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건 시간낭비야."
"후회해서 바뀌는 게 있니?"
"네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가장 멍청한 거야."
옛날부터 내가 가장 싫어했던 말들이다. 위로가 전혀 안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많이 듣는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삶이 선택의 연속이어서 그렇다. 선택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책임도 늘어난다. 안타깝게도 우린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고, 보통 잘못된 선택에는 후회가 따른다. 주변 사람들은 보통 저 위의 말들을 하며 위로한다. 분명 의도는 선하다. 과거에 집착하다가 미래까지 망치지 말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들린다. 후회라는 감정이 절대 악처럼 여겨진다.
"난 지나간 일은 별로 후회하지 않아." 이런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느새부터인가 후회를 하면 쿨하지 않은, 속된 말로 찌질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후회하는 자신을 보며 더 자존감을 잃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안타깝다. 후회는 금기시될 감정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인간적이고 필요한 감정이다.
난 요즘 인간관계에 있어 후회할 때가 가끔 있다. 상대와 나의 거리를 셈하는 데 실수를 한다. '내가 그때 그 말을 안 했었더라면... 내가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오래는 아니더라도 후회를 종종 하곤 한다.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후회에 거부감은 없다. 후회를 해야 뇌리에 박히는 경험이 되고, 그래야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믿는다.
후회는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비롯되는 당연한 감정이다. 그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않고 선택에 대한 후회를 느끼지 않으려 하는 자들에 대한 영화가 하나 있다. 정말 유명한 로맨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다.
짧게 소개하자면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의 초반부에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연인 사이가 된다. 그러나 이별 후, 조엘은 그녀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시술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시술을 받는 중 그는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영화는 그 둘이 재결합하며 끝이 난다.
분명 해피 엔딩 같지만 어딘가 찝찝하다. 보통 영화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주인공들이 재결합하며 영화가 끝나면 속 시원한 해피 엔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아니 어차피 똑같은 이유로 또 헤어질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시나리오의 초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안에는 둘은 서로의 기억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지운다. 그리고 나이를 많이 먹은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재결합한다.
사람은 판단과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이 사람을 만날까, 저 사람과는 인연을 끊을까 등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선택에 책임은 본인한테 있으며, 동반되는 감정도 책임의 일부다. 이 영화의 경우 그 감정은 이별 후의 아픔, 미련과 후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책임을 회피한다. 그 결과 둘은 만나고 사귀고 헤어지는 굴레에 갇혀버린다. 후회, 극복, 성숙의 과정을 계속해서 기피했기 때문에 그들에겐 발전이 없던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한심한 짓을 똑같이 되풀이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냉소적인 영화다.
후회는 절대로 우리의 감정과 시간을 갉아먹는 괴물이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후회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후회를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 이 둘의 구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연히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우아한 친구들>을 보았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 앞에서 울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아들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아버지는 자책하고 있었다. 사고 당시 CCTV를 보니 아들이 횡단보도를 빨간불에 건너려 했다. 그러나 아들은 마음을 고쳐먹고 초록불에 신호를 건넜다. 안타깝게 신호위반을 한 차에 치여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에게 차가 없더라도 신호를 지키라고 말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바로 후회를 해서는 안 되는 경우다. 교통사고는 아버지가 일으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호 위반한 운전자의 잘못이지 아버지의 책임이 절대 아니다.
후회를 해도 되는 것과 후회를 해서는 안 되는 것. 구분의 기준은 의외로 명확하다. 벌어진 사건이 내 결정에 의해 벌어졌나를 따져보면 된다. 그러니 내가 후회하고 있다면 우선 따져보자. 내 언행의 결과물인지. 책임이 있다면 충분히 후회하자.
주변에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를 들어주자. "후회는 시간 낭비야." 이런 식의 말로 후회하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게 하지 말자. 듣고 공감해주자. 그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후회 없는 삶을 살자"라고들 한다. 물론 취지는 최선을 다하자이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대신 이 말은 어떤가.
끊임없이 후회하고 발전하자.
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