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라면 괜찮을 줄 알았어

여행 전반기

by 김아인

사람, 일, 근심, 걱정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키나와로 떠나왔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 없이, 아니 바닷가에서 까맣게 돼서 돌아오기만을 생각한 채

2주간의 오키나와 여행을 준비했다.

사실 준비한 것은 숙소 예약과 이동경로 탐색 정도였다.

아직 운전을 잘 못하기 때문에, 뚜벅이 여행자로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모든 준비는 잘됐다.

숙소도 저렴하지만 좋은 곳을 잡았고, 버스의 이동 경로에 따라 세 군데로 나누어 숙소를 잡았다.

좌충우돌이야 있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태풍만 아니었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여행의 딱 중반인데, 여행 중에 태풍 하나는 지나갔고, 다른 태풍 하나는 오고 있다.

오키나와로 출발하는 당일, 인천공항에서 이튿날부터 묵기로 했던 숙소가 취소됐다. 태풍의 위험 때문에.

패닉 상태가 되어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까지 검색을 거쳐 급하게 이틀간의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삼일의 날을 비워놓은 채로 오키나와로 향했다.


태풍보다 이틀 먼저 도착해 하루 정도는 비바람에 맞서 실내 위주로 돌아다녔고, 태풍이 지나가는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숙소에 누워 딩가딩가 했다.

여행객이 굉장히 많은 시설이 좋은 게스트하우스였는데,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숙소에 머물렀고, 저녁이 되어 들린 숙소 바로 뒤편의 편의점은 재난상황을 맞이하여 모든 도시락, 김밥류의 음식들이 동나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 목숨 걸고(진짜) 나가서 들어간 꼬치구이집은 도중에 정전이 되어 미안하다며 나온 음식을 공짜로 대접해주었고(...) 맥주가 아쉬웠던 나는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와 숙소에서 과자와 함께 한 잔 했다.


공짜(...)로 먹은 꼬치구이와 맥주 한 병(정전나기 전)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타야 하는 고속버스는 알고 보니 운행이 중단됐고(두 시간 기다렸다가 나중에 알았다) 겨우 숙소 근처(북쪽)로 시외버스를 타고 올라가 또 한 시간 기다리다가(운행 중단) 택시를 타고 숙소 방향으로 가보니 모든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고, 두 번 도로를 우회해야 했다. 도로가 흙과 나무들로 덮여있었다.


한 시간 기다린 버스정류장


다행히 친절한 택시기사님을 만나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건만. 오키나와에 와서 그 빈 시간들을 일부러 섬 안으로 잡았는데, 숙소가 깜깜했다. 섬 전체가 수도, 전기, 가스가 나가 있는 것이었다. 객실의 화장실도 쓸 수 없어 공용으로 만들어놓은 1층의 객실을 써야 했다.(아마도 저장 물탱크의 물을 쓰는 것 같았다.) 섬 안에는 편의점도 없고, 마트에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걸어서 한 20분 거리 정도 되겠지만 바람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셌고 나는 차가 없었다. 아니 섬안에 음식점이 다 장사를 못해버릴 줄은 몰랐지 ㅠㅠㅠㅠ 자판기 있다고 들었단 말이야 ㅠㅠㅠㅠ


사실 화가 나진 않았다. 그냥 나의 운 없음에 감탄이 나올 뿐. 다만, 한국에서 가져온 짜파게티와 비빔면 있음에도 물과 가스가 없어 못 먹는다는 사실이 슬플 뿐이었다. 호텔 직원들의 도움으로 겨우 비상식량, 물, 맥주를 샀고, 해가 지면 깜깜하고 해가 뜨면 환한 이틀간의 재난 생활을 경험했다. 당장 샤워를 할 수 없었지만, 날이 너무 좋아져서 바닷가로 향했고 일광욕도 했다. 한 밤중에 (저녁 10시 이후) 갑자기 세면대 쪽이 꾸룩꾸룩하더니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을 때의 희열을 잊을 수가 없다. 핸드폰, 노트북 배터리 아끼느라 함부로 못하고 할 일도 없어서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고비를 넘긴 줄 알았는데, 태풍이 또 오고 있단다. 그리고 하필 딱 내가 숙소를 옮기는 날이 태풍 근접 날이라 부랴부랴 또 숙소를 하루 줄이고, 하루 늘리고 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지난날의 경험을 되살려 자판기에서 물을 여러 개 뽑아놓고, 빈 물병에는 수돗물을 받아놨다. 뜨거운 물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남겨놓고, 짜파게티 면을 미리 삶아놓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혹시라도 모든 것이 또 끊길까 봐.


촤라라 빛나는 여행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이건 참 너무했다 싶다.

뭐든 쉽게 얻어지는 행복은 없는 것인가.

내 마음속의 이번 여행의 타이틀은 '오키나와라면 괜찮을 줄 알았어' 였는데,

나는 괜찮은데 오키나와가 괜찮지 않았다. 참 아이러니하다.

이 여행은 과연 어떻게 끝날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신에게 소원을 빌지 말고 진리를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