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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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냉정한 사회

17살 부상으로 인해 모든 운동을 그만두고 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친구들과의 사이는 좋았지만, 여전히 등교는 하기 싫었다. 학교의 부당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곳에서 버티는 게 어려웠다. 다수의 청소년이 버티는 학교도 못 버티는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자조하는 나날이 늘었다. 그때 국사 선생님이자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내게 요리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해피쿠킹스쿨이라고 SK 기업에서 주관하는 자선사업의 일환이라, 모든 교육 비용이 무료라고 했다. 시간도 18시 이후라 학교와 병행 할 수도 있었다. 내겐 나쁘지 않은 권유였다.


해피쿠킹스쿨에 들어가기 위해서 주말에 면접을 봤다. 첫인상이 좋았는지 나는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후 종로5가에 있는 요리학원에서 한식과 양식을 배웠다. 나중에는 힐튼 호텔의 한식과 중식 그리고 디저트 파트에서 일정 시간 동안 실습을 하기도 했다. 요리를 배운 지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SK에서 오픈한 ‘쌀과 밀’이라는 미니 레스토랑에 취업하기도 했다. 물론, 온갖 잡일만 도맡아 하다가 폭언과 욕설에 참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나는 요리에 재능도 없었고, 딱히 더 하고 싶지도 않았다. 선생님들의 폭력성과 학교의 부당함에 치를 떨었는데, 요리사는 더 심했다. 폭언과 욕설은 기본이었다. 그것들을 참아내야 할 동기가 조금도 없었다. SK 해피쿠킹스쿨 수료장을 받고, 얼마 후 SK에서 주관하는 불우이웃 돕기를 참여했다. 같이 배웠던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해피쿠킹스쿨에서 배운 게 참 많았다. 요리만이 아닌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 그리고 나와 맞는 사람의 유형도 알 수 있었다. 여러모로 실생활에 필요한 것을 습득했다. 다만, 당시의 내 상황이 굉장히 격동적이었기 때문에 일정 부분 기억에서 날아간 것들이 많다. 같이 요리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과 무엇을 했는지, 나누었던 대화도 망각했다. 어쩌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관계였기에 잊은 것일 수도 있다.


한참 요리 교육을 받고 있던 18살 4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정신이 없었다. 핸드폰을 열어 저장되어 있는 번호 전체에 아버지의 부고 사실을 알렸다. 초·중·고 동창 들이 찾아왔다. 이 고마움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같이 요리를 배웠던 사람들은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몇 년 후 성인이 되었을 때 같이 요리했던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연히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위로해야 할 이유도, 친분도 없었다. 유치하게 너도 안 왔으니 나도 가지 않겠다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저 진짜 내가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조세호의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와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친했던 형에게 이상한 말을 들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얼굴도 안 비치냐?’, ‘걔 원래 그런 애야’ 등 개소리들이 난무했다는 걸 알았다.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웃음만 나와 웃었다. 말을 전달한 형은 내 반응을 보고 머쓱했는지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요리학원 지인들과 인연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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