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지, 언젠가 난 상사병인 것 같다며.
갑작스레 나 죽을 것 같으니까.
제발 이리로 좀 와줘, 라며.
길가에서 쭈그려 앉아 오열하던 내가,
그 하찮은 내가
둔산동 그 어딘가로 호출하던,
그 SOS에 친구들은 나를 향해
달뜬 마음을 가지고 총알처럼 튀어 왔다.
이런 적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조금은 기쁜 마음이었을까?
내게 그저 감사하다고 말했다.
죽을 듯이 힘들어 보이는데,
내내 감정 표현 안 하면 어쩌지.
내가 끝내는 너무 걱정이 됐다고.
표현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친구들.
어느 카페에서 나는 그 사이 오열했다.
나는 그저 다 내 탓이라고 소리 내어 울었다.
창피한 것도 모른 채로,
나를 향해 비난하는 이들은 그 아무도 없었고 친구들은 두 손 모아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를 되려 안아주기도 했는데,
나의 마음이 내내 달뜬 채로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친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달려가라고. 우리가 이렇게 온 것처럼
서울로, 제발 가라고 더는 참지 말고 가서
왜 그랬는지 다 말하고 거절을 하든
뭘 하든 제발, 가서 참지 말고 눈 보고
진실되게 이야기하라고.
그랬는데 난 이 상사병의 무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꼭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듯이.
그렇게 난 말했었다.
우리의 관계는 다 나 때문에,
이미 끝이 난 것 같다고 더 되돌리기 힘들다고
상처 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내가 그 애에게 생채기를 줬다고,
그것도 가득. 일부로 그런 게 아니더라도
나 이제 그 애 얼굴 대체 어떻게 봐.. 아 하더니 난
그리고 우리가 만약 사귀면? 뭐가 달라지는데?
근데 서울 가면, 예쁘고 멋진 사람들 많잖아. 흐에엥.. 하고 걘 진짜 엄청 멋있는 사람이란 말이야. 난 울었다. 갑자기,
친구들은 내 감정선이 너무 참아
갑작스러울 것도 없다는 듯이 날 차분히 다독였다.
친구들은 너도 예쁘고, 멋진 사람이야.
너 좋은 사람이야. 그 애도 그렇게 말했다며,
그리고 그 애가 네가 좋다잖아. 이 바보야!
난 그 애가 널 왜 이렇게 귀여워하는지 잘 알겠어.
나는 귀여운 게 아니고 지금 여태껏 내내
진지한 거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친구들은 계속 나를 귀여워했다.
아 아, 현실 감각이 없었다.
그 애가 했던 말. 그건 시간이 지나 보니
누가 봐도 고백이었고,
열띤 마음에 그 애는 약속을 했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 여겼는데 난
결국 그걸 지켰는데.. 난 드라마 영화처럼,
진짜 기억을 잃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그 애와 내가 대체 무슨 사이지? 하며
왜 사인을 주지 않지? 왜 고백이 없지?
사인을 준다면 서툰 나라도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난 기꺼이 고백을 할 텐데.
이렇게 절실히 간절히,
그래서 널 놓지 않을 텐데-
친구들은 내가 쓰러져 기억을 잃었다는 걸
전혀 몰랐으니 아마 한 말이었을 거다.
이건 아무리 너라도 모르는 얘기니까.
아직도, 여전히,..
내 기억을 잃어 누군가 무슨 말을 했을 때.
퍼즐 조각처럼 수차례 맞춰야 하는 그 상황이,
그 시절이 사실 전혀 감당이 안 됐다고 나는.
매일 울렁울렁했다고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인지하고 인정하기가 무척 어려웠다는 걸,
이젠 다 말할 준비가 되어간다.
그 시절 나는 계속 헷갈렸다, 로 쓰여 있는
그날의 일기가 공백이 아닌 이제야
대답이 가능해진 건 내가 겪은 끔찍한
기억상실이 내내 너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10년이 넘게 회피를 한 턱에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고.
아마 회피만 안 했어도 더 빨리
난 기억을 찾았겠지.
근데 회피를 할 만큼 내내 모르는 척
딴 사람 일인 척 별 일 아닌 듯이 싱겁게 굴만큼
내 마음이 내내 생채기로 가득해 계속
피빨강이었던 거겠지.
그 생채기를 마주하면 내가 준 그 상처란
파편들이 그런 네가 떠올라, 마구 살 수가
없을 것만 같았던 그런 거겠지.
그래도 상사병, 누군가를 열렬히 연모하는
그 마음 내가 또 언제 그렇게 열렬히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나 있겠어.
감사히 여겨야지, 담-뿍.
겨우 그 그리움으로 당신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을 걸 알기에.
나는 상사병에 몸담아 그날의 일을
그날의 상황을 그날의 감정을 하나하나,
떠올려 곧 입을 떼 당신에게 말해 보려 해.
나는 이제 회피하지 않고 나는 이제
안정형이 되었으니. 당신이 내게 줬던 사랑,
나도 그냥 주면 되는 거 아닐까?
사람 대 사람으로 깨끗하고 맑은,
어여쁜 이 마음을 굳이 남녀의 사랑이 아녀도
챙겨주고 싶은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내내 한 발자국 물러서서 응원하는,
이 마음. 절대 판단하지 않는 이것을 난 또
사랑이라고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