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도 건물주셨고 부모님도 한 때는,

건물주 셔서 내가 세상 껌으로 봤지. 후우-

by 이승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저 생계형 작가다.

출간 제의도 괜찮습니다.라고 할 만큼

지금으로부터 한 2년간은 평범하게 살기 위해

그저 그 평범을 위해, 애쓰면서



앞으로 내 무기를 써 작가의 길을 가기 위해

그냥 하고 있다. 제법 즐기면서,

생각 많이 하지 않는다. 전보단,



그냥 해. 봐! 평범하기도 어렵지?

스스로에게, 자문자답 하면서



어린 시절 나는 주말마다 공연 보고

클래식, 연극, 과학 체험, 별 보러 가고

박물관 가고 등등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예술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예술엔 남다른 가치가 있고 평가는

관객의 몫이라지만 예술엔 그 값을 헐값이다

비싸다,라고 감히 매기는 게 아니라고

집안 어른들을 통해 배웠다.



예술엔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님, 할아버지,

증조할머니까지.



그런 걸 보고 자라서 한 점 한 점 작품을

마음에 모아, 내 마음에 걸어 남기다 보니

지금의 내가 예술의 길을 걷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고 정말 감사하다.



우리 집은 돈이 많진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외식하고

토일 주말엔 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무슨 체험이든 여행이든 놀러 든 갔었다.

그 기억이 전히 말 좋다!



내겐 매번 가는 거라 늘 우리 집 문화 같은 거였는데, 나는 내 친구들도 다 주말마다

가족들이랑 예술이든, 여행이든 어디든

놀러 가는 줄 알았다.



한 번은 체험을 매주 하니 지친 초등학생이던

내가 어휴 지쳐, 또 가? 그만 좀 가. 라며

찡그리며 난 집에서 잘래! 생떼를 피웠는데.



친구는 그런 날 보며 마냥 부러워했다.

부모님이 바쁜데도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에

대해,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매번 독차지한 것에 대해.



엄마는 내게 아빠도 바빠, 바쁜데

널 위해 시간 내는 거야.

난, 나도 늦잠 자고 싶다고

이게 무슨 날 위할 거야?라고 대들어 보지만,



엄마는 내게 할아버지, 할머니도 일정 바쁘시고.

나도 바빠. 네 감성지수 더 발달하라고 이러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인지 난 전혀 몰라 어린 맘에

나도 애들처럼 주말에 자고 싶다! 쿨쿨..



지금의 내가 감성지수가 남달리 높은 것도

사실 우리 집안 어른들의 몫이 정말 크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



발레 하고, 무용하고 잠시 잠깐 하고 때려치우고

미술학원 가고 피아노 치고 집 가고 싶다며

때려치우고 재미없다고 안 한다고 생떼 피우고..



내 부모는 늘 돈이 많아서 시간이 매우 넘쳐서

그렇게 나를 체험하고 배우게 한 게 아녔다.



하물며, 할아버지, 할머니도 증조할머니,

친할머니도. 함께 내게 머물러준 그 시간이

나의 예술처럼 지금 걷는 이 길처럼 매우 소중하고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모든 어른들이 나를 지지하고 함께 주말마다

체험하고, 관람하고 예술을 함께 보며

그 값 히 매기는 게 아니라는 그 말이

어린 시절, 투명하게 내 마음속에 남았다. 계속.



아마 계속 보면서

나도 예술을 하고 싶어 졌으리라.



자연스럽긴 했어도 예술을 대하는 방식을

누구보다 고결하고, 품위 있고 이렇게 시간을 내

함께 예술 작품을 보는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음을

가르쳐주신 내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친할머니 증조할머니께 정말 많이 감사드린다.



늘 돈이 넘쳐서가 아니라 바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해서 IQ야 뭐 어쩔 수 없고..



아이 EQ라도 더 키워주고 싶었던 부모의 마음

주말에 쉬고 싶은 부모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언니 오빠들도.

다, 함께였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 이곳에 있다.



근데 그것도 커보니까 돈, 돈, 돈 하며 예술을

등한시하는 사람도 많아 예술 작품을 보고 싶지만 돈이 진짜 없는 사람도 많아 그래서 이 말을 뼈저리게 마음속 깊이 새기라고 했던 걸까 아빤 내게?



예술의 가치는 상당하고, 자유롭게 누구나

평가는 할 수 있지만 그 값은 그 누구도 헐값이라고 감히 매길 수 없다. 아빠가 특히 이 말을 많이 해줬다. 내 마음에 꼭 새기라고 했다.



아빠처럼 커서 어른이 되어도 예술적 가치를

못 알아보지 말라고. 아빠는 이미 조금 변해서

그런 동심과 그런 예술적 가치를 더 잃고 싶지 않아서 일부로라도 내 손을 잡고 바빠도 더 시간을

내 미술관에 함께 온 거라고 말했다.



이런 훌륭한 말을 내게 한 걸 아빤 전혀 모를 거야. 아빠가 말한 그 어린 시절의 동심, 예술의 가치.

그런 게 난 아직 어려서 어렵고 이해 안 가고 그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 이미 여기 온 걸로 아빤 노력하고 있는 거야. 스스로,



완전히 변한 건 아니야.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고 되려 아빠를 위로했다.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아빠의 그 말이 계속 내 뇌리에 남아

떠나가지 않는 걸 보면 나 이미 평범하게는

살기 그른 듯. 이러다가 나 진짜 사고 치겠다.

확 크게 획 긋겠다. 이러다가 정녕 예술하겠다.

진짜. 했던 8살도 안 된 꼬꼬마.



아빠! 나 이러다 진짜 예술하면 어떻게 해?

당차게 묻자 네가 좋으면 거지. 하든.

뭘 아빠 눈치를 봐. 근데 예술은 진짜 배고픈데?

솔직히 다른 일 하면 더 좋고. 우리 딸이. 했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젠 절실히 이해 가는 날이

오기도 했고.



참 웃긴 게 자취를 하면서도 뮤지컬 vip석 아님

안 봐~ 할 만큼 난 예술에 늘 가까웠으며

가난한 적은 딱히 없었다. 그냥 잠시 잠깐 내가

어려워도 딱히 돈에 급급하진 않았으니까.



아르바이트하면 그만이고 내 삶은 내가 개척해.

그리고 내가 선택해.

일이야 뭐 하면 되지였으니까. 늘,



근데 코로나 터지고 처음 프리랜서로 일이

없었을 때 헤.. 엑..! 나 가난해 에??

냉장고가 왜 텅텅 비어있어?

이런 적 처음이야. 아 하하..



처음 이 말을 실소하며 입 밖으로 꺼냈

나도 당황했고 황당하기 그지없었고

진짜 어이없었다.



IMF가 터져도 나는 딱히 가난에 가깝지 않았으며

늘 경제적 어려움을 절실히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내 삶의 판도라가 뒤바뀌었다. 삶을 대하는 방식도 감히 바뀌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하게도,



하지만 가난을 처음 겪었다고 해서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진 않았다. 난생처음 겪는 나만의

IMF가 그 레이스가 힘차게 시작된 것이다.



그땐 금이 많았으니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딸린 식구가 몇 명이며 부모님이 참 많이 힘드셨겠다. 싶다, 이제 와 보니, 그렇다. 쉬운 게 아니었을 것 같다. 모든 게. 전혀,



까다로운 안목에 미식가인 나를,

그리고 나보다 더 까다로운 동생을 함께 키운다는 건.



나야 겨우 나 하나뿐이지만 그래도 나는 가난해졌다. 내가 가진 금을 다 팔고 명품을 팔고

난 소박하게, 가진 게 없었지만 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0부터 시작했다.

마음이 간결해졌다. 참 편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가난하면 안 될 이유는 없어서

다시 삶에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이 세상에 수두룩, 이라는

엄마 아빠의 말에 사춘기 때도 과외하고

학원 다니고 성인 돼서도 하고 싶은 취미 즐기며

전혀 실감 못 했던 내가,



아.. 보통은 이렇게 사는구나

근데 내가 받은 사랑과 여유가 넘쳐

늘 당연하다고 여겼네.

뭐 야.. 전혀 당연한 게 아니잖아?



매번 여유 넘치게 살다가 딱 한 번 고꾸라져

보통 이하만 돼도 목숨 같던 자존심이 상했는데,

그건 다 한 때다. 철부지 시절에,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도 건물주셨고

부모님도 한 때는, 건물주 셔서 내가 세상 껌으로 봤지. 후우-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다는 게 2023년 들어 엄청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었다.



뭐.. 기아문제 까지는 내가 당장 해결할 수 없어도 환경,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처럼

기부하려면 나보다 어려운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고 절실히 본받아야겠다. 싶어졌다.

그때부터 마음이 달라졌던 것 같다.



생계형 작가 좋다 이거야. 이것도 아무나 못 해~

네가 능력 있으니까 두 가지, 세 가지 그 이상의

일을 해내지.라고 생각하니 보다 간단했다.

마음도 편하고,



나는 건물주가 꿈이 아니고 그냥 할아버지처럼

많이 열심히는 못 살아도



증조할머니처럼 정원사 두고 집사 두고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두고 딱 그렇게 말년엔 살 거야.

분명, 한다면 늘 해내니까. 나는.



심플한 내 마인드가 좋다. 부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든 그분들이 예술에 조예가 깊어 내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



그분들이 상당히 부자는 아녔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한 적이 여태껏 없어서.

하고 싶은 걸 미루거나 안 하게 한 적 또한 없어서. 나도 그만큼은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딱 일주일에 한 번 좋아하는 치킨을 먹고

고기반찬에, 가 좋아하는 해물! 채소 골고루.



주말에 가족들과 뮤지컬, 가족여행, 고궁 박물관 등등.. 그게 결코 쉬운 게 아녔다.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저는 사랑받은 만큼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될 거예요. 선한 영향력을 내는 사람.

초3짜리 아이가 한 말이었다.



증조할머니처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수 없어. 그게 뭐든 난 내가 해, 내가 선택해.

내 기준에 차야 움직이니까. 나는,



근데 기황 젊을 때 고생하는 것.

나는 내 롤모델이 증조할머니니까.

정원사 두고 집사 두고 일하는 아주머니 두고,

어릴 때부터 난 배짱 크고 스케일이 커



아마 내가 우리 집안 중 증조할머니의 피를

가장 빠방 하게(?) 물려받았을 거야.

감히 생각해 본다.



높은 지위 관리에 임하셨던 증조할머니와

다르게 난 일단 말단부터 시작해. 왜냐고?

내 꿈은 말단이 아니니까. 심플해~



말단 알바부터 계약직 직원, 정규직 해볼 수 있는 건 다 경험해 볼 거야.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나라는 예술 작품을 품고

원대하게 나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남들의 평가에 의식 안 해. 당장 뭐..

남들 눈에 내가 비전 없는 것처럼 느껴지면

뭐 어때? 남들 기준 암 오케이! 난 괜찮아.



마음대로 평가하라고 해. 지들이 지치면 그것도

나가떨어질 거야. 그들에게 칭찬받으려고

사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내 꿈은 나야! 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 시절, 그저 증조할머니처럼

러시아 여행도 다니고 더 어려운 사람들도 돕고

진정한 보스가 될 거야. 진짜 고마워해야 해 넌.



대가족 형태로 늘 같이 여행 다니고

예술 작품 체험하고 먹고픈 것 다 먹고

하고픈 것 다 하고.



잠시 잠깐 가끔 냉장고 비고 힘들어도 그 힘듦,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까 잘 비우고 잘 채우는

사람이 되자. 나는 증조할머니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해. 영원히,



할머니! 집사, 두고 사셨다면서요. 부러워요,

할머니. 할머닌 제 롤모델이세요.

저 정원사 있는 집은 처음 봐요! 기사님이야 많이 봤지만 주변에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내가 초롱초롱

순수하게 말하자 할머니는,



이까짓 거 뭐 어,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늘 최고의 자리에만 머무셨다는 증조할머니가

난 대박 멋있고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건 별 것도 아니지. 넌 나보다 더 잘 살 수 있어.

그걸 목표로 하지 말라는 듯이, 돈, 명예, 권력이

다가 아니라는 듯이. 큰 걸 보라고 말씀하셨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라고.



정원사, 집사, 아주머니, 기사 두고 사는 것보다

네 마음이 행복하면 된 거야.라고 말씀 하셨고

네 마음이 가장 중요해. 이런 건 언제든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겨우 부가적인 거야. 이런 건,



우와 아! 하며 할머니가 멋있어서 쳐다보다가

문득, 난 할머니께 대답했다.



할머니, 저 사랑을 정말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저 그냥 제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랑 베풀면서

살래요. 할머니는 날 보고 웃으며

기특하다며 어떻게 이런 애가 우리 집에서

나왔냐며. 아이고 오, 랑둥이 복 덩이라며

넌 크게 될 애라고 하셨지만,



나는 딱 한마디 했다. 부끄러워하면서,

진짜 그럴까요? 근데 엄마 아빠 저 보고 아직 멀었대요. 그러니까 절대 자만하지 말래요.

너무 빳빳하니 골판지 같다나 뭐라나.

그럼 수수깡처럼 힘 없이 부러지라는 건가?

강단도 없이. 전 아직 갈 길이 멀었나 뭐라나.



그리고 사람은 늘 겸손해야 한대요.

그게 크게 되든, 작게 되든 그런 것보 더 중요하대요. 늘 겸손 게 미덕이래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데 너는 아직

너무 빳빳하니 너무 당당하고 한참 멀었대요.



근데 할머니 저 약속할게요

그때가 되면 저 더 겸손할게요.

근데 당당하면 좋은 것 아니에요?



겸손의 미덕이야 차차 배우면 되지.

그러라고 부모가 옆에 있는 거 아니에요?

나 참 어이없어. 나 아직 초등학교 4학년도 안 됐는데. 그저 저학년인데, 차.. 황당하네.



초3짜리가 했던 당찬 말 들으시고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래 맞다. 네 말이 다 맞아! 아직 초등학생인데.

배우면 되지. 배움에는 끝이 없다.

이렇게 할머니가 돼도 계속 배워야 해.



그럼 아, 당당한 거랑 겸손한 건 엄연히 다르지.

어딜 가든, 어디 있든 뭘 하든

어깨 펴고 당당하게!

할머니가 오늘 너한테 많이 배운다.



세상이 나를 쥐고 흔들어도 아무리 보채고

아무리 시련을 100가지 아니 뒤에 숫자가

0이 무수히 넘치게 준다고 한들



나는 부모님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신 증조할머니, 친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언니 오빠들.

부모님 있다~ 이게 내 무기다. 뭐 어쩔래?!



사랑 많은 게 내 무기라 나는

세상이 감히 날 길바닥에 버려진

잘 떼어지지도 않는



하도 밟혀 새까맣게 물들어버린

껌딱지 취급을 해도



나는 뭐 그러든지 말든지.

고고하게 내 갈길 간다.



나는 증조할머니한테 우리 집안에서

가장 예쁨 받은 사람이거든~



세상이 날 질투하든 미워하든

그러든지 말든지. 암 오케이!



난 내 발전을 위해 시간 쓰기에도 바빠서 (흥)



p.s 우리 집안에서 제일 꼬장꼬장하시고

보스 느낌 나는 할머니가 다들 무서워 피할 때

나는 동그란 눈을 뜨고 할머니를 쳐다보면서

할머니 담배 좀 끊으시면 안 돼요?

그거 몸에 안 좋아요.라고 먼저 말 걸고

할머니 부축해 손 잡고 걷고



편지랑 할머니가 좋아하는 요거트도 드리고

그래서 지금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사랑

많이 받아서 어른들 대하는 것 되려 감사하고 편해.



그분들이 나를 편하게 느끼는 건

그리고 남녀노소 나를 재밌고 부담 없이

편하게 느끼는 건 아마 부모님의 사랑을 넘어

어른들께 너무 많이 배려받고

사랑받아서 일 거야. 헷 :)



그리고 그때, 난 순수하게 물었지.

할머니, 저 이렇게 할머니한테 많은 사랑받았는데 할머니가 제 에 없으면 누구한테

또 베풀고 표현해요?



난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할머니에게

예쁘게 표현하고 싶은데.



내가 아니어도 그 누구라도,

그 사랑을 베풀면 된다고.

그게 돌고 돌아오는 거라고

그 말의 의미를 난 조금은 실감한다.

제야,



그리고 어쩌면, 이미 돈, 명예, 권력보다

내 마음이 그리고 내가 가장 중요하단

멋진 할머니의 기준엔 내가 보다

더 큰 사람이 되어 버린 걸지도. 훌쩍,

약속했으니까, 앞으로도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도맡아 할 때 더 겸손할게요 저.

저는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란 공손하고도 또 고결한 존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