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시에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거리가 꽤 있는 순두부찌개 집이라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6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4층쯤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다시 올라오면 금방 탈 수 있겠거니, 착각이었다. 꼭대기 층인 26층을 찍고 내려오면서 두 번 정도 더 섰다. 6층에서 문이 열렸지만 유모차와 자전거로 포화 상태였다. 먼저 내려가세요, 말하며 애써 웃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빨간색 화살표를 바라보며 6층에서 문이 바로 열리길 기대했다. 20층을 넘어가는 걸 보고 실소했다. 전체 체감 시간은 5분보다 길었다.
아니 무슨 출근 시간도 아니고, 구시렁거리며 자전거를 밟았다. 문득 전에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생각이 났다. 등교 때는 항상 전쟁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작아서 자전거가 한 대밖에 못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보다 위에 사는 사람이 자전거를 가지고 타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손해를 본 기분이었다. 반대로 나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못 탄 사람도 있었다. 애써 웃는 표정이 안타까웠다. 의도치는 않았어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턱, 소리와 함께 갑자기 페달에 힘이 안 실렸다. 체인이 빠진 것이었다. 오늘은 되는 게 없구나, 한탄하며 체인을 다시 끼워보려 했다. 별로 경험이 없어 애를 먹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좁은 골목이었는데 뒤에서 오토바이가 오고 있었다.
"먼저 지나가세요." 라 말하며 자전거를 들어서 옮기려 했다. "아뇨 아뇨 괜찮아요. 먼저 하세요."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그러자 아저씨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내 자전거 쪽으로 다가왔다. "체인이 앞뒤 다 빠졌네. 내가 한번 해볼게." 능수능란하게 자전거를 고쳐주었다. 얼굴을 보니 30대 같았다. 친근하게 생긴 동네 아저씨 느낌이었다. 해맑게 웃는 얼굴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꾸벅 인사를 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덕분에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덕분에 오늘 기분이 완전히 좋아졌다. 덕분에 남과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남한테 피해를 주지 말자, 우리 사회를 유지시키는 가장 기본적 원칙이다. 남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할 줄 모르는 사회는 무너진다. 그러나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원칙도 없다. 사실 불가능하다.
오늘 기다린 엘리베이터만 봐도 그렇다. 집에서 실수로 뭘 떨어뜨려 본 적이 있지 않는가. 바람 때문에 방 문이 세게 닫힌 적이 있지 않는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리는 모두 서로 피해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남'이라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사실이다.
남한테 피해를 준다, 그 불가피함을 인정하자. 피해를 정당화하거나 자기 위안으로 삼으란 얘기가 절대 아니다. 그 불가피함을 인지한 만큼 더 사소한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난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들은 유독 남한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경향이 있다. 나도 남한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인정하면, 조금은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어쩌면, 이 불가피함을 직시하는 것이, 관용을 베푸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일 수도 있다.
그 불가피함을 인정했으면, 기생충도 아니고, 피해를 주면서만 살 순 없다.
"사소한 말과 행동이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자주 듣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 반대의 문장은 생소하다.
사소한 말과 행동이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 오늘 날 도와줬던 해맑은 아저씨처럼.
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