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오래 방에 숨어있었다. 내내 숨어만 있지는 않았지만 타인,아니 주위 친구와 나의 상황을 굳이 비교해보면 집 안,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시간과 날짜가 압도적으로 길고 많다.
최근엔 예술인이 되었다.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붙은 지 한달 반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실감을 못 하고 있으니. 갈 때마다 불안하다. 나의 얕은 바닥을 타인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하고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한다. 말도 참 못 한다. 공연을 관람하고 감상평이라도 하면 나는 황망히 조립이 덜 된 문장을 입에서 와그락달그락 쏟아낸다.
새로 들어갈 공연의 구성안이 도착했다.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이게 뭐지, 였다. 그보다 이 장르를 해본 일이 없으니 정말 아주 당연한것도 몰라 친구에게 물었다. ㅇㅇ에서는 안경 쓰고 안 하지? 렌즈 끼지? 그렇다고 했다. 모임에서 그 얘기를 했다면 천치 취급을 당했을것만 같다. 이미 다 같이 붙어서 같은 돈을 받고 있는 일종의 일터에서 나만 전 이것도 모르구 저것도 몰라요 하는 건 상대에게도 관객에게도 심지어 나에게도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으으, 하고 몸을 떨었다.
사람 대하는 건 참 어렵다. 그게 누가 되었던 어렵다. 특히 나는 말을 잘 못 하는데, 쿠션어나 스몰토크를 전혀 하지 않고 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정보'만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고 그 사람이 개를 키운다는 걸 알았다. 남는 강아지 간식이 있어 그걸 한 봉지 가져다주고 싶다. 그럼 내가 출력하는 말은 닾뒷말 다 떼어먹곤 집에 강아지 가리는 음식 있어요? 만 묻는다. 상대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의사는 내가 정보만 말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친구들이랑 날씨 얘기나 잡담 잘 안 하냐고 했다. 잘 안한다고 했다. 부친께서 집안 오디오의 80% 이상을 채우기에 어지간해선 나는 집에서 목을 거쳐 내는 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그렇게 살았다. 아까 오래 숨어있었다고 했다. 그 때는 정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렇게 띄엄띄엄 12년인가.
악의나 공격성이 없다는 걸 아는 나의 친구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으나, 나를 처음 보는 이들은 무표정하고 어조 없는 말투에 당황하는 일이 자주 있다.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건지 이렇게 변한건지는 모르겠다.
오래 집에만 있었다 했다. 공연 구성안도 왔다. 이제는 정말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이 아득바득 물고 기어들어왔다는 사실을 아주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대충 하면 관객은 안다. 무대에선 티가 난다. 내가 알고 감독이 알고 다른 퍼포머가 다 안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건 몰라서건 그런 건 이유가 되지 않는다. 무대에서만큼은 그럴 수 없는 곳이라고 믿는다. 무대에서의 실수도 귀엽게 봐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를 보는 사람들 중엔 없으리라 생각한다. 남의 공연을 볼 때도 빡빡하게 보는데, 내가 하는 공연이라고 나한테만 면책권을 쥐여주고 이래서 저래서 하면서 무대 아래와 뒤의 일을 가져다 덕지덕지 변명과 핑계로 대고 싶지 않다.
여하간, 오래 혼자 있었고 모르는 일을 하고 사람 대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가 뭔가 싶은데, 오래 혼자 있다 보니 사람 대하는게 어렵고, 사람 대하는 일을 하면서 협업을 하는 게 어지럽고 긴장감에 구역이 난다. 아니 진짜 말 그대로 하루에 내용물 없는 토악질만 열 몇번씩 한다. 그럴 땐 위부터 식도가 뒤집어지려고 하는 것 같다. 불안이 밀려온다. 이번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만약 어찌어찌 해낸대도 올해 이후 또 일거리가 없다면. 나는 어디에 가야하고 어디에서 대체 뭘 해야하지 싶고, 반갑기만 해야 할 친구의 결혼소식이 물에 숨은 귀신같이 느껴졌다면 어떡해야 하는가. 나는 대체 언제...따박따박 돈이 나오는 직장에 1년 이상 근무하며 앞으로의 삶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다는 건가. 내 나이에.
엘리베이터에서 애기들을 마주치거나 하면 아저씨나 삼촌이라고 불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나이 먹어가며 처음으로 내가 바라던 일을 따냈다. 바라던 사건들은 몇 건 있었으나, 경력으로 남을 수 있는 건 이게 최초이다. 그 외에는 솔직히 경력이 아니라 경험이다.
13층 아줌마는 여기에 처음 입주할 때부터 봤다. 그럼 한 20년 본 셈이다. 저번에 날 보고 일은 하니? 라고 하시기에 저분은 친절한데 가끔 오지랖이 좀 그렇네 라고 생각했고, 아줌마도 다행히 그 다음에 마주쳤을 때 사과하셨다. 미안했다고. 근데 나같아도 궁금하긴 할 것 같다. 떡지고 헝클어진 머리에 삐죽삐죽 난 수염, 그리고 새벽이고 낮이고 정해진 시간 없이 반팔 반바지 입고 나가 담배를 피우는 걸 보면 쟤는 뭘 해서 먹고살고있나 싶으실 수도 있겠다.
그 이후 예술가라고 직함을 달게 되고, 다시 마주칠 일이 있었다. 취직은 했니? 하길래 아 네 ㅇㅇㅇ에 다녀요. 아 거기 공연장? 거기 뭐 사원이야? 아니요 거기 예술가로 계약 따서 들어갔어요. 어 그래 너는 그런게 어울린다 옷도 그렇고(원색 옷을 자주 입는편이다 내가). 그리고 끝이었다. 집에 들어가니 괜히 허망해졌다. 개운하지도 않고, 올해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내 방으로 다시 기어들어가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잘 모른다. 내가 뭘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정답을 몰라서 오답만 피해 걷는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내가 뭘 모르는지도 잘 모르는 곳에 스스로를 내던졌다. 아득바득 매달리고, 배라고 치면 그게 조각이 나고 구멍이 나 물이 줄줄 새도 어떻게든 도착만 하면 뭐라도 될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안 믿으면 무너지고 부서질 것 같다. 속이 뒤집어지게 구역질을 하고 현기증이 나도 10년 넘게 지난 칙칙한 아늑함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뭐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