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일. 형이 결혼을 했다.
결혼식 전날 밤, 분명히 편한 자세로 누웠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무슨 감정이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잠을 설쳤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부모님께서도 쉽게 잠에 들지 못했던 걸로 기억을 한다. 정작 듣기로는, 신랑과 신부는 그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잠에 들었다고 했다.
결혼식 사회는 형의 고등학교 친구, 승환이 형이 맡았다. 만난 지 칠팔 년 정도 지났을 텐데, 너 혹시 정민이니, 물으며 나를 먼저 알아보았다. 정말 반가웠다. 사회를 맡아 긴장한 형을 열심히 응원해주었다.
하객분들께 열심히 인사를 하니, 금방 두시가 되어 결혼식이 시작됐다. 양가 어머니의 화촉점화. 형에게 호연이 누나의 손을 건네주신 형수님 아버지. 성혼선언문을 읽다가 두 줄 만에 눈물을 머금은 형수님의 아버지. 축사를 읽다 훌쩍이신 우리 아버지. 여러 번 울컥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제일 큰 울림을 준 건 양가 부모님께의 인사였다. 고개만 숙일 줄 알았지만, 형은 절을 올렸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라는 것을 몰랐기에 훅 다가온 것이었을까. 참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형용하기가 어렵다. 형수님 오빠의 축가, 형과 형수님의 멋있는 무대로, 아름다운 결혼식은 마무리되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고 나서, 아버지께 축사 때의 심정을 여쭈어보았다. 축사를 읽다가 콧물이 나와서 훌쩍거렸다고 했지만, 난 분명히 보았다. 아버지의 울컥한 눈을. 다음 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고개를 들어 네 형을 보면 더 감정이 올라올 것 같아 계속 보고 읽을 수밖에 없더라.
결혼식이 끝난 후, 형수님 댁에 하루 머물렀다. 눈물을 머금고 울음을 참으며 읽은 성혼선언문이 주된 이슈였다. 원래는 굉장히 강인해서 눈물과는 거리가 먼 분이시라고 했다. 그러나 딸의 결혼식 앞에선 장사 없었다. 감정이 올라오는 데 필요한 건, 단 세 마디였다, 우리 이쁜이 호연아.
호연이 누나는 참 특이하게, 항상 웃고 있다. 6월 한 달간 우리 집에서 살았을 때 많이 친해졌는데,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생활한다고 느꼈다. 식중 영상을 제작하며, 누나의 어렸을 적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정말이지 모든 사진에 미소가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결혼식장에서도,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항상 해맑게 웃고 있었다.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형도 종종 말한다, 호연이를 만나고 자기도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둘은 이제 유학을 간다. 분명 쉬운 길은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예민해질 수도 있고, 때로는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형이 꼭 나를 찾아줬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형과의 사이가 각별하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엔, 형이 항상 날 먼저 생각해주고 챙겨주었다. 어디를 놀러 가더라도,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나 맛있는 간식거리를 꼭 사 가지고 오던 게 기억난다. 사실 어른이 되고서는,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내가 형을 더 잘 챙겼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문제 발생 시 서로를 가장 먼저 찾았는데, 유학을 가더라도 꼭, 나에게 이런저런 상의를 해주길 바란다.
집이 다섯이서 살기엔 좁다, 얼른 유학 가라. 이런 농담을 자주 했었지만, 막상 있다 없으니까, 집이 많이 허전하다. 미국으로까지 떠나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형의 유한 성격과 누나의 긍정적인 사고로,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하고 돌아오길.
이정진, 장호연의 결혼을 축하하고 평생을 아름답게 꾸며나가길 응원한다.
202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