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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애리 Oct 27. 2019

하소연하지 않는 방법

지나친 불평불만은 당신의 인간관계에 해롭습니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인간 관계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하소연을 하곤 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부당하고 못되게 굴어' 같은 불평이나 '그 사람 하는 짓이 웃겨'하는 험담까지. 나는 친구들에게 해결책을 의논하는 것 같이 이야기를 했지만, 정말은 불평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불평을 하는 동안 나는 작은 일에도 더 화가 났고, 친구들은 해결책을 찾을 생각은 안 하고 불평만 하는 나에게 화가 났다는 것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나를 아껴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할 정도로 그들은 내 이야기게 공감을 해주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불평을 들으면서 그런 인간관계라면 벗어나는 게 좋겠다, 라거나, 사람들에게 좀 더 강하게 나가야지, 하는 충고를 해주곤 했다. 물론 나는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해결책을 금방 따를 수도 없었고, 또 그대로 하기엔 너무나 소심했다.




어느 날, 나는 한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손에 박힌 작은 가시에 호들갑을 떠는 순간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동안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육아와 가사에 무심한 남편 때문에 우울함을 겪고 있었고, 또 한 명의 친구는 실패한 연애로 인해서 고민하고, 또 한 사람은 직장 문제 때문에 고난을 겪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내 문제들만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아무리 친구들이 내 불평에 익숙해졌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내 이야기만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불평만 해대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친구들의 인생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삶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 싶었다. 불평을 하는 한 나는 절대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에서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내 삶에 대해서 하소연하기를 멈추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그것은 자기 연민을 멈추고,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끊임없이 불평을 해대던 시궁창에 내가 사실은 속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행위이고, 삶이 별 것 없다는 것을 깨닫는 행위이다. 어떤 경우는 내 삶의 근간을 흔드는 것처럼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환상에 기반해서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이유를 찾곤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소연하고 불평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하소연을 끊었고, 그런 다음 하소연 금단증상에 시달렸다. 사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정신적 고통 때문에 하소연을 해댔고, 하소연을 계속 하니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은 못했다. 그러니 하소연을 안 하다 보니 금단증상에 시달릴 수밖에...


불평을 하지 않고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 문제를 외면하려고도 해보았다. 여행을 가기도 했고, 취미생활에 푹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노트에 쓰기도 했고, 애매모호한 문구를 써서 페이스북에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사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의 일부도 하소연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말 대신 글로 불평하고 싶었다. 그런데 불평을 하는 버릇이라는 것이 글을 쓴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이번에는 친구들 대신에 심리상담사를 찾아가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도 내 하소연을 잘 들어주긴 했지만 심리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더 들어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심지어 노트도 하면서 내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을 던지고 더 말해보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전문가에게 하소연과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문제를 외면하기도 하고, 글로 하소연하기도 하고, 심리상담사에게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가진 문제라는 것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 있었다면, 애초에 나는 불평불만과 하소연을 늘어놓는 대신에 그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나는 그 수많은 문제들에 치여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갔다. 어쩌면 그 당시 불평하고 하소연하는 행위는 이미 피폐해진 내 정신상태를 정상으로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뒤로 몇 번의 고통스러운 에피소드를 겪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나는 조금씩 회복이 되어 갔다. 그리고 정신을 추스르면서 서서히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하소연을 하는 행위도 자연히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사실 살아가는 것은 별 것이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고, 매슬로우는 타인에 대해 인정을 받고, 자아실현을 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그래프로 그리면서 인간이 뭐 특별한 존재인 양 꾸미기도 했지만, 사실 인간은 체세포와 신경계로 이뤄진 유기체일 뿐이다. 인간은 동물처럼 먹고, 싸고, 욕구를 채우며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나에게 도움을 준 전문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자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조언에 따라, 매일 먹고 자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일상생활이 궤도에 오를 즈음, 하루하루 밥해먹고 신경 써서 일찍 잠자리에 들고 주말에 운동을 하려고 신경 쓰는 동안 머릿속에서 하소연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나는 하소연을 늘어놓는 일을 그만두고 나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전화통화를 할 때면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내 삶에 대해서 구구절절 늘어놓는 대신 그들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내 친구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 역시 늘 똑같은 일을 하소연하고,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정작 삶을 바꾸기는 두려워하는 것이 나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은 거의 다 비슷하다. 내가 삶이 힘들다고 징징거렸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게 분명하다. 사실 우리 인간이 하는 행위란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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