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올드보이 속 군만두처럼 삼시세끼 계속 같은 음식만 먹는다면 당신은 어떤 음식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올랐다. 돈가스, 순댓국, 탕수육, 빵. 모두 좋아하지만 삼시세끼 내내 먹는다 생각하니 일주일이 되기도 전에 질릴 것 같다. 하나씩 탈락했고 끝까지 남은 것은 김밥이었다. 만약 내 소울푸드가 곱창이라면 조금 곤란했을 것이다. 곱창은 혼자 먹기가 쉽지 않고 어딘가에 가야 먹을 수 있다. 없어서 환장한다는 말이 나오는 음식이지만 여럿이 먹을 때다. 두 끼만 연속해서 먹어도 한 끼쯤은 건너뛰고 싶을 것 같다. 김밥은 얼마나 만만한가. 어느 곳에 가서도 주변을 뱅 돌아보면 김밥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렴한 가격은 덤이다. 여차하면 냉장고 속 재료로 집에서 싸 먹을 수도 있다. 예전에 점심 메뉴로 일주일정도 먹어봤는데 질리기는커녕 매일 김밥 사러 가는 길이 더 즐거워지는 것이 아닌가. 그 때 확신했던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소울푸드구나.
김밥은 언제나 나에게 안온함을 가져다준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한참 머리가 아프도록 생각해 봐도 고르지 못해도 괜찮다. 김밥이라는 마지막 보루가 있다. 언제 먹어도 맛있고 비교적 쉽게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다는 것은 마음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세상이 내게 등을 져도 누가 뭐래도 끝까지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든든함과 흔들림 없는 편안함. 김밥은 내게 그런 존재다. 김밥은 마지막 모습까지 완벽하다. 남은 김밥이 냉장고에 있는 것은 막 김밥을 샀을 때와는 또 다른 설렘이다. 김밥 전을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 중 한 명은 그냥 김밥보다 김밥 전이 좋아서 김밥을 사서 바로 냉장고에 넣기도 한단다. 김밥을 능가하는 김밥 전만의 매력이 있다. 고운 달걀물이 주는 고소함과 뜨끈해진 야채와 밥이 잘 어우러진다. 그냥 김밥과는 180도 다른 맛이다. 갖가지 재료가 들어가 화려해진 요즘 김밥이나 생야채가 잔뜩 들어간 김밥보다 어릴 적 엄마가 싸주시던 집 김밥 같은 김밥이 더 좋은 이유다. 김밥 전까지 길게 생각했을 때 말이다. 물론 김밥 전을 위해 부러 남겨야지 김밥이 남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예전에 자주 갔던 김밥집에는 마요네즈가 비치되어 있었다. 주력 메뉴였던 참치김밥에 취향껏 마요네즈를 뿌려서 먹으라는 것이다. 김밥 말던 요리사님의 아이디어였는지, 김밥 먹던 손님의 조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양배추에 버무리거나 구운 오징어를 가볍게 찍어 먹는 용도 정도였던 마요네즈를 음식에 뿌리라니 처음엔 입꼬리를 내려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꽤 정색했던 것과는 다르게 바로 시도해 본 것은 도전정신이 강해서였는지, 소울푸드였던 김밥에 대한 특별대우였는지 알 수 없다. 하여튼 기억나는 것은 첫입부터 반해서 환호성을 질렀던 것 같다. “그래, 이 맛이야!”
까르보나라 같은 크림파스타를 좋아하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카페에 놓여있는 1회분 설탕을 입에 털어 넣으며 기분 전환했던 시절이라 그랬던 것인지 보다 자극적인 맛이 입에 척 붙었다. 느끼한 마요네즈가 참치김밥의 귀밑거리를 잡고 풍미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느낌이랄까. 비명이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행복한 비명이지만. 입안 가득 퍼지는 크리미한 느끼함이 마음 어딘가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쓸쓸하게 불어 들어오는 헛헛함을 막아주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기분이 울적했던 날에는 마요네즈를 더 뿌많이 렸던 것 같기도 하다. 친구와 마주 앉아 비싸지 않은 돈으로 산 김밥에 마요네즈 한 줄 얹은 것이 마치 고급진 별미를 먹는 것처럼 호들갑 떨며 먹었다. 날 좋은 때는 김밥을 사 들고 나가 풀밭에 앉았다. 따스한 볕을 맞으며 마요네즈가 뿌려진 김밥 하나를 입에 물고 친구와 깔깔대며 수다 떨 때면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사람이 되었다. 소울메이트와 함께 소울푸드를 먹었던 내 영혼이 따뜻했던 기억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날 먹었던 엄마표 김밥. 다진 소고기를 듬뿍 넣고 참기름 코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던 김밥. 보물찾기를 한바탕 하고 나서 고파진 배를 채우려 유원지 여기저기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자리잡고 도시락을 꺼낸다. 요즘처럼 화려한 모양을 내는 것 없이 대부분은 비슷한 생김새의 김밥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각자의 김밥을 하나씩 나누어 맛본다. 들어가는 재료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김밥의 맛은 모두 달랐다. 엄마의 손맛에 길들여져 엄마 김밥이 내 입맛에 제일 맛있었을까. 제일 맛있는 김밥인데 친구들과 나눠 먹어 내 입으로 들어가는 양이 적어져서 어린 마음에 어찌나 아쉬워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열심히 나눠줬던 것은 엄마의 김밥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참 지났는데도 방금 싼 것처럼 밥이 따뜻했다고 기억하는 것은 소풍날이면 훨씬 분주하던 엄마의 모습이 투영돼서 아닐까. 김밥 싸는 엄마 옆에서 꼬투리도 집어 먹고 막 썰어둔 김밥도 집어 먹었을 텐데 저녁이면 또 김밥을 먹고 싶었다. 도시락에 쌀 수 없던 엄마표 어묵국을 곁들이면 이보다 완벽할 수 없는 한 상이었다. 그때부터 김밥은 이미 나의 소울푸드였던 것 같다. 김밥과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 덕분인지 지금도 한 입 꽉 차게 김밥을 넣고 오물거리면 마음인지 기분인지도 꽉 차오르는 기분이다.
요즘은 김밥 지도가 있을 정도로 김밥 전성시대다. 심지어 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냉동 김밥으로 시작된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고 한다. 김밥 애호가로서 사람들에게 김밥이 사랑받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불고기, 김치, 치킨을 능가하는 한국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김밥의 매력과 장점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 다양하고 누구의 입맛에도 맞출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밥과 반찬이 한곳에 모여 있어 영양가 높은 한 끼다. 한입에 먹을 수 있어 간편하고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어 편리하다. 떡볶이와 잘 어울리고 라면과도 잘 어울리는 분식계의 만능 메뉴다. 김밥 기계도 있을 정도로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누구든 잘 만들 수 있다. 나의 소울푸드가 세계인의 소울푸드가 되기를 꿈꾼다. 각자의 사연과 추억이 한데 모여 옆구리 터지는 곳 없이 잘 말렸으면 좋겠다. 맥도날드 감자튀김, 스타벅스 커피처럼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금방 찾아 먹을 수 있길 소망한다. 어느 곳에 여행을 가도 나의 소울푸드를 쉽게 만나 볼 그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