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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인 Aug 15. 2023

나, 지금, 게으르다.

최근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우울한가? 

객관적으로 보면 우울할만한 상황이긴 하다. 

아빠는 아프지, 직장은 그만뒀지, 갑자기 고향에 내려와서 평소에 만나던 친구들도 못 만나지, 작년까지 지키고 있던 패턴이나 다짐들은 무너졌지, 운동도 못하고 있지. 근데 사실 우울하진 않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우울하진 않아. 


그럼 무기력한가? 

더워서 움직이기도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한가? 는 어느 정도는 정답. 

내가 에어컨 바람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안 틀면 너무 덥고 틀면 춥고 은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새벽에 꼭 더워서 깨니까 숙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외로운가? 

아 이것은 매우 맞다. 내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상의를 하거나 어딘가 조언을 구할 곳이 없다.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안 한 지도 꽤 되었다. 당장 맥주 한 잔 걸칠 친구가 없다. 편하게 맛있는 거 하나 나가서 사 먹을 상황이 못된다. 아니 사실 맥주가 먹고 싶으면 혼자 먹을 수 있었는데, 여기가 조금 낯설다. 닭꼬치 하나 어디서 사 먹어야 할지 모르겠고 혼자 맥주를 먹는 게 조금 눈치 보인다. 


불안한가? 

불안한 것은 아빠가 더 아플까 봐.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봐. 그 외에 불안한 것은.. 미래? 뭐 이게 대단히 불안하진 않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감도 조금 있다. 하고 싶은 것을 찾고 할 수 있을 거라는 걸. 


그런데 그 어느 것도 정확하게 내가 어떻다고 말하기 힘들다. 감정기복이 있는데, 그게 또 큰 스트레스이거나 하진 않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다. 이렇게 퍼져있을 것이 아닌데, 왜 퍼져있지? 하는 그런 불만. 


잘 생각해 보면 지금 나는 내 삶의 주도권을 잠시 잃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나에게 1순위가 아니다. 우선순위를 따르는 것,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 지금의 최선이다. 숱한 시간을 지나면서 깨달은 건 나는 자율성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 남에게 엄청 잘 맞춰주는 사람인데, 정작 내 자율성이 침해되거나 보장되지 않으면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 나는 지금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 나 스스로 내 자율성과 주도권을 유예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어느 시점처럼 그렇게까지 우울하고 무기력하진 않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럼 대체 뭔가.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복합적인 상황으로 나는 게으른 상태다. 이 표현이 맞겠다. 해야 하는 일을 다 미루고 싶고, 뚜렷한 이유 없이 그냥 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말이야. 책 읽어야 하는데 안 하고 뭐.... 나, 지금, 게으르다. 근데 이게 쪼금 맘에 든다. 할 수 있는 정도로만 하며 스리슬쩍 게으른 내 상태가, 맘에 든다. 그래, 막 으쌰으쌰 힘내면서 불타오를 상황은 아니잖아?(근데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어리광일 수도 있다. 에잇 나도 나를 모르겠고 피곤해요 응애. 그냥 게으른 나를 인정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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