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처음엔 성인 ADHD에 대한 흥미로 읽기 시작했다. 실제로 주변에 ADHD로 짐작되는 사람이 있었고,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와 더불어 내 안에는 정형화된 성인 ADHD의 모습이 존재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떡해 어쩌면 나 ADHD 일지도 몰라.
ADHD를 명확히 진단하기 어려운 것은 우울이나 불안장애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고, 어린 시절부터 관찰되어야 하는데 여러 이유로 특별하게 관찰되기 어렵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역할기대 등으로 그 특성이 감쳐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우울 때문에, 불안 때문에, 최근에는 체력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잠을 못 자서, 피곤해서, 나이 먹어서, 근육이 부족해서(?). 그런데 최근 인지, 정서적인 문제가 스스로 양호함을 느끼고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으로 인바디를 재보니 근육량도 늘었다.... 살은 빠져서 유지 중이고, 강아지 산책으로 매일 만보 넘게 걷고 있다. 나이 먹어서는... 생각해 보니까 나 십 년 전에도 이랬어. 환장.
최근 나 자신을 진단적으로 보기 시작한 계기는 아빠의 "너 진짜 치매 아니냐?"라는 걱정스러운 한마디였다. 천연덕스럽게 아니야 아빠, 이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주의력의 문제랄까......라고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주의력???? 그냥 산만한 게 아니었던 건가????
자기 조절, 자기 동기화, 실행기능의 저하로 무엇을 시작하거나 완수하기 어렵고....
거기에 더해 물건을 찾기 힘들었던 경험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도 못하고 예비 물품을 쟁여두기까지 합니다.
남들과 관련된 일은 잘 수행하지만 본인을 위한 일은 시작하기 어려워 미뤄둔다거나, 업무 예열이 어려운 게 머릿속에 잡생각이 많아서라거나, 터무니없는 실수를 할 때가 있는 등 잔잔하게 ADHD의 특성이 보입니다.
"나는 방심하면 실수를 하니 정신 바짝 차리고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지"라며 애쓰다 보니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습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본인에게 부여된 역할과 의무를 수행하고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증상을 열심히 억누르고 교정하려는 통에 계속해서 에너지가 새어나갔던 거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북마크 해놓은 내용의 일부를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나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이유는 지각을 하거나 숙제를 늦게 제출하거나 약속을 어기는 일과 같은 전형적인 일이 거의 없어서였는데 이건 어쨌든 남들과 관련된, 내가 남과 한 약속에 한정해서이다.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잘 잃어버렸고, 잃어버리는 것에 노이로제가 걸려 신경 쓰니 이제는 잃어버리진 않는데 어디에 그 물건을 뒀는지 모른다. 어제 사용한 카드를 찾으러 다니는 것은 일상이고, 핸드폰이야 뭐 말해 뭐 해. 산책하러 나가면서 맨날 식탁 위에 올려두고 그냥 나간다. 오늘은 누군가 나에게 아빠에게 전해달라고 봉투를 주셨는데, 받은 기억까지만 있다. 그 뒤에 어디에 뒀을까 나는.... 잘 뒀을 텐데 거기가 어디일까....
우스갯소리로 인생의 2/3를 물건 찾는데에 써...라고 했는데, 이게 그냥 건망증 뭐 이런 문제가 아니라 ADHD 때문일 수도 있다니. (아직 진단받지 않았음 주의) 그래서 진지하게 병원들 추천받고 검사받을까 하는데, 맞아도 문제도 아니어도 문제가... 아니 아니면 더 문제일 것 같다. 내가 지금 나의 이런 특성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고 우울해지는데 나아질 방법이 없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
다른 성인 ADHD 관련 책들도 좀 더 탐독해 봐야겠다.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4-5월 읽기 시작한 책은 많은데 끝마친게 없다....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