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비빅’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잔뜩 화가 나있던 나는 아들 주니의 머리를 보고 까무러치듯 놀랐다. 정확히 반가르마를 중심으로 오른쪽만 반삭이 되어있었다. 숙제를 종종 해오지 않는다는 학원 선생님 전화를 받은 터라 들어오기만 해 봐라 벼르고 있던 차에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보자 보자 하니깐 너 진짜!”
거칠게 아들을 붙잡아 소파에 내동댕이치듯 끌어 앉혔다.
지금이라면 그 무섭다는 중2병인가 보다 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엔 그저 막연하게 사춘기라는 말로 뭉퉁그려 치부하던 시절. 사춘기에 대한 이해도 없던 무지한 엄마는 순종적이고 모범생이었던 아들이 왜 이렇게 다른 사람처럼 바뀐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저 이상하게 변해버린 아들의 모습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더 걱정했던 한심한 엄마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나는 정확하게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교회에서는 믿음 좋은 열심 있는 집사님으로 그리고 일터에선 누구보다도 책임감 있게 일하며 나름 인정받고 있었다. 모든 열정을 일터와 교회에 쏟고 가정에서는 더 이상 에너지가 없어 가족들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인정해 주는 곳에선 목숨을 바칠 듯 충성했고 늘 가정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내가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이 나의 일을 대신해 주신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살았다. 내가 해야 할 책임까지 주님께 맡기며 말이다. 교회에서 하는 사역은 귀한 것이고 가정일은 사소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런 것이 믿음 좋은 생활인줄 착각하며 주님과 상관없이 열심히 '내가복음'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생활을. (그게 다 상처로부터 온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담임 목사님께 신학 공부를 해서 심방 전도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을 정도로 교회 사역에 열심을 다했고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들이 변했다. 모범생 아들이. 소위 말하는 날라리라 불리는 아이들과 같은 희한한 복장으로 교회에 나타나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왜 주니는 이렇게 집안 망신을 시키고 있지?
몇 달 전, 단짝 친구 두 명이 전학을 갔다는 얘기를 주니에게 전해 들었다. 학폭으로 전학 온 3학년 형에게 친구 둘이 학교폭력을 당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3학년 형은 일주일 정학처분을 받았고 그렇게 마무리는 되었다고. 그런데 보복이 두려워 피해자인 친구들이 오히려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고 평소 말도 잘 안 하는 아들이 자기 전 침대에 앉아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난 주니의 마음상태를 헤아리지 못하고 아들과 상관없는 친구들의 이야기로만 한정 지어 생각했다.
“이런, 어떡하니, 다른 친구를 사귀어야겠네”
라는 말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의 이야기는 그대로 기억 속에서 잊혔다.
그러고 나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범생 아들 주니가 변해갔다. 교복 바지를 줄여 입고 단정했던 머리는 어떻게 하면 더 특이하게 하고 다닐지를 연구하는 사람처럼 이상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공부도 점점 멀리하며 학교에서 노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못마땅하게 변해가는 아들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잔소리가 쉴 새 없이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랬던 차에 오늘 헤어스타일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 이런 건가? 눈이 뒤집힌다는 게 이런 건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들어오는 아들을 그대로 멱살을 잡아 소파에 던지고 악을 악을 쓰고, 모진 말을 하며 입에서 불이 나가고 날카로운 화살들이 아들에게로 뿜어져 나갔다.
‘하지 마, 지금 주니 아프다고 하는 거야’
나를 말리는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
지금... 아프다고... 하는 거라고요?
저... 모습이요?
단 한 번도 맹세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머리를 심하게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이 왔다.
아들에게 불을 뿜고 화살을 날렸던 그 악에 받친 에너지가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저앉았다. 눈물이 통곡이 되더니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조여오며 아파왔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더럭 겁이 나며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려왔다.
이런 이중인격 엄마 때문에 아들 주니가 교회와 하나님을 멀리하면 어떡하지?
난 그동안 내가 죄인이란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깊이 동의되지는 않고 있었다. 죄인은 죄인인데 조금 덜 한 죄인정도? 저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있잖아요, 아시죠 주님? 이러면서 말이다.
그때는 몰랐다. 성냥 한 개비의 작은 불이나 산 전체를 뒤덮는 불이나 모두 같은 불인 것을.
그런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죄인인 것을. 나도 환경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내 안에 있는 죄성이 뛰쳐나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순간 너무나 부끄러워 정말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들 주니가 울먹이며 말했다.
“ 엄마, 나 친구들이 학교를 떠난 날 너무 무서웠어요. 그날 아무도 없는 집에 와서 무한도전 틀어놓고 울었어요......”
'미안해. 아들
엄마가 미안해.
우리 아들, 얼마나 무서웠니? 그리고 얼마나 외로웠니? 그래서 너를 보호해 줄 친구들을 찾았구나. 쎄 보이고 강해 보이는 친구들을.
정말 미안해. 착하고 마음 여린 우리 주니, 엄마가 잘못했어. '
실제로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아들 옆에 있을 용기가 안나 집을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