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잘 봤어요!
15년 지기 친구가 결혼을 했다. 매일 붙어 다니는 4명 중 한 명인데,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축사할게라고 했었다. 너무 가까워서, 익숙해서, 쑥스러워서 전하지 못한 말을 이 자리를 빌려해주고 싶었다. 집에서 운동하는 곳까지 30분 정도 걸리는데, 매일 그 시간에 어떤 축사를 해줄까 고민했다. 고마웠다고, 나의 아름답고 그리운 시절에 늘 함께 해줘서.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엔 나보다 더 아파하고, 위로해준 네가 있어서 힘이 났다고. 너의 결혼을, 사랑을,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하고 축복한다고.
신부 아버지 축사보다 길었고, 눈물을 참느라 눈도 못 마주치고 읽었던, 그래서 신부가 참 많이 울었던, 그런 축사였다.
이 자리를 빌려 한번 더 말할게, 많이 사랑하고, 결혼 축하하고, 행복해야 해. 평생 옆에서 지켜볼게.
회사에서 진행한 우아한 테크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했다. 프로덕트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갖고,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가 함께 했다. 시작은 일을 더 즐겁게, 잘하고 싶어서였다.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웠고, 지금 당장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몰랐다. 가끔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 이런 생각을 하시는구나, 이렇게 일을 하시는구나 느낄 때면,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 분의 생각과, 일하는 방식, 기획자 분의 애로사항, 고충을 듣고 싶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그리고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다양한 직군의 분들께도 우리들의 이야기, 경험, 생각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발표 직전에 텐션을 올리려고 온갖 카페인 음료를 먹긴 했지만,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든든한 동료분과 함께하니 든든했다. 그렇게 시작된 발표는 재밌었다. MC를 봐주시는 분이 워낙 베테랑이었고, 우리 팀을 많이 자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한정된 시간 안에 여러 이야기를 해야 하다 보니 준비한 내용 중에 미처 말하지 못한 부분이나, 내용이 개발 쪽에 포커싱이 맞춰진 부분이 아쉬웠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또 생긴다면, 각 분야별로 균등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거나, 강조할 분야별로 확고히 정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쨋든 너무 재밌고, 감사했고,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들숨의 호기심, 날숨에 질문 - by 기획자
제품뿐만 아니라 업무환경도 디자인해야 한다 - by 디자이너
틀린 걸 인정할 수 있는 동료가 되자 - by me
3월부터 시작했던 긴 다이어트가 끝났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4개월 동안 체지방은 8.2kg 감량, 골격근량은 2.6kg 증가했다. 체지방률이 무려 13.3% 가 됐는데, 맞나 싶을 만큼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근데 나의 생활은 그리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았었다. 운동이 끝나고는 빼먹지 않고 단백질을 섭취하려고 했고, 점심은 시켜먹더라도 샐러드나 건강식 위주로 먹었다. 같이 다이어트하는 사람들과 식단을 공유했는데, 단순히 오늘 먹은 음식을 찍어서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나 스스로 절제하게 되고, 나 또한 내가 뭘 먹었는지 아니 더 조절하게 됐다. 딱히 양을 줄이지도 않았다. 대신 규칙적으로 먹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라니. 바디 프로필을 찍기 위해 고생했던 한 달에 비하면 거의 천국이었다. 그런데 결과도 훨씬 좋았다. 그리고 이런 패턴의 식단이라면, 충분히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도 유지하려고 한다. 시작할 때 기대도 안 했는데, 와, 나 너무 잘했다.
AFK, Amazing Fitness Korea
이 대회는 개인전으로 출전했던 대회다. 지난달, 예선전을 치르고 한참을 잊고 있다가 결과를 보며 기쁨반, 걱정 반이었다. 6명까지 본선 진출이 가능했는데, 5등으로 예선을 마무리했었다. 본선 일주일 전 기다리던 본선 와드가 나왔는데, 특히나 심폐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와드가 많이 나왔다. 이번에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코치님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때 알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코치님은 꽤나 많은 대회에서 입상을 하셨는데, 그 비결을 알려주셨다. 바로 ‘연습’이다. 본선 와드가 공개되고 나면 각자 운동 능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전략을 찾아야 한다. 한 번에 갈지, 몇 개를 끊어서 갈지, 숨은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 쉬는 타이밍은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지. 같은 와드를 여러 번 반복해서 해야 하고, 매번 최선을 다해야하기에 지난한 과정이다. 결국 꼼수는 없었다. 연습이 답이었다. 같은 와드를 2번씩 연습하고, 부족한 동작을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다시 측정하고.
결과는 2등이었다. 포디움은 생각도 안 했는데, 뜻밖의 성적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루 동안 수행했던 4개의 와드 중 2개는 무려 1등을 했다. 특히나 클린 185lb는 내 PR 무게였는데,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PR을 5번이나 갱신했고, 와드에서 까지 성공했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건, 1등과 포인트가 동일했는데, 마지막 와드를 져서 2등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기에 뿌듯했고, 또 뿌듯했다. 역시 연습만이 살 길이다.
K BOX RISE
이 대회는 크로스핏 씬에서 꽤나 유명한 팀전이다. 여자 2 명, 남자 4명이라는 인원을 채우기 쉽지 않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참가하게 됐다. 거기다가 코치님도 우리 팀으로 참가해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예선전도 우린 진심이었다. 그 결과 180팀 중에서 7위로 예선을 통과했다. 그마저도 중간에 부상 입은 팀원이 있어서 완주를 목표로 했었는데, 기록이 좋으니 오히려 걱정이 됐다. 본선도 그에 걸맞은 기록을 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준비했었다. 단체전에 많이 나오는 웜을 하러 다른 박스에 원정 간 팀원도 있고, 나는 일주일 내내 같은 와드를 5번이나 했었다.
대회 전에 마지막 연습이 끝나고, 코치님이 해주셨던 말이 생각난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연습했고, 경기장 가서는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된다. 이제 나머지는 운명이고, 우리를 이기는 팀은 원래 우리보다 잘하는 팀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와 비슷한 전력을 가진 팀을 이길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즐기고 오자.
정말 열심히 연습했기에, 이 말을 듣고 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긴장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무사히 대회를 치렀다. 대회장에서는 연습 때보다 잘한 것도, 잘 못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는? 4위였다.
팀전이라 좋았고, 팀전이라 더 재밌었다. 우리의 경기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같이 했던 모든 분들에게 좋은 기억이 됐기를, 다음에 또 함께 하고 싶은 추억이 되기를.
걸핏
이렇게 대회 투어를 다니는 와중에, 선수로 참가하지 않으면서도 응원하러 와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걸핏은 총 3명의 여자 선수가 팀을 이뤄서 참가하는 대회였는데, 그중에 2명이나 크로스핏 대회를 처음 나가본 분들이었다. 처음엔 나가서 잘 놀고 뒤풀이나 하자였는데 점점 진심이 돼가는 언니들을 보니 뭔가 뿌듯했다. 그리고 대회날에는 연습 때보다 훨씬 잘했다. 못하던 동작이 갑자기 되기도 하고, 원래 하던 개수보다 훨씬 많이 하기도 했다. 응원하는 내내 마음 졸였는데, 경기를 보는 내내 선수의 힘듦을 알기에, 차마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 내 경기를 보고 응원해줬을 많은 분들을 생각하니 너무 감사했다. 그러니까, 다음에 또 다 같이 나가면 좋겠다 :)
링 머슬업
결국 해냈다. 다이어트의 끝자락에, 올해 목표했던 링 머슬업 되찾아오기에 성공했다!
이제, 했다 보다는 더 나아지는 모습을 기록해볼까 한다.
학창 시절 늘 불만은, 왜 시험을 보는가였다. 어른이 되고 나니 시험을 안 봐서 좋았는데, 생각해보니 시험만큼 내가 배운 걸 복습하고, 기억하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확인하는데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 크로스핏 대회가 나한테 그랬다. 취미로 하던 운동도 시험 같은 대회를 나간다고 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부족한 건 더 연습하게 됐다. 크로스핏을 시작한 후 첫 해를 제외하고 이렇게 폭발적으로 성장한 적이 없었다. 등수라는 결과보다는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다 보니 운동을 더 좋아하게 되고,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아직도 더 성장할 게 있다니. 다음 달에 내 모습이 기대된다.
6월은 거의 애슬릿 모드였다. 팀전이 끝나고 나서야 개발자 모드로 돌아왔다. 테크 세미나도 무사히 마쳤고, 회사에 새로운 동료도 함께 하게 됐다. 앞으로 같이 할 업무도 설렌다. 7월엔 운동보다는, 그동안 챙기지 못해 늘 미안했던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챙기고, 몸도 머리도, 마음도 한 박자 쉬려 한다. (이미 할게 또 쌓여…있… 긴……ㅋㅋ)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행복한 상반기였다.
그리고,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길,
신이 났던 만큼 반성하는 6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