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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인 Sep 12. 2021

[21.09.12] 0.

미니멀이 될 수 없다면 미디엄이라도 될래


급하게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 온 지 8개월 만의 일이었다.


작년 겨울 집의 구조와 크기, 그리고 가격이 마음에 들어 처음 둘러본 날 바로 이 집을 선택했다. 이사를 들어와 열심히 꾸미고 나름 방문자들의 칭찬을 받으며 즐겁게 생활했지만, 겨울, 봄, 여름 세 개의 계절을 지내고 보니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 삶의 질과 건강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이 집이 더 이상 휴식공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렇게 급하게 이사를 결정하고, 8개월 만에 다시 이삿짐을 싸기 시작하면서 전과는 다르게 이상하게도 무력감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 성급하게 이사를 결정한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 여러 선택과 판단으로 인해 추가적으로(원래라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발생하게 될 비용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나를 압도했고,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껴보려고 생각해낸 방법은 짐을 여기서 더 줄여 이사비용을 줄여보자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자 그 감정들이 결국 무력감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난 그저 내 한 몸 뉘 일 곳을 찾으려고 했을 뿐인데 왜 내가 원하는 조건의 집을 쉽게 찾을 수 없을까? 설상가상으로 집을 나가는 날과 새 집으로 들어가는 날 사이에 텀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내가 선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왜 나는 사서 고생하고  있지? 왜 쓸데없이 돈을 두 배나 나가게 만들었을까? 왜 그렇게 섣불렀을까... 이사 자체를 후회하진 않지만, 그를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지금도 괴롭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착하게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좋은 경험 했다고 치자고, 이사 가서 잘 지낼 방법만 생각해 보자고 나를 위로해줬다. 멍청한 선택이었다고 타박 주지 않는 좋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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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감점의 파도를 겨우 다잡고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나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수 많은 내 짐들. '옷은 왜 이렇게 많아? 책은 또 어떻고? 잡동사니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근데 그중에서 버릴 것은 없어.. 이건 언젠가 필요할 거라고.... ' 이번엔 내 욕망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내 무력감의 주범들. 가방 몇 개로 정리될 수 없는 켜켜이 쌓인 짐들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정말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몇 포대나 버렸는데도,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렇게나 많다니. 나 혼자서는 이것들을 옮길 수도 없어. 죽어서 짊어지고 가지도 못할 것들인데, 뭘 이렇게까지 쌓아놓고 살까 나는? 이번에는 이렇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을 탓하는 생각들이, 쌓아놓은 이삿짐을 볼 때마다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이 무게들을 비워나가기로 결심했다.

미니멀 라이프까지는 도무지 어렵다면, 미디엄 라이프라도 할래. 중간이라도 갈래. 도저히 안 되겠어.


그래서 비워내는 이 과정을 글로써 기록하려고 한다. 유튜브를 해볼까? 했지만 영상 편집할 시간이 없어서 포기하게 될 거야.

방법을 배우고 마음을 다잡기위해 유튜브에서 내가 꿈꾸는 라이프 스타일의 브이로그를 계속해서 보고 있고, 그 유명한(!) 곤도 마리에 넷플릭스 영상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비워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만의 원칙을 세워나가 보려고 한다.


진짜로 실행하려면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하겠지만, 그 때까지 원칙을 잘 세워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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