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농업혁명 만큼이나 되돌이기 힘든 관계탐닉에 대해서
인간관계 다이어트란, 소속된 모임만 수십개가 넘어서 매일 같이 쫒아다니는 사람에게만 필요한게 아니다.
나같이 혼자 있기 좋아하고 친구를 많이 만들지 않으며 사람이 많은 술자리에서 피로를 느끼는 사람에게도 이따금씩 관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만약 문어발 같은 인맥을 쌓았다고 해도, 본인이 균형있게 그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다이어트가 필요없을 것이다. 정작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은 나 같이 인간관계에 끌려다니거나 거기서 피로를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리 친구를 많이 사귀는 성격은 아니었다. 활발한 성격도 당연히 아니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 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글을 배우자마자 나는 내 성격엔 책읽기가 가장 좋은 취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뒤로 나는 수업시간에 떠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책을 읽어서 벌을 서는 학생으로 자라났다. 당연히 친구는 단짝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이런 성격은 대학교까지 이어져왔다. 나는 대학이 요즘처럼 취업준비기관으로 변하기 전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할수 있는 마지막 세대였는데, 동아리방이나 과방에서 들락날락하는 사람들과 만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나 밤늦게까지 술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참을 수 없이 권태롭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아리나 학과 모임 대신에 연구자 모임에서 기쁨을 찾으며 대학 생활을 보냈다.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도 딱히 변하는 것 없었던 은둔가였던 내가 어느순간부터인가 인간관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잠깐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을 즈음이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현생 인류인 사피엔스가 농업혁명으로 오히려 삶이 더 비참해졌다고 한다. 노동시간은 길어졌으며, 거기에 비해 영양상태는 더 나빠졌고, 군집생활로 질병이 창궐해서, 결론적으로 삶의 질이 하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피엔스가 농업혁명을 한 번 시작하자 그 선택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점점 확산되어서, 이제는 누구도 농업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내가 딱 그 현생인류 같다. 해외생활과 오지생활(시골에서의 삶이 그렇다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다)을 거치면서 나는 타인과의 교류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모임을 갈구하게 되었는데, 한번 그런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자 나는 농업혁명을 시작한 우리의 사피엔스처럼 다시 조용한 은둔가의 삶을 되돌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계속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시골에서 한 무리의 친구들을 만났던 건 참으로 행운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외에 소위 쓸데없는 인간관계도 함께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 춤을 좀 좋아했기에 관련 동호회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차를 마셨으며, 대화를 이어갈 하나의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것은 인맥이야'라고 생각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했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서 그들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 만들수록 나는 더욱 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 채울수없는 탐닉이었다.
게다가 또 하나의 문제는 한동안 내가 마음이 허전해진 터라 좀 복잡한 연애행각을 벌이기도 했다는것이다. 사랑을 하면 건강마저 좋아진다고 했는데, 내가 했던 연애는 사랑이 아니라 건강까지 망치는 그냥 의미없는 연애였다. 정신적으로 공허한 사람이 사랑을 어떻게 하겠는가. 결국 나는 평일 늦은밤의 데이트와 그로인한 피로를 느끼며 하루종일 핸드폰을 옆에 두고 연락을 주고받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냥 연애였고, 솔직히 말하면 피곤하기 짝이 없는 '연애들'이었다.
의미없는 연애란 정말로 건강에 해로운 것이다.
내가 만나고 있던 사람 가운데에는, 지난 겨울부터 친구처럼 지내왔지만 그쪽에서는 연애라고 생각하고 있는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드는 A씨도 있었다. 요즘에 그걸 '썸'이라고 부른다는 건 알지만, 사실 내 나이의 관계는 한참 발랄한 20대의 '썸'과는 다른 법이다. 관계에 대해 서로 동의도 안해놓고서 자신이 독점적인 권리라도 가진 듯 구는 A씨에게 나는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는 현재 한국의 제도권 하에서 결혼을 할 생각도 없었고 A씨와 애인이 될 생각은 더더욱 없었으면서, 심지어 그 사람이 자주 애인이 하는 행동을 하고 나는 그것에 대해서 선을 긋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계속 관계를 유지해왔다. 단순히 A씨가 나에게 '무해'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 사람과 연애를 해도 괜찮으리라는 엄청난 착각까지 하면서 관계를 끊지 못하고 이어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4월에 되자 본격적으로 그 관계를 하나, 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 봄, 나는 A씨와의 관계를 포함하여 나에게 사실은 유해했던 연애들도 정리해버렸다.
흔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만이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려고 든다고 한다. 나도 자존감이 낮아졌던 걸까? 그저 타인들 속에 있는 나 자신을 통해서, 내가 지금 이 순간,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걸까? 생활 속에 타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내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고 착각했던 걸까?
지난 4월 별로 즐겁지도 않은 데다가 에너지만 빨아먹는 연애행각을 차례로 중지하고, 쓸데없이 참여해온 모임이나 의무적으로 이어온 관계들을 정리하자 나의 저녁시간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농업혁명을 시작한 뒤 '아, 망했다' 생각을 했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미 삶의 방식이 농업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관계 탐닉증에 빠져든뒤로 '아, 망했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제 와서 다시 조용한 삶으로 되돌아갈 순 없었다. 나는 농업혁명을 시작하기 위해서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뒤바꾼 사피엔스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기쁨을 얻는 사피엔스종이 아니었던가.
나는 혼자 동떨어졌다는 고립감과 불안감을 느꼈다. 이따금씩 또 쓸데없는 모임에 나가거나 별로 달갑지 않은 사람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결국 자괴감을 느끼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그 관계 속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모임이나 초대한 사람에게도 실례가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으로, 원칙을 세웠다: 1. 의무적으로 만난다고 느끼는 사람과는 만나지 말것. 2. 쓸데없이 불러내는 사람에게 답하지 말 것.
피곤한 관계를 의무감으로 지속하기에 내 인생은 너무나 짧다.
요즘 나는 주말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 쓸데없는 관계와 쓸데없는 모임은 나가지 않는다. 물론 한동안의 고립감과 허전함, 공허함 같은 감정들이 나를 지배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관계 탐닉이라는 거추장스런 옷을 벗어던지면서, 오히려 인간관계가 더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초대와 힘빠지는 인간관계를 멀리하고나자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심지어 체력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평소에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를 푸념하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그냥 즐길 수있게 되었다.
아직 6월이 다 지나지 않았다. 내가 시작한 인간관계 다이어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른다. 사피엔스처럼 결국은 농업 이전의 단계로 영원히 되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인간관계 다이어트를 계속하고 싶다. 넓은 탐닉보다, 적지만 알찬 관계들을 즐길 때 더 행복하니말이다. 어쨌거나 되돌아갈수 없어서 망했다면, 거기서 즐거움이라도 찾아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