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by 구연산

아무것도 안 한지 한 달 반이 되어간다. 다녀온 일이 힘들었다. 한달 반 동안 정말 힘들었다. 왕따당했다. 투명 인간이었다. 다녀와서 2주 정도는 꼼짝도 않고 지내고자 했다. 그렇게 했다. 2주가 지났다. 낮밤이 바뀌기 시작했다. 집에 밥솥을 샀다. 그건 하겠다고 스스로 맘먹고 갔으니까. 엄마는 집에 쓰지 말고 모으라고 했다. 내가 목표한 금액은 멀기만 하고 내가 번 돈은 작았다. 내친 김에 도움을 줬던 친구들에게 돈도 좀 갚았다.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고 나니 나는 나를 더 놓아 버렸다.


잘 안 씻는다. 밥도 잘 안 먹는다. 잠이 안 온다. 약을 먹어도 잠이 안 온다. 방전되어 영구적인 손상을 입은 배터리마냥 에너지가 그냥 스믈스믈 샌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치고 메스껍다. 울렁거린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낸다. 일어나면 바로 옆 의자에 앉아 컴퓨터 게임을 한다. 재미없다. 의미도 없고 집중도 안 된다. 소화도 안 되고 머리의 집중력은 약을 먹어도 파편난 조각같아 쇼츠 영상도 끝까지 보는 게 어렵다.


많은 걸 미룬다. 머리에 기름이 떡이 진다. 샤워 할 때 앉아서 씻는다. 서 있는 것도 지친다. 원래 그랬지만, 이제는 일어나 씻을 기력도 없다. 그냥 물을 맞고 앉아있는다. 샴푸로 기름때를 벅벅 세 번 정도 벗겨낸다. 머리 말리는 게 귀찮아 말리지 않는다. 피부가 푸석해졌다.


몸이 기계라면 모든 부품이 천천히 제기능을 못 하고 있다. 책상엔 별의 별 물건이 다 놓여 있다. 탈취제. 씨리얼. 만화책. 다 쓴 건전지. 전자담배. 휴지. 다 마신 콜라병. 양말. 양말은 왜 있지. 신지도 않은 건데.


약속이 세 번 정도 있었는데 일어날 자신이 없어 딱 하나만 나갔다. 다른 건 아프다고 핑계를 댔다. 일어나니 오후 8시 9시다. 산송장이란 건 이런 거겠구나 싶다. 기부를 하겠다고 자른 머리는 그대로 비닐에 들어간 채 있다. 8월 언저리에 잘랐는데.


외롭고 심심하다. 답이 오지 않을 사람들에게 문자를 남긴다. 일방향,, 그리고 그 순간에 있는 통신을 할 자신이 없다. 나는 표정과 말을 출력하는 것도 이제 버겁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나 연말을 잘 보내라는 말을 둘둘 주워섬겨 보내고 숫자 1이 사라지지도 않은 창을 본다. 보통 자기 직전에 그런 걸 보낸다. 그러고 일어나면 빨간 숫자가, 알림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한 건가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만들어 내는 것은 없고, 버리는 것만 있다. 담배를 피러 하루에 두어 번 집 앞을 나간다. 해를 본 지는 좀 됐다. 쓰레기라도 버린다. 그거 말고는 내가 집에서 할 일이 없다. 딱히 하라 하지도 않고. 부친께선 날 보더니 귀신이 있다고 했다. 같은 집, 다섯 걸음만 걸어도 얼굴을 볼 수 있는 이 작은 집에서 나는 나오질 않으니까. 이 방에 붙박였으니까.


공기가 텁텁하다. 환기를 안 한다. 거기에 내 날숨이 쌓이고 담배연기가 쌓여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 홀애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옷가지들은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나가지도 않으면서 웬 옷인가 싶겠다. 그냥 입은 거 던져 놓고 빨아다 가져다주신 옷가지들도 대충 두고 하다 보니 이 꼴이 났다.


글을 쓰면서 나는 예술가가 맞나라는 생각을 .. 아니, 그냥 꾸준히 했다. 예술인패스는 신청했지만 '취미 정도'로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며 반려당했다. 워크샵을 신청했지만 전문교육을 받은, 전공자들을 위한 거여서인지 선정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대체 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씩 한다.


아. 미루는 거. 글을 정리하면 아까 앞전 문단에서 썼어야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뭘 미루지. 화장실 가는 거. 밥 먹는 거. 물 마시는 거. 핸드폰, 전자담배 충전하는 거. 전자담배 충전을 하려면 콘센트에 케이블을 꽂아야 한다는 이유로 나흘인가 안 했다. 일이 끝나면 보겠다고 작정한 시리즈는 한 달 반이 지나서야 겨우 1/3을 봤다. 한글 자막이 컴퓨터에선 나오더니 프로젝터에서는 안 나온다고, 가뜩이나 머리 쓰기 귀찮은 내게 영어 해석은 더욱 귀찮아져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틀었을 때 3화까지 봤다. 4화를 틀어놓고 원래 이런 내용인가 하고 있었던 건 덤이고. 다 미루고 미룬다. 담배 피는 것도 미루고. 그냥 다.


병원을 가야겠다. 약을 증량해 달라고 요청해야 할 것 같다. 오후 5시에 예약을 잡아도 제 시간에 못 갈 것 같다. 아. 병원은 다닌다. 일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다녀왔다. 이렇게까지 무기력해질 줄은 나도, 의사도 아마 몰랐을 거라 약은 그냥 먹던 만큼 받았다. 의사는 내게 그렇게 고립되고 외로운 상황에서 돌발상황을 일으키거나 사고를 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잘 했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잘 모르겠다.


난 살아 있다. 대신 아무 것도 안 한다. 목부터 등으로 내려가는 척추뼈가 항상 뻐근하다. 오그라드는 기분이다. 손도. 어깨도. 허리도. 근육도. 마음도 생각도 그냥 다 오그라들고 좁아지는 기분이다.


한동안 알림을 받지 않다가 언젠가 접속해 보니 계속 글을 써 달라는 분이 계셨다. 걔 죽었어요.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걔 춤도 안 추고 글도 안 써요. 잘 보면 가끔 숨도 안 쉬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요. 라고 생각하다가,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서야 이렇게 몇 글자 끄직이고 있다.


술도 안 내킨다. 안 받을 거 안다. 그리고 돈이 아깝다. 휘황찬란하고 음악이 나오는 곳에서 알콜까지 몸에 들어가면 이 허약해빠진 몸뚱아리는 순식간에 붕괴할 테니까. 밥에 국을 말아 왔는데.. 이제 먹어야겠다. 뎁혀 먹는 건 귀찮고 살아 먹는 일도 귀찮아서 먹는 건 3분 안에 꾸역꾸역 욱여넣는다.


이렇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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