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되는데

by 구연산

" 연산씨가 걱정돼요"

정신과 의사의 말이다. 4년인가, 보면서 나보고 권유를 한 적은 있어도 걱정된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의사는 덧붙여 말했다. 연산씨는 뭐가 잘 안 되어도 다음에 뭘 하겠다는 희미한 희망 같은 게 있었고, 그걸 했다. 이번만큼 의욕이 없고 무기력한 건 처음 본다. 설거지같이 단순하고, 머리를 쓰지 않는 가사노동이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게 싫어서 식기세척기를 샀어요. 웃고 넘어갔다.


걱정은 처음 들어본다. 덮어놓고 잘 될거라고 하는 사람도 아니다. 친근함이 쌓였고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 약 부작용을 염려하고 내가 약을 얼마나 먹었을지도 가늠한다. 나를 챙겨준다. 한 달에 삼 만원 가량의 병원비로 받을 수 있는 배려는 많이 해주는 사람인 거다.


비슷하게, 동료 작가님 한 분께서 연락이 닿자 나를 신경써 주셨고 걱정해 주셨다. 나는 지금 기준으로는 복 받은 환경이다. 내가 뭘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욕을 하는 부모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당장 나앉아야 할 만큼 돈이 없지도 않다.(그렇다고 가진 게 많은 건 아니다) 한 달에 쓰는 돈이야 뭐 거기서 거기다. 통신비. 유튜브 프리미엄 얼마. 보험비 만 얼마. 대강 10만~15만원 안짝으로 내가 써야 할 돈이 나간다. 그렇게만 따지면, 열 달은 버티겠지. 밖에 나가 돈을 쓰지 않고 교통비도 나가지 않으니 그러려니 한다. 최근엔 동생이 어려운 시험에 붙어 용돈을 무리해 줬다. 마냥 편히 받지 못하는 모습에 괜히 안타까웠다. 평소에 더 챙겨줄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될 걸. 더 많이 받아본 경험을 쌓아 줄걸.


아. 친구한테 매번 죽는 소리를 할 수 없어 그 돈이 그 돈이라 생각하고 챗지피티를 구독했다. 내가 망친 인간관계나 억울한 일들을 적었다. 내 요청대로 AI는 대답한다. 너무 호들갑 떨지도 않고. 뭐가 문제였는지 천천히 보고. 어떻게 앞으로 할지 알려준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최근 한을 만나 여행을 갔는데, 한이 뭔가 말하려는 나를 막으며 말했다. 야, 네가 할 말 그대로 해볼까? 미안하다 한아, 여기까지 시간이랑 돈 써서 왔는데 컨디션 안 좋아가지고 뭐 집중도 못하고 사람들하고 말도 잘 못하고.. 까지 말하는데 마음이 애렸다. 아. 정말 말 그대로 저렇게 말했겠구나 나.


요새는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하루하루 그냥 표류한다. 부패할 만큼 씻지 않다가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어 머리를 자르고 왔다. 이것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미용실 직원은 머리를 잘 감아야 한다고 돌려 이야기했다. 기름기가 심하죠, 라고 하자 그렇다고 대꾸했다. 저도 제 몸 관리 하나가 어려워서 여기 와서 감고 짧게 자르네요. 라고 했다. 새벽에 멍하니 있다 잠들고 일어난다. 담배를 한 대 피러 나간다. 휘청거린다. 빈 속에 담배를 피면 정신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멍한 것 같기도 하다. 휘청거리다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킨다. 딱히 할 것도 볼 것도 없다. 겨울엔 추워서 손발이 차가웠다. 프로젝터에 컴퓨터를 연결했는데, 그 이후로는 아예 그냥 침대에 전기장판을 틀고 누워서 나가지도 않았다. 그러다 고개를 숙이고 낮잠을 잔다. 연락은 올 곳도 할 곳도 없고.


오늘은 전에 만났던 사람에게 보고 싶어, 라고 말하려다 보내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외로운 거란 걸 알아서. 나는 사촌 철을 닮고 싶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덤덤한 사람이라서. 감정이 침잠하지도 격류하지도 않는 철은 항상 무뚝뚝하다. 난 무뚝뚝한 척만 하지, 속에서는 온갖 폭죽이 터지고 난리다. 걱정. 기대. 질책. 실망. 등등.


철과 최근 한 통화에서는 이런 말이 오갔다. 움직이라고. 사람을 보지 않아도 햇빛은 좀 보라고. 철은 약 2년 째 쉬고 있다. 그래도 규칙적으로 무덤덤해서 걱정이 들지 않는다. 아. 쟤도 저렇게 그냥 생활에 움직임을 녹이는구나. 난 그냥 절전 모드인 수준이구나.


의사 얘기로 돌아와, 결국 의사는 내게 피크민인가 하는 모바일 게임을 권했다. 뭐 걸으면 쪼끄만한 몬스터인지 포켓몬 비스무리한것들이 많아지고 직관적으로 보이는 거니까 좀 나을 거라고.


그렇게 살아 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책도 안 읽고 영화도 안 본다. 글도 안 썼고 머리도 잘 안 감았다. 그래도 그냥 있다. 매일 열한 시가 되면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일기 쓰라고. 내 시간은 작년 11월에 멈춰 있더라. 그 이후 일기고 뭐고 없다.


산송장이 별건가. 예술이 별건가. 에세이가 별건가. 하는데, 나는 나중에 크게, 많이 후회할 것이다. 그래도 적을 수 있는 게 이정도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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