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글 옮김
아홉수라 그래!
개그콘서트에서 박지선과 오나미는 29가 써진 티셔츠를 입고 나와 자신들이 처한 문제들을 아홉수의 탓으로 돌린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아홉수'란 강력한 어둠의 주술로서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나 또한 29살이 되면서, 이상하리만치 악재들이 겹쳐오고 있다. 새해를 바로 앞두고 무릎을 크게 다쳤고(사실 이건 아홉이 되기 전이지만), 2015년이 되자마자 입원을 하였으며, 덕분에 계획했던 것들은 모두 정지되었고, 하려던 일은 체계가 바뀌어 더 까다로워졌다. 심지어 방금은 집 앞에 잠깐 나갔다 오는 사이에 발톱이 빠지는 상처를 입었다. 이런 나쁜 일들을 겪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아홉수'라는 구렁텅이였다. 나는 왜 아홉수에 빠져 이런 일들을 겪고 있나?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잘못이 분명 있고 나쁘지만은 않은 결과들을 가져왔다. 무릎을 다친 것은 처음 스키를 타면서 성급하게 중급코스로 올라간 나의 탓이었고, 체계가 바뀐 일은 오히려 번거러움을 줄여주었다. 발톱이 빠질 정도로 다친것은, 사실 이건 잘 모르겠다. 그냥 언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하필 지금 벌어져서 나를 더 슬프게 하고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우리에게 아홉수란 어떤 의미인가? 따져보면 나이의 끝이 9살이라는 것은 새롭게 시작하기 직전의 느낌 혹은 긴장감을 준다. 9살은 10대에 진입하기 직전의 나이이고 19살은 고3이다. 29살은 30대가 되기 전이라는 묘한 긴장감이 있고, 이것은 39살, 49살도 마찬가지 이다. 특히 나이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긴장되는 일이다.
무릎을 다쳤다는 나의 말에 교수님은 나쁜것을 털어버리고 오라는 의미로 해석하셨다. 다친 것은 어찌됐던 나의 잘못이니, 그 원인을 찾고 안좋은 습관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다친것은 내가 아홉수라서, 삼재라서 그런것이 아니고 성급하고 자만했던 나의 고쳐야 할 성격 때문이었고, 약해져있는 나의 체력때문이었다. 발톱이 깨진 것도 발밑을 잘 보지 않는 나의 덤벙댐이 원인일 것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그 시간들의 의미를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의미를 만들기 위해 이것 저것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이 아홉수라는 부정적인 느낌을 떼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발 밑을 조심, 또 조심하자고 다짐할 뿐이다.
2015. 2. 16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