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YOU]를 읽고 에세이

<20화> 작가 - 이사카 고타로 외 5명

by 박진권



I LOVE YOU
이사카 고타로
이시다 이라
이치카와 다쿠지
나카타 에이이치
나카무라 고우
혼다 다카요시





[작가 - 이사카 고타로]

<제목 - 투명한 북극곰>

[집착]

관계에 목을 메지 않았을 때부터 진정한 자유라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한때의 나는 어떤 관계도 놓지 않으려 한 적이 있었고, 그에 따라 내면의 힘을 바닥까지 소진해 모두 포기함과 동시에 중요한 관계조차 깊은 고민 없이 내치기 일쑤였다.


관계에 대한 집착과 열망이 오히려 사람들과의 단절을 야기했고, 극심한 외로움에 마음에도 없는 상대를 곁에 두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한 관계의 끝은 늘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안겨주었는데, 공감능력이 부족한 나조차도 참으로 아픈 일들이다.


그러한 상황을 숱하게 반복하다 보니 내성이 생겼는지, 고통받을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타인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지 않는 것과 더불어,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리게 되었고, 사랑하고 싶어도 스스로 절제하려 애썼다. 이제 더는 타인에게 사랑이라는 올가미를 투척하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고 싶지도 않다.






[사랑]

늘 한결같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끌린다. 밝고, 명랑하며 타인에게 빛을 선사하는 천사 같은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들의 품에서 안식을 영위하고 싶어 한다. 그들의 말은 언제나 평화로운데, 심지어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와중에도 평온하다. 서로 마주 보며 대화할 땐, 내 너머의 어떤 것을 보는 게 아닌, 눈앞의 나를 정적으로 직시한다. 한껏 숨기고 꾸며봤자, 속내를 훤히 내보이는 그들은 노상 사랑스럽다. 그렇게 천사의 곁에 안착했을 때, 이보다 더한 천국은 없노라 명명하며 그들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다. 그 시간을, 하루를, 한 달을, 평생을, 세상을 마음껏 흠모한다.






[작가 - 이시다 이라]

<제목 - 마법의 버튼>

[문득]

생각의 실타래는 늘 우울의 저점으로 향한다. 행복의 끝을 보고 있노라 명명했던 게 무색해질 만큼 금세 어두워지며, 언제라도 모든 것을 끝마칠 수 있다는 듯이 맹렬하게 우스워진다. 그렇게 우수에 찬 듯한 눈으로 한 점을 길게 응시하면 더욱 깊은 심연으로 내려앉는데, 문득 바라본 거울 속의 면상은 참으로 가관이다.






[선명]

오늘도 사랑의 끝자락을 혀 끝으로 가볍게 핥는다. 사랑쯤은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오만이 그것을 방치하는 데 큰 힘을 싣는다. 사랑을 꼭 해야 하냐는 반문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질 때쯤, 역겨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옛 연인들과의 헤어짐 이후의 나를 다시금 복기하게 되는 그 더러운 감각은, 언제나 기분이 좋지 않다. 언짢은 기분으로 머릿속을 휘저어 봤자, 고통의 기억은 더욱 뚜렷해진다.


웃음의 소실, 급격한 체중의 변화, 세상에서 가장 느린 하루와, 세상에서 가장 빠른 한 해 그리고 절대 멈추지 않는 어떤 사고의 회로는 사랑을 멀리하라며 내게 다시금 경각심을 주입한다. 그 거북한 각성제는 늘 선명하다.






[작가 - 이치카와 다쿠지]

<제목 - 졸업 사진>

[매력]

살면서 스스로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도 그럴게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말투와 특색이 존재하는데, 나는 늘 그런 것 없이 무색무취의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매력 없이도 늘 연애를 했고, 사랑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매번 비슷한 기간의 연애 후 마침표를 찍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나에게는 그 구간을 넘어갈 매력이 존재치 않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매력은 대단히 주관적이라, 누군가의 매력이 다른 사람에게는 혐오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보편적인 매력은 분명히 실재한다. 나는 그런 보편성이 짙은 매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보유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만들어낸 매력은 언젠가는 탄로 날 게 뻔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데 사용하는 체력을 조금 더 생산성 있는 곳에 투자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스로의 매력을 만들어낼 방도를 알지 못해 정신승리로 무장한 후 도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내가 싫지 않으니 계속해서 매력 피난민으로서 이 삶을 충분하게 영위하려고 한다. 무채색의 충만한 사람으로 말이다.






[가면]

관계에 대한 연기에 몰두하게 된 순간부터, 내 안에 있는 용기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더 이상 무모함을, 도전으로 포장할 수 없게 되었다고 믿는다.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과, 목공 더해서 각종 운동들을 향한 열정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사람을 곁에 머물게 하는 노력은 소멸에 가까울 만큼 그 흔적이 미미하다. 떠나가도 그만, 틀어져도 어쩔 수 없다.


사람을 제외한 부분의 영향력은 나날이 성장하고, 그에 대해서 무한한 열망이 가득해질수록 인간에 대한 관심의 척도는 그 기능을 상실한 채 점점 휘어진다. 친한 사람의 곁만이 편하고, 그마저도 귀찮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것을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도 언제나 박약으로서 끝을 맺는다.






[작가 - 나카타 에이이치]

<제목 - 모모세, 나를 봐>

[오판]

누군가 의도적으로 연한 색의 물감을 칠한 것 같은 느낌의 따뜻한 노랑빛 낮이었다. 나는 그의 무릎에 누워있었고, 그는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의 기분 좋은 손길 덕분에 감긴 눈은 떠지질 않았다. 당장 날아갈 것 같은 아찔함에 깊이 매혹되었고, 내게 있어 그 세상은 영원이었다.






[망각]

몇 년 전 듣던 노래가 우연히 귓가에 들려오면, 잊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에게 있어서 노래의 추억은 대개 좋았던 일보다는 괴로웠던 사건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럴 때면 미세하게 손이 떨리고, 아주 약간 숨이 거칠어진다. 옅은 수준의 공황장애인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니, 증상도 대단하지 않다. 그렇게 우울한 마음을 부여잡고, 산책을 나선다. 그리고 이내, 뛰기 시작한다. 모든 상처의 굴레를 떨쳐내기 위해서.






[작가 - 나카무라 고우]

<제목 - 뚫고 나가자>

[무지]

숨죽여 바라던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옳은 과정인지 완전하게 알 수 없다. 잘 모르기에, 혹은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저 무던히 걷는 수 밖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걷는 길이 익숙해졌다가도 어느새 낯설어진다.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는 정설에 정면으로 부딪쳐 싸울 용기도 없고, 수긍하며 감당할 수 있는 인내력도 전무하다.


어쩌면 더 이상 걷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생각의 파도가 포기라는 포말을 안고 내 마음속 깊숙이 밀고 들어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장의 현실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복이라는 숭고함은 절대 내려놓을 수 없다. 조금만 더 하면, 잃었던 무언가를 찾아낼 것 같은 느낌과 그에 준하는 실마리가 이미 손안에 잡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인데, 이러한 것들을 던져두고 결단코 쉬이 단념할 수 없다.


나는 철저하게 무지함을 이용하려 한다. 그렇게 무작정 지속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생각이며, 그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대화]

타인과의 상담은 늘 고되기만 하다. 완전한 공감이 어려워 신중함으로 중무장한 후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데, 신중함이 늘 긍정을 선사하진 않는다. 오히려 과한 진중함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나도 알 수 없는 빈말들을 차례대로 지껄이는데, 텅텅 빈 소리에 감정이 담겨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타자의 마음에 깊이 동화되어 그들의 아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흉내 내며 계속해서 개소리를 뱉어낸다.


스스로의 악몽은 직접 이겨내야 한다고 굳게 믿으며 자라온 나는, 타인에게 기대는 게 수월하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리고 연인에게도 온전하게 마음을 맡길 수 없는 탓에 지인의 아픔에도 정상적인 반응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땐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굳어버린 이후였다. 문제를 직시하고, 바꿔보자 생각했으나 너무 단단하게 고정되어버린 관념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고착된 사념은 점점 곪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썩은 내가 진동을 할 때쯤 어떤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타인은 무작정 알아내는 게 아니라, 천천히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관계는 마음대로 헤집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억하고 깨닫기를 기다려야 했다. 늦게라도 알아낸 사실 덕분에 느긋하게 파악되는 관계의 백미에 눈을 떴으며, 상대를 기억하는 재미와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들에 옅지만 충분히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엄청난 것을 선행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대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담화의 끝은 언제나 기쁨의 관계가 형성됐으며, 회심의 추억이 되었다.






[작가 - 혼다 다카요시]

<제목 - Sidewalk Talk>

[도착]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늘 새로웠다. 매번 같은 전철을 타고, 같은 역에서 내린 후 비슷한 시간을 기다리는 데 투자했다. 그럼에도 매번 색다를 감정이 샘솟았다. 그렇게 다른 것은 만사 재쳐두고, 사랑만을 열심히 키워냈으며, 심장만 요란하게 뛰는 멍청한 시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보편적인 일상의 행복 속에서 점차 도태되어 가는 나를 목도했다. 한 사람을 만나는 것 이외의 것들은 등한시했고, 덕분에 주변에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그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자, 친구였고, 취미이자, 성공의 시초였다. 나는 하늘이 무너진 후 솟아날 구멍 따위에 의존하지 않았으나, 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도 그와 함께라면 전혀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련무던하게 헤어졌다. 타자와 같이 힘든 시간을 보냈고, 괴로웠으나 잘 견뎌졌다. 특별히 남들과 다를 게 없었으며, 짧게나마 다른 사람도 만났다. 그토록 맹렬했던 사랑은 서로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결국은 이별이라는 보편성에 불시착했다.






[백우]

오래전에 꾸었던 꿈의 기억이 선명하다. 과거에 실재했던 일이 아닌, 꿈의 기억이다. 그 꿈의 배경색과, 건축물 그리고 날씨와 나의 기분 나아가 상대의 표정까지 뚜렷하다. 하지만, 잠에서 다가온 꿈들은 대체로 불쑥 나타났다가, 잡을 방도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난 직후 반사적으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어질러졌던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 둘 맞춰지고, 이내 대본이 되어 나의 또 다른 세계의 시초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절대 잊지 못할 꿈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 실재했던 일들 중 대단히 사소한 일도 갑작스레 선명하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사소함이 365일 24시간 모두 저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감정과 상황 그리고 주변의 소리와 어렴풋한 시간 나아가 정확한 날씨까지, 심지어 어떤 대화를 나누었으며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도 명확하다. 신기하게도 그 기억 주변에 있던 지형지물에 대한 다른 추억들까지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렇게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생각의 늪에 빠져 과거의 뿌리를 타고 강렬하게 쏟아지는 추억의 소나기는 이내 그치고 번뜩하며 나를 현실로 밀어낸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의 중요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듯이 매몰차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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