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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 Aug 06. 2020

제자를 위한 탄원서

우리 반 아이가 '피의자'로 법정에 설 때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름의 여유를 찾은 어느 날, 3년 동안 가르쳤던 학생 한 명이 피의자 입장으로 법원에 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가 2년 전 초임 교사일 때 처음 담임을 맡았던 반의 학생이기도 했다.


 2년 전부터, 아이는 유난히 지각을 많이 했다. 3교대 공장에서 일을 하는 까닭에 아침 준비를 도와줄 수 없는 어머니와 초등학생인 남동생과 살고 있기 때문에 알람을 듣지 못하는 날마다 으레 지각을 했다. 그런 날이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점심 즈음 나타나곤 했는데 급식판이 무거워질 정도로 밥을 많이 먹었다. 하루는 밥을 많이 먹는 이유를 물어보자,

"이게 제 첫끼이자 마지막 끼예요."

라며 멋쩍게 웃었다. 급식이 아니면 굶는 날이 허다하다고 했다. 연륜이 없고 사회생활 경력이 짧았던 내 눈에도 아이의 가난은 선명하게 보였다.


 청소년기의 가난은 '끼니를 굶는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특히 소위 잘 나가는 무리에 속해있는 아이에게 가난은 치명적인 것이다. 축제 때 입을 반 티도 구입하지 못할 형편이지만, 짝퉁 발렌시아가 티셔츠는 사 입어야만 무리 내에서 체면이 섰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돈이 필요해서,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야동을 불법 사이트에 게시해 돈을 버는 중3 남자아이.


 신문기사에서 접한 일이었다면 나는 "누가 애를 저렇게 키운 거야." 라며 비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가'가 내가 되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잘못을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 잘못의 배경에는 가난이 있고 학교의 무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법정에 제출하는 탄원서를 작성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신했던 내게 탄원서를 쓸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검색창에 '탄원서 쓰는 법'을 검색해야 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다름이 아니라 피의자 OOO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간곡히 부탁드리고자 이 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하여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교육자로서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탄원서의 일부)

 

 나는 어떻게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했을까. 성교육에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달라졌을까? 교육비를 지원받을 수단을 적극적으로 찾아주었다면 적어도 그런 행동은 안 했을까? 과거로 돌아가도,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지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교육은 인간 행동의 바람직한 변화'라는 정의 아래에서 교육자인 내가 아이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 그것만이 명백한 사실이다.


 어쩌면, 교육의 힘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학교교육은 가정 환경이라는 변수를 넘어설 수 없다회의감 섞인 생각이 들기도 하고, 모든 가난한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며 아이의 선택 자체를 탓해보기도 하지만, 결국엔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앞으로 남은 교직 기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비행 청소년을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만나게 될 것이다. 탄원서를 쓸 일이 더 생길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교사인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가정환경이 그러해서'라며 아이를 두둔해야 할까, 아니면 교육의 힘으로 변화시키지 못한 나를 탓해야 할까. 여전히 풀지 못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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