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바로 죽음 전에 내가 만들어둔 꼬리표들이다. 소중한 가족과 아끼는 지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의 반격에 나 또한 상처를 받는다. 사랑만 주고받아도 모자란 삶에 서로에게 불필요한 상처들을 주고받는 일은 압정 밭을 맨 발로 걷는 것만큼이나 괴롭고, 상상하기 싫은 일이다.
남에게 상처를 줄 때마다 '상처의 꼬리표'들이 하나씩 생성된다. 물론 그 꼬리표들이 눈에 보이진 않으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아무것도 만족할 수 없는 저 괴물의 우울 깊은 눈을 마주할 때면 세상을 그만 살고 싶다는 충동마저 일렁인다. 물론, 스스로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누구나 하는 생각을 조금 더 깊이 할 뿐이다. 그냥, 남들 다 하는 생각 말이다.
[제1기 죽음은 삶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 종양 덩어리>
[1] 깊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결국 이루어진다. 내가 살아온 삶은 그랬다. 바람이 원하지 않게 되어 이루지 않은 일은 있었어도, 간절하게 바라던 어떤 형상과 현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주도했던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하게라도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간절히 원하면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진다'라는 생각을 했다.
전제 조건은 명확하다. 깊이 바라고 원하는 곳으로 향하는 방향을 정확히 인지하고 당장 행동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그 일이 일어나길 염원하는 것으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명확한 사실은 15살 때 깨달았다. 내가 원하고 그리로 향한다면 그것은 이미 내 것이나 다름없다.
이루어지지 않은 일은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절함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하등 아쉬워할 이유가 없다.
<좋은 소식은 아니야>
[1] 나쁜 일은 대부분 한꺼번에 몰려온다. 마치 세상이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듯이 말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계획한 모든 일이 틀어지다 못해 사라진 것이다. 원래의 계획은 독서모임 이후 네 명이서 파주의 고즈넉한 카페로 이동해 똑같이 책을 읽고 운치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미 세명은 확보했고, 나머지 한 명만 구하면 될 터였다. 인원도 많으니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 오만이었다. 심지어 있던 인원들도 줄줄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혼자 덩그러니 남아 쓸쓸히 파주로 향했다.
보통은 혼자 다니는 편이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모르게 우울했고, 혼자이기 싫은 날이었다. 우울증이 가장 심한 날, 혼자이기 싫어 만들었던 계획들이 다 망가졌다. 뿐만 아니라, 쏟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쏟아버렸다. 식당에서 물컵을 쏟는 것으로 시작해, 아끼는 책에 커피를 통째로 부었다. 도로는 이상하리만치 막혀 앞으로 갈 줄 모르고, 평소 잘 유지되던 평정심은 요동치기만 했다. 활자도 더 이상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모니터에서 반짝이는 커서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유약해진 상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제를 겪으니 보편적인 일들이 전부 '나쁜 일'이 되었다. 그렇게 나쁜 일들의 향연으로 이어졌고, 나는 그날의 좋았던 일들은 전부 망각한 채 그저 '운수 나쁜 날'로 치부해버렸다.
[2]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는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고 싶다. 그래야 세상 살기가 조금 더 완만해질 테니까. 하나, 사람이 그렇게 쉽게 쉬워지는 동물인가. 절대 아니다. 위의 96%이라는 숫자보다 나머지의 4%에 더욱 큰 집중을 할 것이다. 원체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쓸데없는 문제조차 자신의 문제는 더 특별하고 힘들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기에 문제를 잊을 수 있는 어떤 일을 찾아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일들은 많을수록 좋다. 예를 들어 나는 문제가 있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독서를 하고, 글을 쓴다. 그런데 기분에도 내성이 있는지 읽고 쓰는 게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은 한 걸음 더 무너진다. 때문에 다른 방안을 모색하는 게 좋다. 나는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 운동하기, 산책하기, 사색하기, 등 많은 탈출구를 만들어 두었다. 언제든 우울로부터 수월하게 달아날 수 있도록 말이다.
<항암 학교에 가다>
[1] 불편함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불편함은 개인마다 차이가 극명하게 갈라지고, 그것은 생각에서 오기 때문이다.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불편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불편하지 않았던 일들도 억지로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바라보면 결국 불편한 것으로 인식된다. 불편함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불편할 때만 쓰는 게 아니라, 불편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닐까.
[2] 모든 것에 대한 걱정은 끊임이 없다. 그런 걱정들은 결국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 또한 알고 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 끝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코 바꿀 수 없는 걱정거리라는 데 그 공포가 있을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무엇인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다시금 좌절한다.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바꿀 수 있다고 희망을 얻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한껏 부정한다. 이것이 정말 해낼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터무니없이 방대하게 설정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정도니 다행이네>
[1] 사람은 평생 살면서 얼마나 큰 짐들을 짊어지고 살아갈까.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서 평생 약을 달고 사는 이들도 있을 테고, 강압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조하는 법만을 터득해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테다. 그 짐들은 절대적일 수 없기에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상당히 작게 인식할 것이다.
타인의 불행을 발판 삼아 자신의 불행의 크기를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타인의 불행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그러한 행태를 '노예의 족쇄 자랑'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불행이 더 큰지, 누가 더 아팠고 더 힘들었는지 따위로 비교하며 '내가 더 불행한 사람이다.'를 강조한다. 물론 그렇게 살았음에도 나는 이만큼 성장했다며 자랑하는 게 목적이었겠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풍파를 이겨내고도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 된 것에 대해 경멸스럽기 까지 하다. 주변에 두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2] 강인한 인내력이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차라리 정신력이 약해서 모든 일로부터 도망치고 자신에게 휴식을 줄 수 있다면, 책임감으로부터 멀어지더라도 괘념치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나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나는 강인한 인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휴식 없이 나를 더욱 강하게 몰아치고 너덜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야만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일정을 반복해서 소화하자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맞섰던 불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다만 너덜 해진 몸과 마음은 복구되지 않았고, 딱히 치유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이유 없이 찾아오는 우울이 상처 난 마음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아직은 조금만 더 방치해 둘 생각이다. 강인하다 믿고 있는 인내력의 바닥을 그리고 정신력이라는 것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를 기다린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성장할지, 무엇으로 이겨낼지 보고 싶다.
[3] 부서지지 않겠다. 항상 다짐하고, 매번 까먹는 다짐이다. 나는 어떤 풍파가 밀려와도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고, 절대 부서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돌처럼 단단하거나, 갈대처럼 유연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 게 겨우 반년 전이다. 그런데 자주 망각하고, 고통에 매몰되어 그 고통을 즐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어떤 미래가 그려질지 유추하며 부정들의 엄습을 방치했다. 그럼에도 다시금 다짐한다. 부서지지 않겠다.
[4]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믿는다. 우정도 의무감도 모두 사랑일 수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 딱 하나만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엮기에는 무리가 있다. 불타는 사랑은 아니지만 사람의 냄새처럼 은은하게 평생을 퍼지게 할 수 있는 사랑을 원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우정과 의무감 또는 애정과 증오가 한데 섞여 점철된 사랑을 하고 싶다. 혹여 관계가 끝나더라도 서로를 험담하지 않을 사랑말이다.
[5] 아무리 힘들어도 현재 잘 살아있다. 고통에 몸부림칠 때가 있으나 행복에 겨워 발을 동동 구를 때도 있다. 사랑할 수 있는 나를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이고 싶지 않은 날에 억지로 만난 사람들 틈에서 더욱 명확하게 혼자임을 인지하지만, 혼자임을 느꼈던 게 꿈인 것처럼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망가졌다 한들 이 정도면 다행이지 않은가.
<인간은 맹점을 볼 수 없다>
[1] 자연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있다. 망가진 나를 다시 조립한 것은 다름 아닌 산책의 힘이었고, 그 산책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꼈다. 봄에는 바람이 부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고, 여름에는 삶은 달걀이 될 정도로 푹푹 찌는 게 당연했다. 가을에는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이 당연했고,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가 당연했다. 그렇게 자연을 통해 순리를 배우며 앞으로 걸어가는 삶을 영위하는 게 당연해졌다. 당연한 삶을 당연하게 살아내는 게 당연했다.
[2] 혼자 있을 때의 실수는 나를 통해서 오기에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다. 굳이 탓을 한다면 아마도 자신을 향한 비난일 테다. 그렇기에 나는 혼자를 더 좋아하고 그게 더 평온하다. 혼자가 아닐 때는 말이 많아지고, 그 말을 통해서 실수가 흘러나온다. 그 실수는 돌이키기 어렵고, 타인에게는 상처일 때가 많다. 나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이 늘어가는 게 탐탁지 않다. 그렇기에 가까운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렇게 혼자가 되어간다.
[3] 불평과 불만은 분노와 증오를 자아낸다. 어떤 일에 대해서 불평한다고 해서 그 일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불만 또한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불만을 토로한다고 해서 그 감정이 해소되는 게 아니다. 불평을 늘어놓지 않고 불만을 가지지 않으면 그러한 감정은 자연히 사라진다.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졌기에 분노와 증오 같은 불온한 감정들조차 생성되지 않는다. 이후 따라올 우울감 또한 존재하지 않게 되니 삶을 더욱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4]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평생 하게 될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조차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 살아갈 삶 또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떻게 살 수 있는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 쉽사리 나아지지 않을진대,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5] 한 없이 내려가는 나를 바라본다. 이 이상 더 추락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더욱 깊숙이 떨어진다. 그렇게 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바닥마저 무너진다. 그렇게 끝없이 생성되는 나락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간다. 손 쓸 방도가 없다.
[6] 평점심을 잃고 화를 낼 때마다 소모되는 나의 소중한 감정이 아깝다. 그럼에도 분노가 생겨날 때면 자기혐오 또한 같이 다가온다. 세상을 살며 일어나는 증오의 감정들은 하등 쓸모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조절을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내력이 다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제는 쉬어야 할 때이다.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유언장 작성>
[1] 온전한 나를 남들에게 내뱉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전한 내가 타인들이 봤을 때는 위선자일 수도 있고,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꾸며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떨 때는 조금 꾸민 내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사람은 환경과 경험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는 동물이다. 시기는 누구도 알 수 없는데, 어제 봤던 사람이 오늘은 달라 보일 수도 있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각이 변화할 수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특유의 태도는 잘 변하지 않는다. 생각은 변할 수 있으나, 태도와 행동은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1] 누군가 나를 제동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고, 혹은 조금은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충분히 잘하고 있고,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는 희망 가득한 사랑이 담긴 말을 듣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나약해지는데 타당한 이유를 만들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2]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데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자신과 흡사한 사람을 싫어하는 동족 혐오나, 스스로의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타인들을 낮게 보는 정신병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눈빛과 말투와 행동 그리고 자주 선택하는 단어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들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확신이 깃들어 있다. 아주 역겨운 확신 말이다. 정리가 되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하기 위해 정신없이 궤변을 내뱉는다. 턱은 상대를 찌를 듯이 치켜들고, 숨은 거칠게 내쉰다. 상대의 말을 들을 줄 모르고 말문이 막힐 때마다 이상한 행동을 한다. 그들과 대화할 때 말이 끊기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
말투는 공격적이고, 단어 선택은 다른 지식수준에 비해서 수준 미달이다. 그들이 항상 하는 말은 이렇다. '그런 의도는 없었다.' 돌릴 수 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말을 해놓고 참 속 편한 개소리를 내뱉는다.
그들과 대화를 하게 되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다. 먹이를 주지 않아야 발광을 멈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