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살 은지, 그리고 지금의 나
To 승현
승현아 봐봐, 머리에 혹이 났을 때
폴댄스하다 온몸에 멍이 들었을 때
아팠지만 다 지나갔지?
그거 18년 된 감정이야.
그땐 그 감정을 어려서 서툴러서
못 다뤘고 이제야 울 수 있게 됐어.
용감해! 우리 승현이~
다 괜찮을 거야.
계속 죽도록 아프진 않을 거야.
머리에 혹처럼 온몸에 든 멍처럼,
그렇게 잘 지나갈 거야.
물 흐르듯이 그렇게 잘 흘러가길 바라.
너의 시간들이 2008년에서,
더 멈추지 않길 바라.
네가 이 기억을 잊는다고 해도
네가 깊이 사랑했던 사랑의 형태는
절대 변하지 않아.
언젠가 다시 마주한 기억에,
행복하게, 예쁘게 그냥 그렇게 웃어주자.
지금은 그냥 울었으면 좋겠어 많이.
지나 보내고 나면 참 귀했구나 할 거야.
그냥 이만큼 사랑을 깊게 할 수 있는
너를 나는 존경해.
지금은 많이 외롭겠지만,
흔한 경험이 물론 아니니까..
시간이 지나면 네가 이 경험을
겪은 까닭에 더 깊이 있게 작품에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 거야.
그 시절의 너도 너고
지금의 너도 너야.
그러니 죄책감 가지지 않을게.
눈물이 왈칵 나는데, 누군가는 내게
울리기 싫어서 내 정체성 뒤흔들기 싫어서
그 내 거절에 밤새 울었을지도 몰라.
나를 울리기 싫었던, 좋은 것만 예쁜 거만 보길 바랐던 그 어떤 사람을 위해서라도
잘 지내자 나랑.
근데 승현아 너 그거 알아?
13년 된 해리성 기억 상실증에,
기적처럼 찾은 그 기억에도
너는 매일매일 울었어.
근데 하물며 2008년, 18년 된 기억이야.
이제야 안전해져서 울게 됐어.
이건 슬픈 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 감정을 느끼게 된 걸 더할 나위 없이
다 감사해야 해.
너처럼 사랑을 깊게 느끼는 사람은
세상에 결코 많지 않아.
조금 더 울어. 뭐든 다 괜찮으니까.
울다 보면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너를 발견할 거야.
p.s 승현아, 기억은 다 지워지지 않아.
다만 네 환경에 의해 조금씩 변화하는 것뿐야.
네가 인간으로서 이 서랍 상자를 다 닫는다고 해도
작가 이승현, 예술가 이승현은 이 기억을
사무치도록 절대 잊지 못할 거야..
그러니 울어도 되고 외로워도 되고.
슬퍼도 된단다 다,
18살의 은지였던 그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그건 네 잘못이 아냐.
그 나이에 정체성을 지키겠단 결정을 한 건
너 아주 용감했어.
상대의 마음을 거절한 건 너무 아프지만,
상대의 마음은 그건 엄연히 상대의 선택이었고.
그 사람의 인생이야.
너를 더는 흔들지 못하겠다.
너의 인생에서 이제 멀어지겠다 그렇게
결정한 것도 다 상대의 선택이야.
그러니까 그게 뭐든 절대 네 탓이 아냐.
상대방이 가슴에 사무치도록 운 것도,
밤새 못 잔 것도 계속 눈물 흘린 것도
결코 네 탓이 아냐.
승현아, 타이밍이 달랐던 것도
전혀 네 탓이 아냐..
죄책감 가지지 말고
그냥 그 시절 너를 느껴,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그건 다 너야.
어떤 모습이든 그런 너를 사랑할게.
울고 나서 제자리를 다 찾으면
그땐 내게 말해줄래?
뭐가 그렇게 보내기 싫었는지..
네가 내게 말해주면 나는 그냥 아무 말 않고
여기서 꽉 껴안아줄게.
"잘했어. 이승현, 잘 울었어."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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