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10대의 부모들에게
큰딸이 중학교 첫 시험을 본 뒤였을 것입니다. 성적을 받아든 나는 실수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기대보다 낮았던 성적에 그만 짜증을 냈던 것입니다. 꾸중을 들을까 마음을 졸이던 딸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았죠. 딸은 화를 내더니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긴장과 스트레스로 얇은 유리그릇처럼 위태롭던 딸의 마음을 그만 깨뜨린 것입니다.
‘뭘 잘했다고 화를 내.’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며 얼마간 냉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고 마음이 진정되자 애가 한없이 안쓰러워지고 내가 참 잘못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럴 때 딸에게 용서를 비는 비장의 무기는 뭘까요? 다른 건 없습니다. 자존심을 바닥에 내던지고 1분이라도 빨리 ‘미안해’라는 말을 진정성 있게 하는 것이죠. 더불어 두 팔 벌려 포옹하는 것입니다. 딸은 새침데기처럼 입을 씰룩씰룩거리다가 결국 품에 안겼지요. 그럼 그걸로 냉전은 끝.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하면 화해는 일단 성공이죠.
물론 평상시 사이가 좋지 않으면 포옹을 시도하기란 꽤 어색한 일입니다. 서로 자주 안아주는 습관이 있어야 가능하지요. 하지만 포옹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리고 약간 어색하더라도 스킨십은 시도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스킨십이 주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죠.
스킨십은 사람을 정서적으로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축구경기를 보세요. 골을 넣었을 때, 동료들이 와서 껴안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만끽합니다. 실수로 골을 넣지 못했을 때에도 동료들이 가까이 와서 등을 두드리고, 손을 스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죠. 90분 이상을 뛰는 축구경기는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고 뜻대로 플레이가 안 될 때에는 몸속에 스트레스가 꾸준히 상승합니다. 이때 스킨십은 그런 긴장을 이완시켜주고 서로에게 위로를 전해주며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죠. 결과적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려 줍니다. 아마 팀워크가 잘 갖춰진 팀들은 스킨십을 자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팀은 스킨십 자체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피부세포는 대략 65만 개 이상의 감각 수용체를 지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수용체들은 부드러운 손길이 닿았을 때, 포옹을 할 때, C-촉각신경(C-tactile afferent)을 활성화시킨다고 알려져 있죠. 여기서 C-촉각신경은 빠른 터치에는 반응하지 않고, 부드러운 터치 때 활성화되는 신경조직입니다. C-촉각신경에서 활성화된 느낌은 척수를 통해 뇌의 시상으로 연결되죠. 그럼 시상은 그 느낌을 해석합니다. ‘어, 좋은 느낌인 걸.’ 그럼 시상하부에서는 옥시토신을 만들기 시작하지요. 온몸에 옥시토신이 퍼지면서 심장박동은 느려지고, 불같은 화는 줄어듭니다. 더불어 스테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 코르티졸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지요.
시험을 망쳤던 딸은 스트레스가 매우 높았을 것입니다. 아빠의 짜증은 기름을 부은 격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화도, 스트레스도 조금씩 가라앉았을 것입니다. 속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많았겠죠. 이때 만약 아이를 다시 꾸짖거나 시험 성적을 따진다면 어떨까요? 파국입니다. 꺼져가는 화의 불길이 다시 거세질 것입니다. 그럼 딸에게 시험을 망친 이유를 차분히 분석하자고 제안할까요?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역시 도움이 안 됩니다. 마음이 다친 상태에서 이성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친 마음을 위로하고 스트레스를 낮추는 것입니다. ‘미안하다’는 진정성 있는 말 한 마디. 그리고 따뜻한 포옹, 곁들이는 달콤한 아이스크림, 그럼 마음은 회복됩니다. 참으로 저비용 고효율의 사과법이 아닐까요? 충분히 마음이 회복하면 그때 문제를 해결해도 늦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 뇌는 발생학적으로 피부, 그리고 신경계와 매우 가깝습니다. 모두 같은 장소인 외배엽에서 형성되는 것이지요. 배아가 3주째가 되면 외배엽은 각각 뇌, 신경계, 피부로 분화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피부에는 수많은 감각 수용체가 만들어져서 신경계를 통해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촉각은 뇌를 자극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은 것이지요.
옛날부터 엄마손은 약손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더 이상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닙니다. 엄마손의 부드러운 터치는 아이의 옥시토신 분비를 늘리고 스트레스와 고통을 줄이는 좋은 약이었던 것이죠. 실제 관찰 결과도 있습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존무어스 대학 연구팀에서 진행한 연구를 보면 스킨십이 지닌 의학적인 가치가 확인이 되죠. 이들은 피검사를 받고 있는 아기의 뇌를 관찰했습니다. 바늘로 찌르는 고통을 아기들이 당한 것인데요. 이때 아기들을 토닥거렸더니 고통이 40%나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토닥거리는 속도도 측정했는데 초속 3cm였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아주 부드럽게 만져주었던 거죠.
10대들의 머릿속은 늘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곧 독립해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치열한 입시경쟁에 놓여 있기 때문이죠.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 친구들도 꽤 많습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죠. 자, 여기 저렴하지만 효과가 좋은 약이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 마디, 가벼운 포옹, 부드러운 손길이 그것이죠. 시간도 돈도 들지 않는 아주 좋은 방법이죠. 게다가 스킨십은 상호적입니다. 나의 부드러운 손길은 상대에게도, 또 나에게도 평화의 옥시토신을 만들어 줍니다.
오늘 하루 자녀와 스킨십은 몇 번?
갑자기 하려면 어색하니 천천히 시도하세요.
스킨십을 하려니 애가 밀친다고요?
먼저 신뢰부터 쌓으세요.
자기한테 잔소리하고 비난하는 사람한테 누가 안기겠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부부 사이에 스킨십 중요해요!
애들 앞에서 가벼운 포옹 적극 찬성입니다.
단, 너무 진하면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