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천 좀 해봐, 수많은 요청에 대한 내 대답은 4년 동안 똑같았다. “2007년에 나온 <미스트>.” 사실 <미스트>는 결말 때문에 호불호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뉘는 영화, 마지막 1분을 위한 영화 등의 평가를 받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들을 추천해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껏 이 영화를 추천해 온 것일까?
영화를 처음 보고 든 생각. 대체 왜 결말을 이따위로 만든 거지. 의도를 파악하려 노력할수록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나만 당할 순 없지, 라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추천하곤 한다. 어찌 보면 약간은 골탕 먹이려는 의도가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호불호를 떠나 뇌에 선명히 각인되는 영화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4년 동안 고이 묻혀두고 있다가 오랜만에 다시 꺼내 시청했다. 결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생각하며 영화를 뜯어서 파헤쳐 보았다.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사고 실험
마트를 감싸는 안개
본격적인 스토리는 마트 주위에 안개가 끼며 시작한다. 마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을 가둔다. <큐브>, <써클> 등 제한된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생기는 일을 그려낸 영화는 많다. 일종의 사고 실험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실험은 현실적일수록 호평을 받는다. <미스트>의 사고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제한된 공간에 고립되어 생존을 꾀하는 극한 상황에 놓이니, 군데군데에서 인류의 생존 역사가 확인된다. 우선 사료를 쌓아 최대한 외부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려 한다. 주를 안전하게 확보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또한 인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 또한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맹신에 의한 이성 마비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었던, 사이비 교주 카모디 부인에 대해 살펴보자. 영화를 제삼자 입장에서 보고 있노라면, 발암도 저런 발암 인물이 없다. 사실 처음 봤을 때에는 설정이 조금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모디 부인
하지만 우리나라는 작년에 신천지를 경험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교주의 말을 맹신했다. <미스트> 안의 사람들은 훨씬 위험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으며, 마트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 고로 카모디 교주의 설교가 판을 치는 설정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사실 어찌 보면 작년에 신천지와 관련해 있었던 일은 <미스트>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안개 속 괴생명체처럼 육안으로는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이 틈을 타 교주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신의 말을 맹신하게 만들어버린다. <미스트>는 종교의 적정선과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종교와 과학, 서로 맞서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둘은 같은 이유에서 탄생했다. 인간은 다른 종과 달리 어떤 현상에 대한 원인을 이해하려고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면 과학이 되고, 어떠한 한계로 설명이 되지 않으면 종교가 되는 것이다. 서로가 상호 보완하는 관계가 되면 문명이 완성된다.
과학 지식이 축적될수록 이해 가능한 부분이 넓어진다. 그에 따라 유기적으로 종교와의 관계가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가 말해준다. 일례로 지동설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이 희생당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증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종교를 부정하는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얼마나 쉽게 이성을 마비시키는지 알 수 있다.
요약하자면, 지금까지 종교는 문명의 한 축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믿음으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종교가 서있어야 할 자리는 과학 반대편이 아니다. 다시 말해, 논리와 이성이 어떠한 믿음에 의해 잠식되면 절대로 안 된다.
<미스트>는 얼마나 인간의 이성이 나약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와 더불어 종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교주 카모디 부인은 종교를 사용해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적인 사고를 못하게 해 버린다. 심지어는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 이와 같이 카모디 교주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보다는, 희망을 종교를 통해 얻고, 최대한 이성을 잃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근본적으로 이성적이지 않아. 2명 이상의 인간이 한 방에 있으면, 편을 가르고 서로를 죽일 이유를 찾아. 우리가 왜 종교와 정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마트 총잡이 올리의 대사다. 이성적인 사고를 포기하는 순간 저 말들은 모두 현실이 된다.
논란의 결말
마지막으로 결말을 해석해보자. 주인공 드레이트는 총알 네 개를 확인한다. 그리고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과 아무런 말 없이 표정을 주고받는다. 카메라는 차 밖을 찍고, 네 번의 총소리가 들린다. 아들만 남았을까, 생각이 드는 순간 아버지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마트에서 나오기 전에 아들은 아버지에게 약속을 해달라고 한다. 괴생명체가 자신을 데려가지 못하게 해 달라는 약속이었다. 그것만큼은 꼭 지켜달라고 하였고,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그 약속을 지키게 된다. 그렇게 차에서 네 명을 총으로 쏴 죽이고 밖으로 나온다. 소리를 지르지만 괴생명체는 오지 않는다. 대신 안개가 걷히며 군용 차량들이 줄지어 온다.
안개가 걷히며 들어서는 군용차량
대체 무슨 의도일까. 배경에 깔리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너무나 허무해진다. 어이가 없다. 어딘가 허하다. 공허하다. 이런 기분을 노린 것일까.
분명 우리가 통상적으로 아는 결말은 이러하다. 데이비드는 어렵게 구한 총으로 괴생명체와 맞서 싸운다. 총알 네 발을 다 사용해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극적으로 구조가 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결말이다. <미스트>는 다르다. 모두를 벙찌게 만든다.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 처음 겪는 경험이기에 신선하다.
안개가 걷히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 초반에 마트를 나섰던 아주머니가 군용 차량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조된 그녀의 모습은 결말을 더 찝찝하게 만든다.
마트를 나간 아주머니가 구조당한 모습
마트 외부로 나간 사람들은 거의 다 죽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체들을 보며, 머릿속에서 귀납적으로 결론을 지어버린다. 나가면 죽는구나. 구조된 아주머니는, 영화를 보며 머릿속에 자리잡은 일종의 진리를 뒤엎어버린다. 절대적 진리라는 건 없다, 이것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일까.
<미스트>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영화는 드물다. 그만큼 미지에 대한 공포를 테마로, 인간 본성과 심리를 훌륭히 그려냈다. 결말에 대한 본인만의 해석을 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계속해서 <미스트> 관람을 추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