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작가 - 게일 가젤
하버드 회복탄력성 수업
Everyday Resilience
게일 가젤 - 손현선 옮김
[들어가며]
[1] 나는 타인에 의해서 우울해지는 경험이 많지 않다. 연애할 때를 제외하고는 타자가 내 기분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뿐더러 있다고 해도, 아주 짧은 시간일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회사에서 생긴 불만은 퇴근과 동시에 말끔히 사라진다. 그러한 쓸데없는 인간과,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다가오는 우울의 정체를 알아낼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울의 근본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스스로의 인내력이 그러한 우울을 절대 이겨낼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형성되는 부정은 도저히 떨쳐낼 수 없다고 믿었기에 받아들이는 게 전부였다. 본질적인 치유는 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얕은 지식에 갇혀 우물 안에 틀어박혀 있기를 원했다.
[1장 누구에게나 회복탄력성은 있다]
<1-1 회복탄력성이란 무엇인가?>
[1] 세상에 고통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역경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다. 무작정 감내했고, 자존심 때문에 감추기 바빴다. 그렇게 자존감은 내면에서부터 점차 갉아먹히기 시작했고, 나에게 자신감마저 앗아갔다. 나중에는 무엇 때문에 아픈지, 왜 감내하고 있는지, 원인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망가져갔다.
그렇게 너덜 해진 정신으로도 놓지 않은 것은 예술이었다. 웃기 위해 읽었고, 살고 싶어 글을 썼다. 쓰고 읽기도 못할 정도로 무너졌을 땐 그림을 그리며 회복했다. 이 모든 상황이 완전히 나아질 순 없었지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는 있었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명확한 지표를 찾아가는 과정이 어떻게 즐거울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1-2 당신은 뇌 회로를 충분히 바꿀 수 있다>
[1] 나는 쓴소리를 들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찾아서 고언을 받아내진 않는다. 반면 단소리에 대한 내성은 부족한 편이다. 타인의 단소리에 대한 말의 진위여부를 의심하는 게 아닌, 그 자체에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칭찬은 전혀 기쁘지 않다. 그리고 감정이 깃들지 않은 무의미한 긍정의 낱말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치가 떨린다.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고, 특별하다 믿는 구석을 찾아내 주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러한 인간들이었고, 균형이 잘 잡힌 성인들이었다. 거리낌 없이 유능하다 말할 수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타인이 원하는 평가를 쉽게 내려주지 않는다. 소위 답정너의 행태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 것이다.
긍정은 분명 좋은 감정이나, 어떤 사람에게는 무관심일 수도 있다. 나는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무관심으로 대처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관여되어 있는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긍정의 답변만을 살포한다. 그들이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없으니까 말이다.
[2] 최근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바로 [스스로를 사랑해?]라는 우문이었고, 내 답변은 [그렇다]였다. 그에게 현답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으로 대화를 종료했다. 타인의 동공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꽤나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모양새임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재다능하며 할 줄 아는 게 많고, 하고 싶은 일도 수두룩하다. 글이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 잘 쓰며, 그림도 곧잘 그린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노래도 뿌듯하게 부르고 사진도 나름 괜찮게 찍는다. 더욱이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부정의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을 만큼 심리적, 신체적 긴장 상태에 내성이 있다. 이런데 어떻게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1-3 회복탄력성 계발의 출발점>
[1] 근래 조금 잘못된 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이미 대단히 비판적이고, 무한히 부정적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비판과 부정은 필요 없다. 사실 비판적인 사고는 조금 더 날카롭게 다듬고 싶지만, 부정적인 마음은 떨쳐내고 싶다. 부정 때문에 비판의 시선이 순간 비난과 혐오로 변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끗 차이라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일순간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회복탄력성이라는 긍정서를 꺼내 든 것은 참으로 훌륭한 판단이었다. 이제는 다시금 긍정을 받아들일 차례다.
<1-4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1] 나는 책상의 전반적인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맞춰진 한도 내에서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하는 편이다. 결벽증과 같이 먼지 한 톨 없이 박박 닦는 게 아닌,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일단 타인과 연락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멀리 한다. 이어서 잡생각이 많아지는 책과, 상념이 깊어지는 물건들을 치워버린다. 그렇게 준비가 된 상태에서 다음 동작을 이어간다. 따라서 환경은, 나태해질 수도 있는 나를 잡아주는 긍정적인 장치가 된다.
[2] 완벽이라는 말을 절대 믿지 않는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불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탄받을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 생각과 이상은 언제나 결점이 있고, 그 허점을 찾아내는 게 또 다른 사람이 할 일이다. 당연하게도, 다시금 그 오류를 보완하는 것 또한 인류의 몫이다. 한치의 오류도 없는 무결점을 논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낙관론자일 가능성이 있으며, 극에 달한 낙관주의자는 극점에 있는 비관주의자와 다를 바 없다.
[3]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은 성공할 자격이 있다. 어떤 사람들의 노력은 숭고하며,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들의 꿈은 이루어져야 마땅하고, 희망 또한 이어져야만 한다. 그러한 사람들 곁에서 나 또한 노력을 멈추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열정은 마치 화마처럼 나에게도 옮겨 붙었다. 덕분에 어떤 일에 매진하게 되는 이유와 그 일에 대한 가치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읽고 쓰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
[2장 대인관계]
<2-1 대인관계 능력을 키우려면>
[1] 나는 늘 대인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직접 행동하는 것에 대한 괴리의 편차가 심하다.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타인과의 형식적인 대화에서 의견 대립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상대방과 나의 의견 대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수용할 방법도 알고 있다.
그러나 웃고 떠들자고 모인 자리였다면 모를까, 형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해서 기분이 상해 입을 닫는 행태는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해 나타난 현상을 타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은 여전히 공감하기 어렵다.
<2-2 인간관계는 어떤 유익을 주는가>
[1]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목도한 경험이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얻고 있다고 착각했으나, 내 눈에는 전부를 잃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누군가를 부양하기 위해 잠을 포기하고, 당장의 행복을 놓으며, 깊은 우울로 향해 있었다. 집 안 가득 쌓인 신경안정제의 수위는 정도를 넘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어내고 싶은 게 신분상승이었고, 나는 그것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원하는 신분상승을 손에 머금으면,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2-3 섬김이 행복의 비결이다>
[1] 타인을 도울수록 행복해지는 원리는 참이다. 봉사를 할수록 고양감으로 가득 차 어느새 기쁨의 미소를 짓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목적이 소정의 상품도, 조금의 답례도 원치 않는 순수한 봉사 그 자체일수록 행복의 구는 끝을 모르고 부푼다. 스스로에게만 자주 매몰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가끔의 봉사는 무조건 필요한 영양제와 같다.
[3장 유연성]
<3-1 유연성을 키우려면>
[1] 현재의 순간에 몰입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을 쓸 때만큼은 스스로가 작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고, 그렇게 온갖 문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실제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게 됐다. 책 한 권 없는 작가 지망생이 아닌, 책을 언제든 출간할 수 있는 작가로 말이다.
그렇게 자존감과,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로 살아오다 보니, 나를 작가가 아닌 그저 재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었고, 실제 작가로 보는 사람도 생겼다. 그렇게 뜻하지 않았던 인정과 시기를 한 번에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종합 예술인이 꿈인 나에게 이도 저도 아니라며 핀잔을 주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다재다능하다며 긍정적인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듯 타인의 평은 나의 태도와는 다르게 전부 상이했다. 스스로의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기분과 가치는 타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닌, 내 생각에 의해서 명명된다는 것을 적확하게 인지함으로써 타인이 보내는 부정의 기운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3-2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1] 지인 중 한 명이 이렇게 물어왔다. "혹시 네 글에 내가 있어?" 적잖이 당황했다. 내 글에 주변인이 있는 것은 당연할진대, 질문을 던진 사람은 범위 외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내 속으로 생각했으면 좋았을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니, 뿜어졌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수도 있다. "너를 내 글에 넣을 정도의 유대감은 앞으로도 없을 거야."라고 말이다.
<3-3 관점을 바꾸면 사고가 유연해진다>
[1] 무력감이 찾아올 때마다 매번 대책 없이 뛰쳐나갔다. 밖에 있는 나는 무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오롯이 혼자여야 했다. 무기력할 때 타인을 만나 흥미 없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대화를 이어간다면, 그저 군중 속의 더 깊은 무기력에 빠질 뿐이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무력감에 무능함까지 더해져 더 깊숙한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홀로 카페로 향했다. 짙은 원두 냄새에 마음이 평온해졌고, 진리가 담겨있을 수도 있는 책과, 즐거움이 묻어 나오는 글에 빠져 무기력을 몰아냈다. 이것 말고도 걷거나, 뛰기, 혹은 멀리 여행 가기 등 좋은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무기력 퇴치법을 찾아낼 생각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공유해보려 한다.
[4장 끈기]
<4-1 끈기를 키우려면>
[1] 과거의 나는 대부분의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 무엇이든 한계점을 느꼈고, 그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도망으로 결정지었다. 때문에 도피 행동은 점차 발전했고, 더 수월한 피난으로 이어졌다. 맞서 싸우는 방법을 잊었으며, 필요성도 잃었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을 밥먹듯이 해냈고, 세상에 끝은 없으니 단념한 게 아니라며 자견 하기만 했다. 한 발 물러서서 본 나의 과거는 부끄럽지만, 덕분에 다시는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4-2 목표가 인생의 더 큰 목적에 부합하는가>
[1] 나는 독자들이 자신을 해치는 괴물을 목도하도록, 혹은 스스로의 내면 안에 있는 괴물을 물리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또 다른 괴물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며, 내 기저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태도이다.
<4-3 끈기를 가지려면 계획은 구체적으로>
[1] 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얼마나 세부적인 가와, 어떤 강도의 강박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계획의 수준에 따라 생각의 깊이를 유추할 수 있고, 미래를 예견하는 게 가능해진다. 내가 보고, 듣고, 읽은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계획을 기획했다. 자신을 대단히 객관적으로 바라보았고, 스스로를 표본으로 삼았다. 매번 바뀌는 일정이 존재했고, 몇십 년 동안 절대 바뀌지 않는 일과도 존재했다. 그들에게는 비범함과 확신이 있었다. 확신의 실재는 끈기로 이어져 그들이 위대한 사람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비범한 사람들 조차 계획 속에서 자신을 찾는데, 평범한 내가 계획도 없이 이 삶을 살아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계획에 매몰되어, 다른 일정을 망치는 게 아니라면 계획은 필수불가결이다. 계획도 없이 하루 15시간 이상 무작정 매진하는 게 가능한 노력의 천재가 아니라면 말이다.
<4-4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1]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낙담과는 거리가 있다. 인생에서 낙오되는 것을 방지해주는 게 수용인데, 이것이 절망일 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어떤 난관이든 호전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받아들인다는 명목 하에 자신을 방치하는 행동은 절대로 긍정이 될 수 없으며,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긍정을 이루기 위해선 부정의 존재를 무조건 인식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 어떤 곳에 부정이 있는지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고, 그에 따른 대처를 통해 부정을 몰아내고, 긍정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5장 자기 조절]
<5-1 자기 조절 능력을 키우려면>
[1] 밥을 먹었으면 바로 치우는 게 좋고, 부득이한 사정이 없다면 곧장 설거지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사고 싶은 게 생겼을 땐 고민 없이 바로 구매하며, 하고 싶은 일이 일어나면 관조하지 않고 단숨에 뛰어든다. 마지막으로 썼던 물건은 반드시 제자리에 위치해 있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이러한 행태들이 강박적이긴 하지만, 편집증이나 결벽증은 아니다. 왜냐하면, 제자리에 오래 둔 물건 위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경우가 많으며, 보고도 닦지 않는 상황도 빈번하다. 또한 나는 생각보다 체계적이지 못하다. 하루 일정은 잘 지켜지지 않으며, 한 주의 일정은 매 번 바뀌고, 한 달의 일정은 까마득하다.
그저 코가 예민해 음식물이 묻은 그릇을 오래 둘 수 없는 것이고,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 위치하는 연습을 한 것이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거나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내게도 그러한 강박이 자리 잡는 일 또한 없었을 수도 있다.
<5-2 휘몰아치는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1] 하염없이 흘러가도록 그대로 두는 게 편해졌고, 세상만사 다 귀찮다. 모두 대응하며 빠듯하게 아등바등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가을 낙엽길 걷듯 그렇게 한갓지게 살아내고 싶다. 그렇게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 게 내가 연옥으로 떨어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 절대로 고이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려 한다. 온전히 순환될 수 있도록 말이다.
<5-3 잠시 멈추어가도 좋다>
[1] 내 주변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대가 없이 묵묵하게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같이 있으면 대부분 행복하다. 계산 없는 행동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타인에게 괜찮냐는 말 한마디를 던질 수 있게 되었다. 내 인생의 등대가 되어주는 그들과 같이 나도 누군가의 등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원한다.
[6장 긍정성]
<6-1 긍정성을 키우려면>
[1] 어떤 사람은 장점보다는 단점을 보완하는 게 성장의 시초라고 여기는 데 반해 또 다른 사람은 단점보다는 장점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 성공의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 물론, 결점을 개선함과 동시에 강점을 계발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욕심은 모두 다 놓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범인의 입장으로 미루어 보았을 땐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렇기에 긍정적인 사람은 단점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고, 부정적인 사람은 장점을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좋다. 이유는 긍정적인 사람은 끝없이 낙관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결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가능성이 있고, 부정적인 사람 또한 끝없이 비관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강점을 변변찮은 능력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긍정은 단점으로, 부정은 장점으로 희석시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다면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6-2 내면 비판자에게 맞서기>
[1] 비판과 비난은 분명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비판은 사고를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비난은 다르다. 비난은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하며,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감정의 동요 없이 객관성을 위해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가 스스로의 자존감을 좀먹는다. 때로는 주관성 짙은 낙관의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한 법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부정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거짓 비관일지도 모른다.
<6-3 낙관주의자는 모든 난관 속에서 기회를 포착한다>
[1] 미래의 나는 훌륭한 종합 예술인이 되어있을 게 분명하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한치의 떨림 없이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일들로 대단한 종합 예술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에세이, 소설, 사진, 그림, 운동, 말(강연) 등등 너무 많다. 곧 배울 예정에 있는 목공이 될 수도 있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싶은 일들이 될 수도 있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무궁함 덕분에 설렘 한가득 안고 미소를 지으며 글을 쓰고 있다. 이러한 나날들을 조금 더 온연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음 단련을 꾸준히 해야만 한다.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7장 자기 돌봄]
<7-1 자기 돌봄 능력을 키우려면>
[1] 성실함을 방패로 세워두고, 잠을 청하지 않았던 때가 있다. 당시의 나는 새벽 두 시에서 세시쯤 취침을 했고, 새벽 다섯 시에서 여섯 시에 기상을 하는 기이한 행각을 이어갔다. 운동은 하루도 쉬지 않고 했으며, 통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남들보다 못한 내가 타인들과 똑같은 나태를 즐기는 행위를 참을 수 없었고, 스스로 만들어낸 의무와 책임이라는 성 앞에 주저앉아 제자리걸음으로 나아가는 척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척이라 해도 노력은 노력이고, 투자는 투자였다. 덕분에 행동해야 하는 이유를 알았고, 방법을 배웠다. 생각만 하다가 끝내 도전하지 못하는 멍청한 행동이 거세됐다. 그렇게 부정에서조차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으며, 긍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7-2 나는 판단이 아닌 공감의 대상이다>
[1] 나는 한 분야의 완벽한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영역의 천재가 아닌 것을 확신한다. 그렇기에 종합을 선택했고, 거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게 힘들 땐 그림을 그렸고, 그마저도 질렸을 땐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무의미함이 느껴졌을 때 차 안에서 하릴없이 몇 시간이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체육관으로 달려가 무아지경으로 운동을 해내고, 세상에서 가장 나태한 사람처럼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불러냈다.
그렇게 말끔한 회복 후에 다시금 글을 썼고,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시간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고, 현재의 나에게 많은 방패가 생겨났다. 책, 글, 그림, 사진, 운동이 내 인생의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며, 더 배우고 싶은 분야가 생겨났다. 그렇게 매번 인생의 즐거움을 알아냈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7-3 나만을 위한 시간을 따로 만들자>
[1] 실패한 일에서 오는 허탈감을 금방 떨쳐내는 편이다. 성공의 전조는 실패이고, 풍요의 징조는 허탈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암울하고 어두웠다고 할 수 있는 시기에 제일 찬란한 빛이 나타났고, 사는 것에 대한 허탈감 때문에 모든 것을 비워냈을 때 비로소 풍요가 찾아왔다. 내게 실패는 무서운 일이 아니며, 부정은 간단하고 빠르게 지나갈 단편일 뿐이다.
[8장 회복탄력성은 마라톤이다]
<8-1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자>
[1] 스스로 생각하는 미래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늘 할 수 있는 일에만 뜻이 생겼고, 해낼 수 있는 전략만 구사했다. 잘하지 못할 일은 관심조차 생기지 않아 도전할 이유가 없었으며, 간절히 원하던 일은 노상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내가 완벽하게 믿는 미래는 결국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는 법칙을 강렬하게 신뢰한다.
<8-2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하려면>
[1] 늘 충실한 삶을 살아낼 순 없다. 그렇기에 한 입으로 여러 말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어떻게 사람이 한 입으로 한 가지의 말만을 뱉을 수 있으며, 한 심장으로 한 가지의 뜻만을 품을 수 있나. 나는 절대 불가능하다. 때로는 게으르기도 하고, 화도 내고 싶다. 실수도 하고 그 실수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곧이어 사과를 할 수도 있고, 끝내 어린아이처럼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결례를 깨닫고, 반성도 하며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으며 자조한다. 그리고 다시금 툭툭 털어내고 가야 할 길을 열심히 걸어갈 테다. 가끔씩은 충실하지 못한 삶을 살아내며 말이다.
<8-3 마치며>
[1] 과거의 불안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이미 이겨낸 장애물이기에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가끔씩 피어나는 과거의 망령은 두렵긴 하다. 한 번 견뎌낸 공포는 두 번도 버틸 순 있지만 세 번이 되었을 땐 대항할 힘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먹구름을 몰아내는 훈련을 했다. 먹구름이 항상 내 머리 위에 떠다니게 두지 않았고, 비를 왕창 쏟아낼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고개를 들었을 때 시원하게 게워낸 먹구름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화창한 미래의 태양만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