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라는 말은 싫다. 다 최중이 되면 안 되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입니다. 누구나 최고가 되기를 꿈꾸는 한국 사회에 일침을 가한 말로 오랫동안 두루 회자되었으면 하는 말입니다. 누구보다 저처럼 10대를 둔 부모들이 꾸준히 되새기면 좋을 것 같네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이 치열합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지요. 좋은 학벌에, 높은 연봉, 고가의 부동산과 화려한 인맥, 이런 것들을 갖춰야 여유 있는 삶, 인정받는 삶, 행복한 삶을 살고 그렇지 않으면 루저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죠. 그래서 끝없이 경쟁합니다. 그 시작은 10대부터죠. 일단 좋은 학벌 만들기부터 시작하니까요.
하지만 명문대학 들어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구가 줄고, 대학은 정원 미달이라는데 무슨 소리냐고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명문대학 정원은 고작해야 2만여 명. 아무리 인구가 줄어도 여전히 뚫기 어려운 철옹성 같죠. 한 해 동안 태어나는 또래가 25만에서 30만 정도라고 가정하면, 적어도 10:1이 훌쩍 넘는 경쟁을 뚫어야 합니다. 1만 성공하고 나머지 9는 중간이나 바닥을 치는 것이죠.
그러니 비율로 보면 첫 등판 때부터 승자보다 패자가 훨씬 많은 구조인 셈이지요. 그리고 그 1이 되기 위해 10대들은 경쟁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경쟁에 내몹니다. 이게 시작입니다. 경쟁의 레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경주는 끝나지 않습니다. 화려한 스펙, 일류기업, 최고의 인맥을 위해 경주마처럼 내달려야죠. 그런데 경쟁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성공한 이들보다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 가득해 보입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어쩌면 최고를 쫓는 사회적 분위기는 기득권을 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일종의 프레임이자 가스라이팅일 수 있습니다. 사실 최고는 극히 일부만 되고, 절대다수는 최고가 될 수 없으니까요. 기득권을 쥔 사람들이 자신들을 최고라고 치켜세우고, 나머지 사람들을 루저로 낙인 찍으며 최고를 선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프레임을 미리 짜놓고 보통 사람들에게 기회비용을 치르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10대들을 둔 부모들은 불안합니다. 폭등하는 집값, 청년 실업, 4차 산업혁명, 저출산 고령화 등 10대들이 살아갈 세상이 녹록치 않을 것 같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고라는 프레임에 쉽게 현혹당합니다. 어떻게든 최고가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원과 과외, 독서지도, 입시 컨설팅 등 온갖 좋다는 것들을 동원하고, 10대들의 학업을 위해서라면 번듯한 직업도 그만두고 자녀에게 매달리는 열혈 부모도 있죠. 최고를 위해 기회비용을 치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명문대 출신에 부와 명예를 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단지 최고라는 허구의 서사가 매체에 자주 노출되어 착시를 줄 뿐. 그리고 꼭 그렇게 살아야 만족과 행복이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격렬한 경쟁 속에 마음을 다치거나 상처를 입은 10대들이 주변에 적지 않죠.
이런 점에서 ‘최고라는 말은 싫다. 다 최중이면 안 되냐’는 윤여정의 소감은 최고라는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을 구원하는 목소리 같았습니다. 특히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가장 많이 받으며, 그렇지 못해서 상처받았던 10대들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말입니다. 최고는 최선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최중이 최선은 아닙니다.
최고와 최중이 결과라면 최선은 과정입니다. 그러니 최고가 아닌 최선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최선을 추구하다 보면 최중이 되기도 하고 최고가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최고를 미리 정해두고 달리다가는 낭패와 좌절을 겪을 여지가 높죠. 그저 최선을 다하면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최고에 대한 강박을 지니면 자기부정과 낮은 자존감으로 상처 입을 뿐이죠.
그럼 최선은 뭘까요? 최선은 무한경쟁을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탈이 나기 마련이죠. 목표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잠을 포기하고, 관계를 포기하고, 사랑을 미뤄둔 채 온갖 우울과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을 희생하지 않으며 주어진 상황과 여건 속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0대들은 몸과 마음의 변화로 최선을 다하기에 다른 세대보다 불리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아주 드라마틱해서 '프로그램이 엉켜버린 컴퓨터'와도 같습니다. 아무리 불필요한 파일을 지우고 휴지통을 비워도 효율이 잘 오르지 않죠. 게다가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가 용량이 큰 ‘최고’의 프로그램을 돌리려고 하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요.
그러니 무거운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보다 10대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이해하는 게 먼저일 것입니다. 무리하게 최고를 요구해서 스트레스를 주기보다 10대들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이해하고, 10대를 배려하는 게 필요하지요. 결과가 최고든, 최중이든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 그것이 부모로서의 최선이겠죠.
부모의 하루 일과표와 자녀의 하루일과표를 비교해봐요. 누가 더 여유로울까요?
자녀는 어디서 주로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저는 가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데이트하면서 물어보죠.
그럼 이야기해주거든요.
오늘 하루 자녀에게 일어난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뭘까요?
공부는 아닐 걸요.
자녀의 성격, 취미, 사회생활을 참 몰랐던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