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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 Aug 04. 2020

스물다섯, 시골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동료와 24시간 중 16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은

"엄마! 나 합격했어! 그런데 왜 눈물이 나지?"

 임용고사 삼수생이었던 나는 합격이 너무나 간절했다. 그 간절함의 크기는 너무도 커서  25년간 서울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로 하여금 연고도 없는 도 지역에 원서를 쓰게 했다. 그때의 나는, 깜깜한 밤에 손전등을 켜고 퇴근을 해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디서 일해도 좋으니 합격만 하자는 간절한 심정이었다. 하늘이 이에 감복했는지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나는 그 해에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깜깜한 밤이 되면 은은한 거름 냄새가 나고 귀뚜라미가 우는 시골 마을 중학교의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발령받은 학교가 있는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래도 햄버거 가게는 있구나'라며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뿐, 'OO읍 OO리'라는 주소가 붙는 이 동네는 젊은이들이 즐길 거리가 단 하나도 없어 보였다. 퇴근 후 친구들과 맛집 탐방도 하고 가끔 학원이나 필라테스를 다니며 자기 계발도 하는 삶을 줄곧 꿈꿔왔던 나는 절망했다. 이 동네에는 친구도 없고 맛집도 없고 학원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학교의 퇴근 시간은 4시 30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꿈꿨던 것보다 훨씬 행복한 퇴근 후 삶을 즐기고 있다.

 내가 발령받은 학교는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 있고 아이들이 성정이 다소 활발한(거친...) 편이라 이 지역에 사는 교사들의 선호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천만다행으로, 나와 같은 처지인 신규 교사가 매년 5명 이상 이 곳으로 온다. 즉,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여덟 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놀 거리가 전혀 없는 시골에서, 20대 중후반부터 많아야 30대 초반인 미혼 청년들이 친해지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그저 저녁 식사를 매일 함께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학교 텃밭에서 기른 부추를 따다가 특수 선생님의 집에서 전을 부쳐 먹었고, 어느 날은 영어 선생님이 기른 바질로 8인분의 오일 파스타를 함께 만들어 먹기도 했으며, 퇴근 후 밤이 너무 긴 나머지 막걸리를 직접 담가 마시기도 했다. 음식의 힘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어서 함께 요리하고 먹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벽을 허물었다.  

직접 기른 바질을 넣어 만든 오일 파스타

"내가 꿈꿨던 학교는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순수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무 거칠어서 놀랐어요."

"이렇게 시골에 처박혀 있다가 연애는 언제 하죠?"

"애인이 저 몰래 바람을 피웠어요..."


 처음에는 학교나 수업에 관련된 고민을 이야기했지만 점점 친구가 아니면 나누지 못할 고민들까지 나누게 되었다. 수다가 너무 긴 탓에 가끔은, 아니 꽤 잦은 빈도로 열두 시에 서로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8시간 뒤에 봐요."라는 인사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사실, 현재 진행형이다.)

여덟 명의 전문가들이 모이면

 항상 모여서 수다만 떠는 것은 아니다. 8명의 선생님들 모두 전공하는 과목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교류하며 배울 점이 참 많다. 단적인 예로, 영어 회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종종 어려운 부분이 생기면 영어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면 영어 선생님은 강남 한복판 유명 어학원 강사도 울고 갈 수업을 해 준다. 또 음악 선생님의 도움으로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던 통기타 연주배워 보기도 했다.(아주 금방 관두기는 했지만...) 체육 선생님에게 매주 배드민턴 강습을 받기도 하는데 전문가의 코치를 받은 덕에 실력이 날로 늘고 있다. 여덟 명의 선생님들은 이렇게 서로의 재능을 활용해 취미를 늘려가고 있다. 이를 테면 시골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재능 품앗이'인 셈이다.



아무튼! 시골에 떨어진 나는 어쩌다 만난 사람들과 매일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7일 중 이들과 함께 하는 날은 5일,  24시간 중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16시간이다.(가끔 한 집에서 잘 때도 있기에 24시간일 때도...) 아마 도시로 발령받았다면 동료들과 이 정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동료와 함께하는 시간이 이토록 즐거웠을까? 아니라고 감히 생각한다. 아마 회식이라면 몸서리를 치는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수다 떨 친구를 만나러 번화가로 가거나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학원으로 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퇴근 후 일상은 분명 내가 대학생 때 꿈꾸던 직장인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곳 OO리에는 네온사인도 없고, 불금도 없다. 그렇지만 찾아보면  나름의 재미가 있다. 혹시나 시골에 떨어져 절망하는 또래 청년들이 있다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시골이 더 재미있을 때도 있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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