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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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외할머니

어머니는 살면서 병간호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큰외삼촌, 아버지, 외할머니까지 전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큰외삼촌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외할머니도 어머니를 제외하고 자식이 셋이 더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명의 병간호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고되고 힘든 일을 세 번이나 해냈다. 그런 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15~16살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당시 어머니와 참 많이도 다투었다. 등교를 잘하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가장 큰 불화는 외할머니의 이간질이었다. 당시에는 금전적으로도 힘들었고, 아버지의 병세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상태도 좋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외할머니는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외할머니는 틈만 나면 아버지를 험담했다. 몇 달간 듣다가 결국 나도 터지고 말았다. 암 투병 중에도 새벽마다 출근하는 아버지에 대한 나쁜 소리를 멈추라고 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잘못한 건 있어도, 할머니한테 욕먹을 짓은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에게도 잘못한 적 없고, 자식들 앞에서 그 아버지를 욕하는 행위는 옳지 못하다고 말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한참을 밖에서 걷다가 지쳐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어떤 물건이 날아왔다. 어머니가 던진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며 여러 가지 좋지 못한 말을 뱉어냈다. 나는 대답할 힘도 없어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한 섞인 목소리가 방 밖에서 한참 동안 울려 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외할머니가 말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것이다. 내가 어머니는 고생하지 않았고, 아버지만 고생한다고 하지도 않은 말을 전달했다. 아직도 무슨 의도에서 그런 거짓을 전달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집은 아버지 병세에 요리가 한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입맛이 까다로운 외할머니를 최대한 배려했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아버지 다음으로 할머니에게 맞춰졌다. 어느 날은 아버지도 양보했고, 결국 할머니의 뜻대로 상을 차렸다. 그런데, 이모네에 가서는 지네 가족끼리 맛있는 것을 먹었다는 둥 허무맹랑한 소리를 늘어놨다. 당시 우리는 아버지가 아프셔서 ‘맛있는’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밖에도 외할머니는 크고 작은 문제를 계속해서 일으켰다.


초등생일 때 우리 집과 외가는 여름마다 계곡으로 놀러 가곤 했다. 계곡물이 흐르는 가장자리에 텐트를 치고 어른들은 분주히 먹을 것을 꺼내 준비했다. 물놀이를 하기도 전에 누나 둘과 나는 컵라면부터 각자 하나씩 흡입했다. 연료를 주입한 우리는 물이 고여서 놀기 좋게 형성된 계곡의 한 장소로 이동했다. 단숨에 뛰어들 것처럼 도달한 계곡물 앞에서 우리는 십분 가까이 머뭇거리며 앞다투어 외쳤다. “빨리 들어가 봐!” 이 말의 뜻은 '물이 너무 차가워서 나는 아직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 아무나 먼저 들어가라'였다. 그러다가 참다못한 누군가 먼저 물속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누군가는 나머지 둘에게 들어오라며 물을 뿌려댔다. 엄청 차가운 물을 피해 도망가기도 하고, 복수하기 위해 물로 뛰어들어 같이 물장구를 쳐댔다. 그렇게 한참 물놀이가 재밌어질 즈음에 어른들이 다가와 고기를 먹으라며 우리를 불러냈다. 우리는 좀 더 놀고 싶었지만, 고기의 유혹보다 강한 것은 없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고기를 흡입했고, 또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밤까지 먹고 놀고를 반복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니 어느새 해가 자취를 감추었고 하늘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지구의 천장이 언제 검은색이 될지 모를 때쯤 어른들은 우리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얘들 입술 파래진 거 봐. 빨리 나와서 옷 갈아입어. 집에 갈 거야." 아쉬움에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어린 나이에 오한이 스며드는 추위를 이겨낼 순 없었다. 우리는 물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이를 딱딱 부딪치며 온몸을 덜덜 떨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텐트로 뛰어갔고,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던 아쉬움을 계곡에 두고 헤어졌다. 어둠 때문에 색이 바뀐 계곡의 모양새는 어쩐지 음산했다. 우리가 저곳에서 놀았던 게 맞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익숙한 트럭 소리가 들려왔다. 파란색 트럭에서 내린 아버지의 환한 미소에 싱숭생숭했던 모든 게 말끔히 사라졌다.


계곡으로 놀러 간 추억 중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은 많지 않다. 우리가 놀 수 있는 주말에도 아버지는 일을 해야 했다. 아침 일찍부터 계곡을 들러 우리를 내려주고 출근했고, 퇴근 후 늦은 밤까지 쉬지 못한 채 우리를 데리러 왔다.


어느 여름 아버지는 늘 그렇듯 우리를 내려주고 출근해야 했다. 출근하기 전에 잠깐 계속에 발이라도 담그며 고기 몇 점 먹으려고 한 아버지에게 외할머니는 핀잔을 늘어놨다. 나는 아버지에게 쌈을 싸주려 했다. 상추에 깻잎을 덧대고 그 위에 고기 한 점을 올렸다. 그러자 아버지가 장난기 섞인 말투로 웃으며 말씀하셨다. "두 개는 올려야지, 이놈아~" 이 말이 문제였을까. 외할머니는 그 말을 비꼬았고, 어린 나는 불쾌했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우리 집 가장을 가벼이 여기는 행동에 내 자존감은 바닥을 기어 다녔다.


물론 열 시간 동안 열심히 놀고먹은 추억은 행복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외로움을 짓밟았던 그 언사 때문에 행복한 추억이 크게 훼손되었다. 겨우 2분 정도의 짧은 모욕이 모든 것을 뒤엎는다. 지옥의 2분이 행복의 600분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싸준 쌈 한 점에 열 시간 동안 행복하게 일을 하고 우리를 마중 왔다. 지친 몸을 숨기고 미소 짓는 아버지의 잔상이, 아직도 선명하다. 잔상이 선명한 만큼 외할머니에 대한 증오도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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