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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4살 때 아버지는 겨우 51살의 나이에 대장암에 걸렸다. 아버지는 변을 볼 때마다 피를 한가득 쏟았고,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다. 아버지의 시선은 텔레비전을 향했지만, 초점은 그 너머를 바라보는 듯했다. 말을 걸면 한 박자 느리게 대답했고, 말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즈음부터 부모님은 자주 싸우기까지 했다. 심지어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우리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빨간색 스티커를 들고 다녔는데, 그것을 떼다가 집에 있는 가구와 가전에 마구 붙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수저통까지 붙였는데, 어린 나도 이게 얼마나 개 같은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순식간의 폭풍이 지나갔고, 집 안은 서늘한 적막이 자리 잡았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집 안이 온통 붉게 보였다.
당일에 부모님은 분주하게 채비하고 어디론가 나가셨다. 나는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는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활자를 읽었다. 읽기는 했는데, 뜻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을 읽었고, 책은 흥건하게 젖었다. 책장을 덮은 후 그 자리에 모로 누웠다. 나는 땅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꼈고, 그대로 죽은 듯 잠에 빠졌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누군가 현관에 열쇠를 밀어 넣고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이었다. 상기된 표정의 둘은 집 안의 스티커를 떼어도 된다고 했다. 우리 집은 붉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거대한 빚은 여전히 부모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반나절 만에 야윈 부모님은 어쩐지 유난히 작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