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 기존 제도와의 충돌지점

금융 혁신과 안정성 사이의 딜레마

by Ethan

최근 한국은행과 금융권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논의 과정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금융 혁신의 수단으로 인정하면서도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충돌 가능성과 여러 우려들이 함께 제기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스테이블 코인이 기존 금융 제도와 충돌되는 지점을 알아보고, 해외 사례와 함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전자금융거래법(EFTA, 이하 '전금법')과의 충돌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고정하여 가격 변동을 최소화하고 이를 결제수단으로 활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금법에서 정의하는 '전자화폐' 또는 '선불전자지급' 수단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전금법은 스테이블 코인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데 그중 환불이나 예치금 보장과 같은 소비자 보호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스테이블 코인은 '가상자산'에 분류되어 있어 주로 투자자 보호와 불공정 거래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결제 수단으로써의 법적 기반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과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Payment Stablecoin Act’를 논의 중이다. 주요 논의는 '결제에 쓰이는 디지털 달러'로 정의하여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써 제도 편입을 시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MiCA 법안을 통해 스테이블 코인을 'E-Money Token(EMT)과 'Asset-Referenced Token (ART)'으로 분류하여 결제 수단으로써 제도권 안에 편입했다.

일본의 경우도 '법정화폐와 교환 가능한 전자지급수단'으로 정의하여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사진: Unsplash의Tingey Injury Law Firm



스테이블 코인의 이자 지급 문제

스테이블 코인은 결제 수단으로써의 법적 지위 외에도 발행 과정에서의 이자 지급 여부에 따라 그 법적 성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사용자가 발행사에 원화를 예치하고 이자를 받는 구조는 ‘예금’에 가까우며, 이는 은행만이 인가를 받아 수행할 수 있는 고유 업무가 된다. 또한 발행사가 자산 운용을 통해 이익을 내고 이를 코인 보유자에게 배분한다면 ‘투자계약’에 해당하여 자본시장법상 증권으로 볼 수 있다. 즉, 어떤 형태로든 이자를 지급하는 순간 스테이블 코인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금융상품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해외에서도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이자 지급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미국(SEC/GENIUS Act) : SEC는 증권성 판단에 Howey Test를 적용하며, 그 기준 중 하나인 ‘타인의 노력에 따른 수익 기대’라는 부분은 증권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2025년 제정된 GENIUS Act는 결제용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 발행자가 보유자에게 이자나 기타 경제적 혜택을 지급하는 행위를 명확히 금지했다. 실제로 2021년 코인베이스의 Lend 서비스는 스테이블 코인 예치 후 이자를 지급하는 구조가 증권에 해당한다는 SEC의 경고를 받고 중단된 사례가 있다.

EU(MiCA) : MiCA 법안은 결제용 스테이블 코인(EMT)뿐만 아니라 자산참조토큰(ART)에 대해서도 이자 지급을 명확히 금지했다. 이는 스테이블 코인을 결제수단으로 한정하려는 규제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일본(자금결제법) :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 코인을 ‘법정화폐와 교환 가능한 전자지급수단’으로 정의하면서 발행사가 보유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 스테이블 코인의 이자 지급은 단순한 결제 수단으로써의 역할과 금융 상품으로써의 역할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유럽, 일본 모두 결제용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 이자 지급을 명확히 금지함으로써 결제 수단으로써의 역할로 한정하고, 예금·증권과의 충돌을 차단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스테이블 코인의 제도 정비 과정에서 법적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해 이자 지급 금지 여부를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본 자유화와 외환 규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정책 약화외환 규제, 자금세탁방지(AML)와 테러자금조달방지(CFT)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우려가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달러 스테이블 코인과의 교환을 쉽게 하여 자본 유출을 돕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내국인이 바이낸스와 같은 해외 거래소에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매입해 보관하거나 사용할 경우, 이는 사실상 국내 외화 예금이 해외로 이전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급을 봤을 때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 입장에서는 외화 유출 문제가 매운 민감한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실제 미국이 스테이블 코인을 주도하는 이유 중 하나로 중국 내 부유층 및 기업들이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하여 자산을 해외로 쉽게 이전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목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풍문에 따르면 중국은 자본유출 우려로 휴대전화를 불심검문하여 코인이 발견될 경우 잡아간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자본 유출은 민감한 사안이며, 이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듯 제도적 장치와 기술적 장치를 통해 충분히 검토하여 대응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은 블록체인의 기술적 장치를 활용하여 자금세탁방지와 테러자금조달방지 등을 관리하고 있다. 한국도 블록체인의 기술적 검토를 통해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기술적인 장치로 관리하여 리스크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On-chain Compliance

스테이블 코인은 이더리움과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된 토큰이지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네이티브 코인(Native Coin)과 달리, 이 토큰들은 발행사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스마트 컨트랙트에 의해 통제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특정 주소를 동결(freeze)하거나 송금을 차단(blacklist)할 수 있는 기능을 스마트컨트랙트에 내장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실제 테러자금, 해킹, 제재 위반 사례에서 수천 건 이상의 주소가 동결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1일 거래한도를 자동으로 관리하거나, 의심 거래 패턴이 탐지된다면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자동으로 거래를 중단시키고 규제기관에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가능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기능들은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에서 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이브리드 자산 또는 온체인 중앙화 자산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 이는 비트코인과 같은 순수한 탈중앙화 자산과는 달리 중앙화된 통제 기능이 존재한다. 이것이 크립토 시장에서의 '검열 저항성'이라는 블록체인의 기본 정신에는 위배된다고 말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가상자산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법적 규제를 준수할 수 있는 장치로 활용가능하다.



Hybrid Blockchain Architecture

미국에서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대해 하이브리드 블록체인 구조도 검토하고 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고, 퍼블릭 블록체인에 유통하는 구조인데 단순히 발행과 유통을 분리하는 것이 아닌 개인정보 보호와 투명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거래 당사자의 신원과 같은 민감한 정보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거래의 무결성이나 토큰의 총량과 같은 공공정보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발행사가 특정 주소에서 들어온 토큰은 환매(redeem) 요청을 거부할 수도 있다. 즉, 스테이블 코인은 블록체인에서 기술적으로 이동할 수는 있어도 결국 “현금화(exit)” 단계에서 차단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Hybrid Blockchain Architecture

개인정보·민감 데이터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인가된 금융기관 네트워크)에 기록

토큰 총량·거래 무결성은 퍼블릭 블록체인에 기록

즉, 프라이버시와 투명성, 중앙화와 탈중앙화의 중간 지점을 구현하는 설계

On-chain Compliance

스마트컨트랙트에 동결, 블랙리스트, 한도 제한 같은 기능을 넣어 블록체인 위에서 직접 제어

ex) USDT freeze(address), USDC blacklist(address)

Off-chain Control

발행사가 환매 거부, KYC 실패자 차단 등 현금화(exit) 단계에서 통제

블록체인 외부(법정화폐 시스템 접점)에서 이루어짐


더 나아가 CALM(Capital and Liquidity Management)과 같은 온체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동성과 자본 완충을 자동 조정해 줄 수 있는 모델이나 Programmable AMM과 같은 토큰 발행·상환 과정에서 시장 가격을 자동 안정화하여 페깅(peg) 유지시켜 주는 다양한 기술들이 검토되고 있다.



이러한 하이브리드 블록체인이 일부 순수 블록체인의 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블록체인의 후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것은 후퇴가 아니라 기술이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전환의 과정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에서는 외환 및 자본 흐름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고, 기술적인 방법들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들이 필요하다. 이미 글로벌 주요 국가들은 스테이블 코인을 받아들이고 이를 대비하고 있다. 한국도 이에 발맞춰 기술적 안전장치와 제도적 안전장치를 함께 마련하여 글로벌 디지털 패권 경쟁 속에서 새로운 금융 혁신과 기회를 쟁취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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