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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인 Jul 18. 2023

병실에서

아빠의 입원으로 1달째 병원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 환자들과 간병인, 가족을 마주했는데 사람들의 다양한 군상을 보는 것이 재밌기도, 괴롭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타인의 일에 조금 무관심할 수 있을까, 무덤덤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23년 상반기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병원에서 보호자로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던 상황에서 다행이었던 것은 아빠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괜찮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존대를 하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조용하다. 스마트폰에서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나려고 하면 이어폰을 낀다. (이건 사실 내가 계속 소리를 줄이라고 하고 이어폰을 끼워준 탓도 있지만..) 간호사 쌤들에게 호칭을 제대로 하고 친절하다. (남자 병실에 연령 높은 사람들이 많아서 간호사 쌤들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이 차라리 양반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이 환멸  나는 세상.)


여기서 나는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편으로 사람들의 궁금함을 자아내지만, 눈을 안 마주치고 말 걸지 마세요라는 분위기를 풍겨 쉬이 사람들이 다가오진 않는다. 물론 누가 말을 걸면 친절하게 대화한다. 주로 궁금해하는 것은 아버지여? 어디가 아프셔? 사고 나셨어? (휠체어를 타야 이동이 가능한데 귀찮아서 1달째 침대에만 있고 안 돌아다녀서..) 아이고 딸이 고생하네... 뭐 이런 것들. 제일 궁금해한 사람은 아마도 담당 교수님인 것 같다. 매일 올때마다 옆에 붙어있는 나를 보고 "따님은 대체 뭘 하고 있어요?" 라고 묻길래, "닌텐도...젤다의 전설..."이라고 답해줬다. 


나는 고요하게 앉아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하고 그러니까 평가를 하고 있다. 그래 이건 평가지. 이번 입원에서 인상 깊은 사람은 말투가 재밌는 할아버지, 성질이 고약한 노인네(!), 말 많고 젠체하면서 조금 무례한 아저씨.... 등이 있는데. 그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보면서 나는 조용하게 중얼중얼 거린다. '말 겁나 많네.', '디게 무례하네.', '성질이 고약한 양반이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아이고 애기가 밥도 안 먹고 어떡해.' 지금 제일 괴로운 것은 저 마지막 문장. 


처음엔 할머니가 왜 저렇게 애기한테 큰 소리를 내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간병인이었고 아이는 시설에서 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됐으려나? 했는데 중학교2학년이라고 해서 놀랐고 하루종일 애가 속이 안 좋다며 밥을 안 먹는데 건너 건너 앉아있는 내가 너무 괴롭다. 호흡기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할머니가 괴롭다. 화를 낼 거면 왜 간병인을 하고 있지? 아이에 맞는 간병인이 붙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가 연기가 무섭다고 못하고 있는 건데, 중학생씩이나 됐으면서 왜 안 하냐고 다그치는 건.... 좀 아니잖나. 이런 생각으로 괴로운 내가 조금 싫기도 하고, 남들의 사연에 어떻게 해야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고민한다. 조금이라도 이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 소중한 내 에그타르트를 아이에게 건넸다. 이거라도 먹고 힘내렴. 집에서는 부디 친절함 속에서 지낼 수 있기를. 


남들에게 건넨 친절이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자주 왔다 갔다 하느라 입원실 층의 간호사들을 거의 다 알게 되었는데(...) 급하게 응급실로 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난 입원에서 조금 친해졌던 간호사를 만났다. 우리를 보자마자 웬일이에요!? 하고 다가와줬고, 나는 그걸 보고 눈물이 났다. 엉엉 선생님ㅠㅠㅠㅠ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앉을 의자를 가져다주고 토닥여주었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크게 안심이 됐다. 남이 친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에게 친절하려고 애쓰는데 그걸 제대로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없어 이렇게 자주 글을 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대상이 없어 조금 심심하지만(아빠는 맨날 잔다.), 속세의 걱정이 없어 마음은 조금 편하다. 하루의 루틴이 정해져 있어 조급하지 않다. 다만, 집에 쌓여있는 택배가 걱정될 뿐. 언제나 돌아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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