되어 더 안 되었다. 약기운 때문인지, 몸을 오래 안 써서인지, 그냥 새로운 환경이 어려운 건지. 내가 최대한 할 수 있는 능력의 60%밖에 발휘하지 못했다. 


둘째 날, 저녁에 술판을 벌이고 마시다 공연 팀장이 그랬다. 연산아 너 솔직히 좆같다? 뭘 말해도 네, 네. 띠껍다고. 거슬린다고. 근데 그냥 그런 놈인 거 같애, 그런 사람이야. 나보다 사흘 일찍 온 팀원도 날 보며 한숨을 쉬고, 틀렸다고 그랬다. 


내가 많이 잘못된 사람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회성이 0이고, 그들 말마따나 mbti 에서 대문자 I 이고. 공연을 할 때,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노래기 지네가 처마에서 떨어지는 대기실에 다 떨어져가는 이불을 세팅해야 했다. 무대에 깔린 천막을 치우고 접고, 쓸고 닦고. 차에서 내려 철문을 열고, 닫고. 3평 남짓한 방에 남자 3명을 구겨넣고 지냈다. 설거지,빨래도 해야 하고, 고기 반찬도 있다 하면 눈치를 보며 먹었다. 거의 두 달 가까이 멈췄던 담배를 다시 폈다. 제주라는 환상은 순식간에 휘발되어 날아갔고, 나랑 나이가 같은 팀원들 사이에서(엄밀히 따지면 내가 빠른년생이고 여러 사정상 학번은 내가 2기 정도 위지만) 막내 노릇을 하며 꼬박꼬박 존대를 했다. 옙 팁장님. 죄송합니다. 다시 외우겠습니다. 빨래 돌려도 되겠습니까. 


침울해서 돌아왔다. 별 일 아닐거라고 생각한 거 치고는 너무 눈치가 많이 보였고 힘들었다. 사람들하고 친해지기는 커녕 인간혐오만 늘었다. 내 순서에 날 말 그대로 치고 나가서는 자기가 잘못한 걸 추궁할 타이밍에 '연산이 아까 거기 또 틀리더라'로 말을 바꿔버린 팀원이나, 여자랑 잔 얘기, 경박하고 천박한 단어들이 쏟아져나오는 대화. 내게는 무슨 이유에선지 묻지도 않았고,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행사 운영요원,소위 말하는 스태프로 3일 일했다. 제주에서 자신감은 있는 대로 쪼그라들어 왔고, 사람을 대하는 업무는 쥐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을만큼 하기 싫었다. 그냥 짐이나 나르고 어디 박혀서 숨어 있고 싶다.. 싶었는데, 의외로, 정말 의외로 3일간 일은 할만했다. 해외에서 온 패션 브랜드 디자이너들 몇과 친해져 선물도 받고 사람이 없어 분위기를 띄우려 공연장 앞에서 춤도 추고 막 뛰고 그랬다. 


3일이 지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꽤 들었다. 에너지가 좋다, 내년/후년에도 이 행사에 꼭 참가해 달라 등등의 피드백. 벅찼다. 즐거웠다. 내가 사실은 남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성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나와 맞지 않는 곳에서 일했던 건가 싶었다. 신이 났고, 여러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 등, 신나서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미새' 라는 얘기를 들었다. 여자에 미친 새끼. 행사는 거의 젊은 여성으로 이루어진 회사가 주관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일하러 온 다른 운영진 중 한 여성분하고 유독 친하게 지냈는데, 그게 보기 안 좋았다는 얘기가 뒤에서 돌았단다. 이성에게 관심이 없었으냐 물으면 그건 아니다. 관심이 있고 하니 물어봤을 터다. 하지만 여미새 소릴 들을 정도였나, 싶었다. 여기저기 다른 곳에서 일하는 남성 요원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고, 햇빛 쬐느라 타겠다고 선크림 필요하냐고 묻기도 하고 시원한 음료도 몰래 가져다 주고 그랬다. 그냥 두루두루, 사흘 일하고 못 볼 사람들, 그냥 즐겁게 일하자 싶었던 것뿐. 


내게 여미새 얘기가 돌았다는 걸 알려준 직원은 퇴사를 앞둔 직원이었고, 인스타그램 등을 물어보고 다닌 게 뒷말이 많이 돌았다고 했다. 아. 그러면 안 되는 거구나. 싶었다. 같은 곳에 배정된 남자 둘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것도 이유로 꼽았다.


  나는 그 둘이 나보다 좀 더 결이 서로 잘 맞아서 붙어 다닌 것 같다 했다. 나는 현역 군대를 나오지 않았고, 그때부터 그 중 한 명의 눈빛이 좋지 않아졌으며, 둘 다 행사에 오는 관람객이나 내한한 브랜드, 아티스트들에게 비아냥거리기 바빴으니까. 나는 춤을 오래 췄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게 신기했으며, 음악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들이라 또 듣는 재미가 있었는데 도저히 그들과 맞장구칠 일이 없어 따로 다녔던 것뿐이다. 마지막 날, 내게 유독 쌔하던 둘 중 하나는 '마지막이니까 얘기하는데, 나잇값 좀 하십쇼' 라고 했다. 내가 대체 뭘 어쨌기에. 위에 한참 놀러다닌 것처럼 얘기했지만, 실상은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바빴고, 이 일이 끝나면 저 일 잡혀가고 불려가고 해서 직원들이 고생이 많다고도 했다.


여하간. 


그 3일간 나는 행사장 내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하던 분과 조금 친해져 관심을 내비쳤고, 내가 어차피 갖지 못할 선물(신발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내 사이즈는 아예 없어서 그냥 그 분 줄 생각으로 받았다) 들을 주고, 번호를 받고 마지막 날 일이 끝나고 칵테일 바를 갔다.


이후에는 그냥 내 얘기만 줄창 했다. 난 그 사람 나이도 모른다. 내 얘기를 돌려서 뭘 물으려 해도 내 얘기가 재밌다고만 하고, 더 해달라고 하고. 그 사람이 집에 가기 전 노트에 적어 건넨 말에는 뭐 귀엽다, 좋은 하루 만들어줘서 고맙다 등의 말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회성.


내가 근 6개월간 은둔하며 살아서 그런 걸까. 남을 미워하고, 나를 미워하고 살아만 있고 약만 털어넣으며 지낸 결과를 감내하는 건가. 난 내가 누가 좋아할 만한 외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키는 평균키에 미치지도 못하며, 머리는 어지간한 여자보다 길었다. 비쩍 말랐고. 그래서 이번에 일을 하러 나오는 데엔 용기가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또 나름의 원칙을 지켰다. 뭘 할 때 애매하면 3분, 3시간, 3일 정도 기다려볼것. 그동안 내게는 다시 부정적인 반응,말들이 들어왔다. '너무 퍼주지 말라고' 라는 친구의 말이나 '여미새야?' 라는 직원의 말, 뒤에서 삭제당한 SNS 팔로우 등. 


그래서 제주와 이번 일로 알게 된 사람들의 연락처를 지우고, 끊었다. 간만에 나와서 너무 달떴던 게 틀림없다. 누군가는 내게 다시 은둔하면 안된다고 했지만, 나는 이제 적당한 불편함이 주는 안도감에 익숙해졌다. 또 혼자 한참 지내면 적당히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쓸데없는 기대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만난 강아지처럼 좋아 죽겠다고 성급하게 난리를 피지 않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어제였나, 알던 감독님이 내가 누굴 그렇게 미워했는지,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브런치를 통해 다 알고 있다고 했다. 필명도 바꾸고 했는데. 부끄럽고 민망한데, 그 글을 누가 어디까지 읽었는지, 누구까지 아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실명이나 누군가라고 특정될 성별, 이름 등을 적지 않고 각색한 데에서 에세이 나름의 원칙은 지켰으니 최악은 면한 셈인데, 그래도 부끄럽다. 


남은 겨울에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을 간다. 조용히 지내다 오려 한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나댔을까. 





작가의 이전글 괜찮은 날 덜 아픈 날도 가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