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셀나무 Jun 29. 2024

빵빵하게 나를 위로하는  내 사랑

나의 소울푸드는 바로 너야!

어릴 때 엄마는 종종 집에서 카스텔라를  만들어주셨다.

상자처럼 생긴 빵틀에 반죽을 부어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기다리면 포실포실 예쁜 노란색 카스텔라가 두둥 만들어졌다. 흐트러질까 조심조심 꺼낸 뒤 엄마는 꼭 실로 잘라주셨는데 방금 만들어진 따뜻하고 포근한 카스텔라는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는 꿀맛이었다.   먹을 때마다  나는, 다음 언제 또 먹을 수 있을까를 늘 궁금해하는 아이였다.    



      

4학년 때로 기억한다.

학교 갔다 돌아와 배고픔을 달래려 부엌찬장을 뒤지고 있는데 선반 위에 누런 종이봉투가 올려져 있었다. 맛있는 냄새에 조심스레 봉투를 열어보니 먹음직스러운 동그란 도넛 몇 개가 들어있었다. 부스럭 소리에 안방에 계시던 엄마가 나오시더니 화들짝 놀라시며 손에서 봉투를 낚아채셨다.

 “ 큰언니 밤늦게 공부할 때 줄 간식이야”

 “ 엄마, 하나만 먹으면 안 될까?”

 “ 작은 거라 안돼. 언니 먹기도 모자라겠다”

입시를 앞두고 학교에서 공부하다 늦게 오는 큰언니만을 위한 특별한 간식. 집에서 만든 카스텔라가 아닌 정식 빵집에서 사 온 도넛이었다. 6남매에게 줄 만큼의 빵을 살 수 없는 넉넉지 않은 형편인건  알겠지만 한 개도 나에게 허용되지 않는 게 너무 서운하고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갓 기름에서 튀겨 나와 터질 듯 빵빵해진 반지르르한 갈색빛 동그란 도넛. 보석처럼 반짝이는 하얀 설탕으로 온몸을 휘감은 고고한 자태에 마음을 뺏겼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스락 소리가 나며 쫀득하게 입안으로 퍼져나갈 고소하고 쫄깃한 도넛이 눈앞에 아른거려 그날은 잠도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소원은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돈 벌어  맛있는 빵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 그리고 주방 선반 위에 늘 먹음직스러운 빵이 준비되어 있는 집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살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선반 위에 아니면 식탁 위에 놓여있는 빵을 보면  늘 안정감과  뿌듯함이 몰려왔다.  



         

“ 2번의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했네요. 임신성 당뇨입니다”

이런 청천벽력 같은. 내가 임신성 당뇨라니. 그 뒤로 의사 선생님이 뭐라 뭐라 하셨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식단조절, 일단 빵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노산인 것도 서러운데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는다니......

충무로까지 걸어 나와 무슨 정신으로 버스를 탔는지 모르겠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지방에서 근무 중인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결과가 궁금했는지 다짜고짜

“ 어떻게 됐어?”

“ 나, 임신... 성 당뇨래... 흑...”

“ 의사 선생님이 뭐....... 뚜뚜뚜....... 툭”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설움이 북받치고 눈물이 쏟아져 나와 도저히 통화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안되었다. 전화를 끊고 사연 있는 여자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버스에 앉아있다가 불현듯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선교에 내려 나폴레옹 빵집에 가서 5만 원어치의 빵을 샀다. (지금으로 치자면 족히 십만 원은 넘을 듯하다) 빵과의 이별식을 위해서라면 5만 원도 아깝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에 빵을 펼쳐놓고 성스럽게 고이고이 하나하나씩 집어 정성스럽게 먹으며 이별의식을 치르고 있는데, 띵동 띵동 세상 다급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보니 바로 위 셋째 언니였다.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숨을 몰아 쉬며 다짜고짜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버스 안에서 울음으로 마무리된 통화가 내심 마음에 걸렸던 남편이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으니 빨리 집에 좀 가보라고 시킨 거였다. 집안에 들어와 거실에 널려진 빵들을 보더니 언니는 흠칫 놀란 듯했으나 애써 감추며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노심초사 연락을 기다리는 남편에게, 집에 잘 도착했고 좀 충격은 받은 거 같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때 언니는 말은 안했지만 사실은 많이 놀랐었던 것 같다. 그날 빵을 입에 물고 문을 열어주던 내 모습이  심히 공포스러웠다고, TV에서 공포 비슷한 거라도 나오면 아직까지도 어김없이 그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애정하는 나폴레옹  사라다빵과 밀곳간 소금빵




             

 빵이 주는 위안은 남다르다.

‘빵’이라는 이름부터 뭔가 꽉 채워진 느낌이고 소리 내보면 발음이 참 예쁘다. 지나가며 유리창 너머로 빵집에 다양한 빵들이 가득한 것을 보면 사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고 빵들이 별로 없이 텅 비어있는 빵집 선반을 보면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유난히 지치고 피곤한 날 빵집에 가면  각양각색으로  풍성하게 부풀어 있는. 말랑말랑 포근한  빵들이 빵빵하게 나를 마음껏 위로해 준다. 참 잘 찾아왔다고, 배부르고 맛있게 먹으며 피로를 풀라고. 그래 인정. ‘빵’ 너를 나의 소울푸드로 인정한다.  



        

휴가를 가거나 조금 멀리 낯선 지역에 가게 되면 숙소에 이어 다음으로 검색해 보는 것이 주변 유명 빵 맛집이다.  ‘빵지순례’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빵지순례를 하고 있던 셈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작된 지독한  빵사랑은 나의 소화기관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타로스토리



매거진의 이전글 김밥에 마요네즈 뿌려봤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