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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Feb 07. 2024

너의 건강한 독립을 응원하며!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를 읽고...

오늘은 작정하고, 우리 집 5학년 올라가는 첫째 아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차분하고 의젓했던 아이라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참 예뻐라 하셨던 아이다.

유치원에서 한 줄 서기를 할 때는, 선생님 대신 맨 앞이나, 맨 뒤에 자리를 배정해 주셨다. 이유인즉슨 초록이가 앞에서 이끌어주거나, 맨 뒤에서 줄을 정리해 주면 아이들의 급식실, 강당 이동이 한결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FM이다 보니 수업태도가 바르고 성실해서, 아무리 옆에서 친구가 재미난 장난을 쳐도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장난기 많은 친구는 항상 짝꿍으로 배치가 되었고, 그로 인해 힘이 들어도 잘 참아내는 아이이기도 했다.


4살 때 같이 간 결혼식에서였다. 연회장에서 엄마를 쫄래쫄래 쫓아오다 사람 많은 곳이라 깜빡 놓쳤고, 울며 당황하기보다 근처에 아주머니께 부탁해 엄마번호로 전화를 해서 다시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 폰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아이가 참 침착하다며, 이런 아이는 처음 본다고 아이에게 기분 좋은 칭찬을 한가득 해주셨고, 아직도 이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무용담으로 자주 입에 오른다.  6살 때는 킥보드를 타고 4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 마트로 심부름을 다녀오기도 했던 아이. 그 당시 첫 심부름은 '단무지'였는데, 냉장고의 높은 곳에 있어 키가 닿지 않아서 자신이 마트 직원에게 부탁해서 단무지를 사 온 이야기를 어찌나 자신감 있게 하는지, 그때의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1학년 입학 후 셋째 날이었다. 학교가 바로 앞이긴 했지만 오늘부턴 학교를 혼자 가겠다는 아들, 엄마인 내가 걱정돼서 안된다고 하니 고집을 부린다. 절대 쫓아오지 말라고 그럼 화낼 거라고 가방을 메고 당당하게 가는 아이는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울리는 알림이 올 때까지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 하교하는 길에 아파트 일 층에서 기다리는 내게, "엄마, 왜 일 층에서 기다려 그냥 집에서 기다려. 내가 집까지 혼자 들어가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단 말이야. 내일부터는 꼭 연두랑, 집에서 있어야 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던 아이였다.


그렇게 아이는 내 걱정보다 더 단단한 아이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비바람이 심한 날엔 마음이 불안해 학교 앞에 우산이라도 가지고 나갈라치면, 우산이 있는데 왜 오는 거냐며 오지 말라고 하던 아이였고, 아침에 비가 쏟아지면 얼른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달콤한 말로 설득을 해봤자 실랑이만 될 뿐, 가방이 흠뻑 젖어도 끝끝내 스스로 걸어가는 걸 택했던 아이. 언제나 내면이 단단해 엄마인 내가 깜짝 놀랄 말이나 행동을 해서 ‘이 애늙은이를 어쩜 좋아.’싶은 나와는 다르게 유난히도 독립적인 아이.


아이가 2학년 무렵이었다. 둘째 아들 유치원을 등하원을 자차로 해주던 시절이었는데, 아이가 학교를 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에 저 멀리서 차 안에서 "초록아" 하고 불렀다. 그랬더니 한번 쳐다보더니 그냥 가는 거다. 뒷자리에 앉은 둘째도 "초록이 형아" 하고 큰 목소리로 불렀다.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는 저 아이. 알면서도 쳐다보지 않는 게 분명했다. "초록아, 좋은 하루 보내" 손을 흔들고 이름을 불러도 모르는 척, 대답 없는 저 아이.

근데, 이 싸한 느낌은 뭐지? 

아, 등교할 때 많은 아이들 틈에서 자신이 초록이가 아닌 척 다른 아이들 틈 속에 묻혀가려는 거구나!

저 멀리서 자신이 아닌 척하는 아이의 모습이 왜 이리 웃기고 재미난 지 한참을 웃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지? 너무 웃겨서 그런가? 난 너무 웃기면 눈물이 나는 습관이 있어, 그날도 그냥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신기하다. 이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눈물이 난다.

'너무 재미있는 일화여서 그래. 다 컸다고 엄마를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그래.' 하고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며칠 전 함께 아파트 도서관 봉사를 하는, 도서 위원님께서 자신이 심리학을 전공하셨고, MBTI로 학위를 따셨다며 재능기부를 해주겠다고 하셔서 재미 삼아 좀 더 자세한 MBTI검사를 해봤다. 검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고, 육아 이야기를 하며 아이 키우는 데 힘든 것은 없는지 아이들과의 기질 궁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다, 첫째 아이의 2학년 때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도 눈물이 났다. 위원님은 바로 "그런데 왜 눈물이 나요?"라고 물어보셨고, "너무 재미난 일화여서 이야기할 때마다 눈물이 나요."라고 대답한 내게, 보통은 재미난 일을 말할 때 눈물이 나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마음속에서는 유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이가 일찍이 독립해 나가는 모습이 아쉬운 건 아니었는지, 그렇게 나는 저 사람 몰라하고 지나가는 아이의 모습에 서운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라는 그 말에 갑자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곰곰이 그때의 기분을 더듬어 보았다. '맞아. 나 우리 초록이가 그렇게 떠나가버릴까 봐 조금은 무서웠나 봐' 하는 걱정되고 슬펐던 기분을,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껌딱지였던 아이라 내 손을 유난히도 꼭 부여잡았던 그 사랑스러운 아이가 너무 일찍 내 손을 놓아버릴까 봐 겁이난 나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너무 재미난 일화야'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는 단단하게 잘 성장해나가고 있었는데, 난 아직 아이의 손을 놓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때마침 쓰는 독서모임을 하며 지나영 교수님의 "본질육아"를 다시 읽게 되었고, 많은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육아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느끼고 반성하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P33. '내 아이를 어떤 성인으로 키우고 싶은가?'

많은 부모가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부모들 말을 들어보면 아이가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많이 말한다. 그다음에 자기 앞가림 잘하는 사람, 돈 잘 버는 사람. 성공한 사람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부모마다 다양한 바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아이의 발달과 성장을 고려했을 때 이 질문에는 정답이 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녀가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립'이다.


건강한 자립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부모로부터의 자립이란, 자기 자신의 책임하에 삶을 건강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며, 동시에 타인과의 상호의존성을 적절히 조절하는 능력도 포함된다. 부모로부터 얻은 가치관, 도덕적 가이드, 자기 관리 능력등이 이에 기여할 수 있다.



P34. "나는 아이들이랑 정말 끈끈한 관계를 갖고 싶어요."

이런 생각으로 애들을 낳아서 자녀의 배들을 줄줄이 내 배 옆에 달아놓으면 어떻게 될까? 서로 부딪힌다. 아이들이 자기 갈 길을 못 가고 부모도 아이도 헤매게 된다. 아이가 스스로 배를 띄워 제 길로 항해해 나가지 못하고 부모 길을 계속 따라가려고 한다거나, 성인이 되었는데도 독립적이지 못하고 의존적이라면 육아의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실패한 육아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궁극적으로 자립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나는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이 또한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만의 배를 띄워 무사히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건강히 자립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만 해도 고등학교는 기숙사가 있는 학교를 가고 싶어 한다. 그곳에서의 재미난 학교생활을 꿈꾸고 있는 아이이다. 여행을 가면, 이곳에서 살면 어떨지, 해외유학은 어떻게 가는 건지 궁금해한다. 아이가 꿈꾸는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크다. 언젠가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날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어느 정도 아이가 커가니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나는 잠재되어 있지만 아들을 잘 키워내고 싶은 욕심도 많다. 어릴 때부터 엉덩이 힘도 좋아 한번 집중해서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세 시간이든 네 시간이든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집중하는 것을 좋아했던 아들을 보면서 '이 아이는 뭘 해도 할 아이야'라는 생각을 했다. 차분히 스스로 해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 자기 미술 작품에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손길은 거부했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스스로 성에 찰 때까지 만지고 마무리해내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 미술학원 선생님도 인정한 뚝심 있는 친구다. 아직 공부를 푸시하지 않았지만 이런 의지를 가진 아이라면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어 자꾸 기대하게 된다. 어느새 내 안에는 있어서는 안 될 욕망이 가득히 쌓이고 또 쌓였다.


작년 언젠가 아이는 잘 키우기 위해서 낳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낳는 거다라는 내용의 지나영 교수님 영상을 처음 접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영상은 내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찾아보는 영상이기도 한데, 내가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날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어떻게 아들을 그렇게 키울 수 있는 거냐는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의 시선들은, 내 자존감을 올려주기에 충분했고 이 단단한 아들이 나중에 대단한 일을 해 낼 것 같은 기대에 찬 희망에 난 아이들을 육아하는데 힘은 들어도 행복했다. 그래서 더 부단히 도 아이와의 잊지 못할 추억을 쌓고, 아이의 정서적인 안정과 부모와 아이의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는 건강한 자립을 위해 아이의 손을 놓아주는 연습을 해보고자 한다.

한 걸음 뒤에서 물러나 내 아이를 온 맘 다해 응원하기만 하면 엄마로서의 역할은 그걸로 되었다.


내가 먼저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우리 아이가 되길 바라는 성인상을 바로 내가 보여주면 된다.
그것은 절대 나를 갈아서 아이의 삶에 바치는 성인상이 아님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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