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는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셀나무 Feb 06. 2024

예민한 나무늘보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

꽤 오래전으로  기억한다.

같은 또래 집사님들과 ‘곰 같은 아내’와  '여우 같은 아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나는 남편을 잘 다루는 여우과인데 말이야...”

친한 집사님의 말에

 “ 어머, 부럽다. 나는 여우 근처에도 못 가는 곰 과인 거 같은데...”

라고 진심으로 부러워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던 순간 지나가시던 사모님이 한마디 하셨다.

“ 어머, 무슨 소리세요, 에셀나무 집사님은 곰 아니에요. 나무늘보예요”    





"뭐 먹을까?"

" 난 아무거나 괜찮아"

"언제 모일까요?"

"전 대세에 따를게요"

내 의견이라는 게 없다. 친구들은  가장 무난한 성격인 사람을 꼽으라면 나를 지목한다

어려서부터 친언니들과도 친구들과도 싸운 기억이 없다. 평화주의자며 갈등을 못 견디는 나는 내 의견은 없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나를 맞추며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게 편했다.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 성격 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배려의 아이콘으로 살았다. 싫은 반응을 별로 하지 않고 무디다 못해  느리기까지 하니 오죽했으면  나무늘보라는 소리를 들을까. (하지만 그런 나도 주토피아에서 나무늘보 플래시의 모습에선 속 터져 죽는 줄 알았다)    




      

 몇 주 전 우연한 기회로 고민상담을 해주는 남인숙 작가님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선 순간 ' 내가 왜 거기서 나와' 할 정도로  나와 똑같은 유형의 사람이 소개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두 친구가 콘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가는데 한 친구가 자기도 모르게 다른 친구 옷에 아이스크림을 쓱 묻혔어요.

  “진짜 신경 쓰지 마, 나는 진짜 괜찮아”

이렇게 대인배처럼 말하면 진짜 고맙고 대인배 같은 사람 맞아요. 그런데 정말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인간관계를 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친구가 아이스크림을 묻히지 않은 척해요. 왜냐하면 예민한 사람은 상대가 미안해하고 사과하고 이런 감정을 갖는 걸 피하고 싶은 거예요. 웬만한 불편한 일들은 상대방 모르게 혼자 감수하고 크게 마음 안 쓰죠. 그래서 겉보기에는 둔감해 보이는 거예요.-  

   

예민한 사람은 신경이나 사고과정이 예민하고 내향적이라 다른 사람의 반응에 신경을 많이 쓰고 배려하기에 겉보기에는 더 무난하고 둥글둥글한 성격을 보이게 된다고 덧붙이셨다.  


   




 마치 이 씨 성으로 알고 한평생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원래는 강 씨 성이었다고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내가 예민한 사람이었다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 책을 선정해서 함께 읽었는데 거기에서도 예민한 성격에 대해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 있었다.


     

-모든 성향에는 장단점이 있어서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예민함도 단점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점도 있다. 세심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건 공감력과 배려하는 태도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불편하고 갈등 있는 상황을 싫어하기 때문에 양보를 잘한다.......

    


그동안 아이를 향해 엄마를 힘들게 하는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라고 함부로 단정 지으며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나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진짜 예민한 성격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예민한 내가 덜 예민한 아이의 단점만을 바라보며 나무라는 격이었다.  그동안 남편을 탓했건만  어쩌면  예민 기질은 남편이 아닌 내가 물려주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나영교수님은 그런 나에게 한마디 쐐기를 박으신다.



-그러므로 예민한 아이를 뜯어고쳐서 예민하지 않은 아이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다양하고 , 그 다양함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으며 , 그중 장점에만 집중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예민하고 남의 기분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 ‘호구’라고 불리기도 한다. 나의 정당한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나의 배려와 수고를 무료 서비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당한 요구에 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주어야 한다.     


맞다. 내가 이런 훈련을 받았어야 했다.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건지 알지 못 한  채 부모님도 나도 실체를 모르고 이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알 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스트레스를 둔감함으로 감추려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내 마음을 제대로 꺼내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진짜 내 마음은 어떤지 들여다보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주어야겠다. 내 행동들의 근거들을   알게되니 몰랐던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까탈스럽고 예민한 아이라고 치부하며 오해했던  아이에 대해서도 더 정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양육을 할 자신이 생겼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게 육아라고 하지 않던가.

' 그레이스, 네 잘못이 아니야 미안해.'

- 예민한 나무늘보 엄마가.



숨겨진 예민한 사람이 아닌지 체크해 보기

1. 심리적 타격을 받으면 몸이 먼저 아프다.

2. 자기 힘든 이야기를 잘 안 한다.

3. 완벽주의 성향이 있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선미의 현실 육아 상담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