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빵점짜리 딸로 살기로 했다.

-내가 작가가 된 진짜 이유

by 이승현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소통이 전혀 없는 집안이었다.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족보다 더 대화가 단절된, 한마디로 ‘무늬만 가족’이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나는 중학교 시절 집에서 밥 먹는 게 미치도록 싫었다. 내가 마치 새장에 갇힌 앵무새가 된 기분이었다. 집에서 얘길 하고자 의지를 가지고 있는 건 그 당시 내 눈엔 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17살의 나에게 아빠는 몹시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너무 무서웠고, 엄마는 마치 집안일을 여자가 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말하는.

편견을 잔뜩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 당시 나는 늘 엄마만 요리하고 나와 동생을 다 케어하는 게 정말 불만스러웠다. 왜 집안일과 육아가 늘 엄마 몫인지 그게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에게 아빠의 역할이 정말 컸는데.. 그 당시 17살이던 내게 아빠는 다 쓰러져가는 지붕 같았다.

언제라도 태풍 불면 날아가서 소리 소문도 흔적도 남지 않을 것 같은. 엄마는 쓰러진 지붕 사이로 겨우 하나 남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기둥, 혹은 거의 다 끊어진 썩은 밭 줄 같았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내 눈에 동생은 아주 자유로워 보였다. 마치 고삐 풀린 송아지 마냥. 비둘기가 푸드덕푸드덕 자유로이 날갯짓하는 것처럼 그런 동생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꽤 부러웠었다. (지금은 절대 아니지만)


우리 집은 내 10대 시절 엄마, 아빠가 매일매일 싸웠고 별거에 이어 이혼 얘기까지 오갈 정도였다. 상황은 꽤 심각했다. 그래서 나는 늘 불안함에 떨며 정서적으로 안정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건 내 큰 욕심이었던 걸까?

한 번은 내가 고1에 올라가는 아주 중요한때였는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내가 꼬박 1년 넘게 속앓이 하며 참다가

그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집에 가기 싫어. 숨 막혀, 차라리 부모님이 이혼하셨으면 좋겠어. 엄마는 마치 내가 엄마 역할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강요하고 억압해. 동생이나 아빠에게는 집안일을 함께 하자고 하지도 않으면서 아빠 눈치 동생 눈치는 보면서.. 나에게만 도와달라고 해. 아빠는 나랑 대화 조차 하지 않아. 동생 하고만 가끔 대화 하지. 그것도 밥 먹어라, 이런 말들. 이게 가족이야? 무늬만 가족이지. 그리고 집안일은 여자만 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다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생각해?"


불행하게도 그 당시 그 친구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지레짐작 조차 하지 못 했다. 되려 나보고 남동생을 더 챙겨줘라, 엄마를 더 도와줘라. 아빠에게 애교를 부려라 등등.. 그런 얘기를 했다.


자긴 아빠랑 가장 친하다면서. 그런 그 친구가 나는 몹시 부러웠다. 나는 그 당시에도 왜 누군가를 케어하는 몫이 다 연장자이거나, 여자의 몫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친구에게 놀라 반문했다.


"누나라서, 언니라서, 여자라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혼은 부모가 하는데 내가 왜 피해를 봐야 해?

나는 하루하루가 벅차고 힘들어 죽겠는데, 지옥이 따로 없는데. 왜 부모는 매일매일 싸우고 이혼 얘기 오가면서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 느끼고, 사랑받아야 할 이 시기에

내가 매일매일 남몰래 울고 불안에 떨게 만들어?

그리고 부모는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정식으로 단 한 번도 사괄 안 하는데? 이혼하는 건 둘인데, 내가 왜 무섭고 불안해야 하는데! 나 이제 밤마다 악몽도 꿔.

그리고 내가 내 남동생을 케어하는 게 왜 당연해? 내가 내 동생 누나가 아니고 동생이면 그럼 안 챙겨도 되는 거야?"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말을 많이 해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몹시 흥분했고 17살의 나는 결국 울고 말았다. 누군가의 눈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넌 첫째잖아."

친구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겨우 이거였다. 그 친구는 애교가 많고 가족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던 막내였다.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상처를, 내 치부를 괜히 말했다고 생각했다.


"첫째라서?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데..

왜 희생해야 해? 첫째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진짜 반대로 첫째가 오빠면, 오빠 보고 여동생 밥 챙겨주라고 전화까지 하는 부모들은 대한민국에 극히 드문 거 알아?

대한민국 진짜 이상해. 남녀평등하지 않다고!

고작 17살인 내가 깨달을 정도면 이거 그냥 미친 거 아냐?

나는 고작 17살인데, 그건 알 거 같아 이 세상이 이상한 거.

나는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마음 털어놓고 기댈 곳이 없어. 그래서 너한테 오늘 태어나서 처음 얘기한 거고. 근데 사람마다 사정이 다 다른 거니까. 어쨌든 내 얘기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그날로 그 친구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꺼내지 못하게 됐다. 그 친구가 말한 여자라서, 첫째라서, 누나라서, 언니라서.라는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고 나에겐 상처였으며 그때의 그 세상이 어땠는지 정말 적나라게 잘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면 할수록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건 집 안팎에서 모두 마찬가지였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 노골적인 차별이 많은 세상.


지금의 2020년보다 더 끔찍하리 만큼 여자가 집안일하는 게 당연시되는 그 세상에서 내가 아무리 잘못됐다고 더 얘기해봤자 나만 이상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성인이 될 때 까진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했다. 전쟁터 같은 그 집에서 그 당시 나는 아무런 무기도 없이 홀로 직격탄을 맞고 피 흘리는 아기 같았다.

내 주위에 상처 받은 날 도와줄 사람은 그 당시 아무도 없었다.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함께 울어주고 이야길 들어줄 사람 또한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를 치유하기 위해서. 그리고 전쟁터 같은 집안에서 내 영혼이 내 눈 앞에서 보다 빠르게 죽어가는 걸 본 그 순간, 사춘기 시절 나는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홀로 거기서 살아남아야만 할거 같았다. 늘 사랑받고 싶고 표현받고 싶던 17살의 나는 부모에게 받지 못한 애정을 그때부터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게 글은 생각보다 재밌었고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그때의 나를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했다. 나에게 글은 여전히 애증의 존재이고, 가족이며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여전히 글을 쓸 때면 심장이 뛴다.


나는 글에 농축된 한 자 한 자 의미를 되새기며 마치 숙제처럼, 나를 하나하나 더 알아가고 표현해 가는 법을 스스로 부딪혀가며 배워나갔다. 슬프게도 그때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걸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갔다. 대략 중학교 때부터 부모의 이혼하네 마네 얘기가 오갈 때 나는 글을 쓰며

내 자아 찾기를 시작했다. 글은 끊임없이 피 흘리며 울고 있는 아기 같은 나를 맹목적으로 받아주고 치유해줬다. (물론 상처 받은 모든 마음이 다 치유되진 않았다. 글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분명 있었다.)


글은 나에게 하나뿐인 가장 소중한 친구였으며, 가족이었고 내 전부였다. 내가 중학교 시절 썼던 글 들을 보면 내 심리 상태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중학교 시절 내 글은 늘 어둡고 슬프고 그런 식이였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왜 그런 글을 썼었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내가 만약 화목하고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 적이 있다. 그럼 나는 이 세상이 미쳤다며. 잘못됐다고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어. 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어" 라며 패기 넘치고 그렇게 당당하고 멋진 나만의 신념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의 나도 아마 작가가 되진 못 했을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이 불행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여기까진 못 왔을 것이다.


내가 작가가 된 진짜 이유는 그 누구도 보듬어주지 않던

나의 상처를 응급 처치하고 끌어안아주고

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알아가고,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순탄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내 방식대로 잘 살아남고, 잘 살아내기 위해서였다.


또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늘 보잘 것 없고 평범하다고 믿었던

내 나날들이 지금껏 단 한 번도 평범하지도 평탄하지도 않았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늘 세상에 불평불만이 많았던 부정적이던 나는 조금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감히 내가 만들지 못해도 내가 그런 따뜻한 글을 쓰고 그런 의식의 흐름을 가진 사람이 점차 늘어나면 언젠간 그런 더 나은 세상이, 따뜻하고 따사로운 세상이 될 거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대 사춘기 시절 엄마에게 너무나 사랑받고 싶어서 설거지도 하고 나 홀로 테이블을 박박 닦기도 했는데,

여자가 집안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엄마의 말에 충격과 상처를 받고 그 당시 내가 사랑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말도 안 되게 당연한 내 의무가 되어 버렸을 때, 나는 상처와 두려움에 떨었고 그때 그 심정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정말 비참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 부모에게 잘하려고 내 나름대로는 애쓰고 애썼는데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가 태어난 시점부터 나는 100점짜리 딸이 아니었다는 걸 어느새 알게 됐고 그래서 그걸 속시원히 인정하게 됐다.


수익이 불안전한 프리랜서 작가인 내가 아무리 엄마 아빠에게 문자로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해도.

내 동생이 주는 50만 원의 용돈이 부모에게는 더 달콤하고 100점이라는 걸 나는 깨달았고 진심으로 충격받았다.


그 이후엔 그냥 내가 말하고 싶은걸 말하고 하고 싶은걸 하고 이전처럼 나 자신이 상처 받아가면서까지 더는 나를 던지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잘하려고 노력하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나만 힘들 뿐. 엄마 아빠의 마음에 완전히 들 수 없다는 걸 느낀 그 순간, 나는 수년간 벗고 싶었던 착한 딸 콤플렉스를 과감하게 집어던졌고 그냥 나는 '나쁜 년'이라고 욕먹어도 좋으니까 나로 살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처음부터 100점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내 인생을 즐기며 이제부터 나는 빵점짜리 딸로 살기로 했다.


‘이게 다 널 위한 거야’ 라면서 내게 상처가 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부모의 의견에 흔들리고 흔들리는 내가 아닌. 후회해도 내가 하고 상처 받아도 내 인생,

부모가 대신 살아주지도 않는 소중한 내 인생.


그냥 나는 이젠 착한 딸을 멈추기로 했다.

처음부터 나는 100점이 아니었다고 인정하고 나니까 아주 속이 다 시원했다. 나는 내 인생이 있고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 있고 그냥 처음부터 우린 둘 다 부모 자식이라는 걸 빼면 그다지 공통분모가 많지 않은 둘 다 빵점짜리 답안지였단 걸 처음부터 인정했다면 좀 더 쉬웠을까?


내 부모도 나에게는 100점이 아니었듯이, 나도 내 부모에겐 아마 빵점짜리 딸일 것이다. 이런 걸 수치화 하긴 뭐하지만 차라리 홀로 고군분투하며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어린 시절보단 지금 이 순간 빵점짜리 딸이 된 지금이 난 더 행복하다.


나의 결점을 보완하고 나의 장점을 더 사랑하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며 인정하는 지금의 내 삶이 내 부모에게는 결국은 빵점짜리 딸이겠지만,

나에게는 겨우 빵점짜리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홀로 칠흑 같은 어두움을 견뎌온 내게 정말 잘했다고.

너는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보석처럼 빛난다고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네 인생은 절대 빵점 짜리가 아니야 이제부터 시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