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석에 앉아서 생각한 것들
나의 조수석 경력을 따지자면 한 30년 정도 됐으려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운전을 하면 그 옆에는 내가 앉아서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곤 했다. 나는 멀미를 잘하는 사람이라 나도 모르게 잠들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정신을 차리고 앞차와의 간격을 가늠하거나 아빠가 안 졸고 운전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옆에서 전화를 대신 받아주기도 하고, 신기하게 생긴 자동차를 보며 저 차는 뭐지? 하며 함께 차종을 확인하기도 하고, 아빠는 운전하느라 볼 수 없는 주변 풍경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해가 쨍쨍할 때도, 비가 쏟아질 때도, 눈이 펑펑 내릴 때도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산길을 지날 때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기억은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가던 길 노을빛의 하늘이다. 가끔은 반쯤 잠들어있는 그 노곤함과 적당한 차의 흔들거림이 좋아 차가 목적지에 영원히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운전은 정작 1n 년 넘게 장롱면허를 유지하며 거의 해본 적이 없으면서, 조수석에 만큼은 누구보다 잘 탈 수 있다고 지금도 자부한다.
오랜만에 아빠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하니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이퍼를 빠르게 움직여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서행으로 조심조심 국도를 달렸다. 나는 전과는 다르게 아빠가 혹시라도 앞차와의 간격을 놓칠까, 차선을 침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분명 잘 유지하고 있음에도 앞에 차가 가까이 있다느니, 차선과 너무 가깝다느니와 같은 잔소리를 내뱉었다. 꼬맹이시절이라면 그러든 말든 옆에서 나는 내 할 일을 하고 있었을 텐데, 전과는 다르지 않은 아빠의 운전실력이 염려돼 옆에서 재잘재잘 귀찮게 하고 말았다. 그런 나를 아빠는 별말 없이 조용히 들어주며, 자신은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이 재밌다고 했다. 어째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가 좋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 재밌다고 했다. 참 이상한 사람이군.
조수석러의 미덕은 아무래도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할 수 있게 옆에서 수발(?)을 드는 것이다. 출출하다면 먹을 것을 입에 넣어준다거나, 음악을 선곡한다거나, 휴지와 티슈 같은 것을 건네준다거나, 셀프주유소에서 주유를 해준다거나(!). 서브 운전자라는 마음으로 운전자와 시선을 같이 하려고 하는데에서 프로조수석러의 마음가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잠이 올 때에는 운전자를 옆에 두고 자는 것은 너무나 미안하기에 최대한 참으려고 하는데, 가족과 함께 탄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5분-10분 정도 눈을 붙이기도 한다. 물론, 아빠와 함께 탈 때에는 예외이지만. 너무 편해서 잠이 오는 걸...?
운전에 대해 어느 정도 감각이 생기고 조수석에 앉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아 운전하기 싫다.'였다. 너무 무섭지 않나? 이상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어려운 코스도 많고, 어떻게 사람들은 남들이 이 모든 규칙을 잘 지켜줄 거라 믿으며 이 위험천만한 찻길을 무사하게 지나갈 수 있을까. 그래서 지인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탈 때에는 돌발상황이 발생할까 봐 정신 똑바로 차리며 전방을 주시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차가 앞차와 가까워질 때는 내색은 안 하지만 가슴이 콩닥콩닥 한다. 혹시라도 앞 차를 박지 않을까 염려되어서.
다행히 이날 이때까지 내가 탔던 차가 사고에 휘말리는 경우는 없었다. 생각해 보니 진짜 어렸을 때, 한계령을 지나며 길이 너무 얼어있어 차가 제대로 고갯길을 지나가지 못해 미끄러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무사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운전하는 것이 너무 무섭다. 얼마 전에는 내가 운전에 대한 공포가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가끔 꿈을 꾸면, 차가 어딘가 고장 나 있거나(브레이크 혹은 핸들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내가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거나(엑셀과 브레이크가 혼돈스럽다, 발이 페달에 닿지 않는다) 하는 꿈을 꾼다는 것. 운전은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취약한 태도의 정점이지 않을까 싶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규칙에 엄격한 것 등. 이제껏 어떻게든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해왔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일이 생기고 거주지를 옮기게 되면서 아무래도 조만간 운전연수를 시작해서 차츰 혼자서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하는 때가 도래한 것 같다. 하아... 좀 더 시간이 지나서 내가 좀 더 용감해지면 시작하려고 했건만. 역시나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프로조수석러 30년을 발판 삼아 나는 프로운전러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인가? 지켜볼 일이다.
P.S.
아맞다 조수석에 앉아서 오늘 생각한 것은 매일 글을 한 편씩 쓸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