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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셀나무 Mar 03. 2024

나에게 들려주신 음성(1)

-감사해요 성령님!

“근데 왜 이렇게 목소리가 작냐? 남자답지 못하게......”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은 대학 선배를 우리 집에 데려와서  부모님께 선 뵈던 날이었다. 가뜩이나 소심한 남자친구는 불편한 자리어서 그런지 더욱 안절부절 위축된 모습이었고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라고 흔히들 당당하게 하는 말은 언감생심 입밖으로도 꺼내지 못한 채 부모님이 물어보시는 질문에만 겨우겨우 진땀 흘리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데이트를 하면서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 주문을 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어 사장님을 불러야 하는 건 늘 내 몫이었다. 작고 얇은 선배의 목소리는 왁자지껄 손님들의 소음에 묻혀 사장님께로 도달되지 못하고 중간 어디쯤에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으니까.     



남자친구를 배웅하고 들어온 나에게 탐탁지 않다는 듯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딸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남자라 반대는 않으셨지만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나 역시 우려했던 부분이었다.      

 

   

모두의 축복 속에 선배와 결혼을 했다.

당시 나는 교회를 나와 방황하던 시기였고 남편은 아예 교회도 안 가본  무교였다. 행복한 신혼이었지만 교회를 떠났다는 죄책감과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났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맛있는 거 먹고 웃고 떠들며 충분히 행복했는데 돌아서면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상하게 교회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혼을 하며 한 가지 다짐을 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남편의 작은 목소리를 크고 명료한 목소리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친정아버지의 일침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에게  전달이 안 되는 작은 목소리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여겨졌다.

‘그래, 남편의 미래를 위해서도 내가 도움을 좀 줘야 하겠어’

라고 결심한 나는 그때부터 일부러 남편이 무슨 얘기를 하면

“ 뭐라고? 잘 못 들었어. 좀 크게 말해봐”

“ 안 들려, 뭐라고? ”

멀리서 무슨 말이라도 하면 못 들은 척하기도 하며 계속적으로 크게 말할 것을 요구하며 나름 훈련을 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 다시 크게 좀 말해봐”

 그날 역시 남편을 위해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바꿔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남편을 다그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는 음성이 들렸다. 귀로 들린 게 아니라 뇌로 들렸다고나 할까?마음으로 들렸다고나 할까?



‘너의 남편은 집에서도 맘 편히 쉴 수가 없구나.....’     



순간 너무 깜짝 놀라 온몸이 굳었고 소름이 돋았다.

교회는 다니고 있지 않았지만 누구의 음성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렇군요.

제가 정말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어요.

죄송해요 성령님, 그리고 감사해요.   

  

회사생활하며  누구보다도 힘들어했을 남편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본인이 더  고치고 싶겠지.

그날부터 더 이상 남편의 작은 목소리는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편의 목소리를 지적하지 않았고 나만의 훈련은 그대로 끝이 났다.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닌데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니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다정하게 알려주시는 성령님이 너무 감사했고  믿지 않는 남편까지도 사랑하시는 게 느껴져 더더욱 마음이 뭉클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더 이상 방황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 교회에 등록을 했다. (남편은 본인에게만 같이 다니자고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교회에 다니라며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래 이 사람도 언젠가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거야.

혼자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마음은 뿌듯했고 죄책감이 사라져 정말 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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