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너무 아껴도

by 구연산

말을 너무 아끼고 자르다 탈이 난다.


전엔 말이 너무 많아서 손해를 본 일이 많다. 쓸데없는 말을 굳이 해서 무용단에서 쫒겨날 빌미를 만들어줬다던지, 많은 인간관계에 끝을 앞당긴다던지.


그래서 말수를 줄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필요없다 싶은 문장은 다 쳐냈다. 그랬더니 이제는 말을 너무 토막내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결국 입을 아예 다물고 있어야 중간은 가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거다.


최근 만난 의사는 내게 그랬다. 연산씨는 지금 일 다니는 곳 가면 인사 잘 하고요. 자기 할 일 열심히 하세요. 그래야 내가 알듯 다른 사람들도 연산씨가 악의가 없고 사람을 대하는 데에 좀 서투른 사람이라는 걸 알 거에요. 지금은 사회성을 길러나가는 단계니까, 굳이굳이 말을 많이 하려 들지 마세요. 라고.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사회성을 길러 나가는 것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이가 없지만 그게 나인걸 어쩌겠나. 꼭 세상이나 타인의 악의가 아니더라도 내게 생겼던 문제 중 일부는 나의 말하는 방식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생기곤 했으니.


최근만 해도 그렇다. 동료 예술인들과 수업을 듣던 중, 각자는 자신이 만드려는 공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명확했지만 이 얘기를 꺼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를 구성하는 문장은 '나는 죽어서도 사람이 싫었다' 같은 강렬한 문장이니. 10여년 간 날 지탱한 내 마음의 중심에는 고통이나 후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되지 못한 나는 나인 채로 살고 있다 따위의 문장이 존재한다. 나는 내가 만드려는 공연을 위해서는 그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예술인들이라 하여 뭐 특출난 인간들은 아닌지라,(비하의 의도가 아니라,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이런 얘기를 했다간 지금까지의 먹칠을 잔뜩 한 내 이미지에 더해 아예 함께하고 싶지 않을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것 같았다. 나는 15분 정도 고민을 하다 결국 그대로 이야기를 꺼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말에서 뺼 수 있는 건 다 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필요한 쿠션까지도 빼 버려 이 사람이 대체 왜 이러지? 싶을 정도의 말을 할 때가 있다. 이번 일이 그랬다. 사람이 싫다는 문장에 대해 이야기한 후, '그런데 이 작가는 그러면서도 생에 대한 미련과 의지를 끊지 못해요 그래서 살아가는 데에 또 의미를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지 않을까요? 그런 내용을 담은 오브제나 공연을 만들고싶어요'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얘기 후, 다른 예술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경험이 생각나 그걸 또 얘기했다. 저는 닭을 생매장하고 삽으로 패서 죽일수밖에 없었어요. 라고. 시체 냄새가 역했습니다.

(근데 하는 나도 기분이 참혹하고 이짓거리를 해야되는 나도 당하는 닭들도 불쌍했구요 우리도 이렇게 원치않게 타인에게 고통을주는 일들을 하고 스스로 고통받지않을까요?)라는 문장이 빠진 셈이다.


돌이켜보면 뭐 이런 미친놈이 있나 싶다. 세상을 좀 더 밝고 아름답게 보는 자들 앞에서 나는 어둠과 절망에 대해서만 말을 쏟아냈다.


빈은 내 얘기를 듣고 연산이 너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너무 서투르다 했다. 가끔은 안타깝다고. 평판을 스스로 깎아먹고 있어서 속상하다 했다.


피디나 타 감독들하고 잘 지내는 편이니 괜찮지 않을까? 했더니 빈은 '그럼 너랑 같은 위치에 있는 다른 동료 예술인들이 너를 고깝게 보겠지. 우리하고는 잘 못 지내면서 피디한테만 알랑거린다고.'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 채 황망해한 채 밤을 지새고 그 날과, 그 전 공연에 있었던 걸 떠올렸다. 내게 나름 호의적이었던 사람들도 그 호의가 가셨고, 내가 모임에서 말을 하면 누구도 맞장구를 치지 않는다. 조를 짜서 해보는 워크샵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위치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


다 내 잘못이다.


나는 내 할 일을 잘 하고 싶다. 그와 동시에 사실 같은 배우들에게도 속으로 존경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하고 동시에 나를 혐오하지도 못한다. 망했으니 앞으로나 잘하자! 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간 혼잣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말을 뱉는 순간 내 안에서 꺼져 버린 촛불에 불과하다.


나는 잘 지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람과.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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