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으로 배우는 첫 심리학 수업
18세기 영국 북부 요크셔의 한 시골 마을. 바람이 쉼 없이 불어서 나무들도 잘 자라지 못하는 이곳에 폭풍의 언덕이라는 저택이 있다. 이곳의 주인은 언쇼 일가. 언쇼와 그의 부인, 그리고 아들 힌들리와 딸 캐서린이 여러 하인들을 거느린 채 한적하고 단란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언쇼는 리버풀에 다녀오면서 한 사내아이를 데려왔다.
“여보, 여기 이 아이 좀 봐요. 마치 악마의 선물처럼 얼굴이 까맣지요. 당신은 이 아이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겨야 해요.”
아내는 언쇼에게 무슨 작정으로 떠돌이 아이를 데려왔느냐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언쇼의 설득으로 아이는 힌들리, 캐서린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언쇼는 아이의 이름을 히스클리프라고 지었다. 먼저 죽은 자식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언쇼의 아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몹시 싫어했고 그를 못 살게 굴었다. 그 집의 하인들도 대체로 히스클리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다만 언쇼의 딸 캐서린만큼은 히스클리프를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어느새 누구보다도 친한 사이가 되었다.
언쇼는 히스클리프를 이상하리만큼 아꼈고, 아들 힌들리가 그를 못살게 굴면 무척 나무라기까지 했다. 세월은 흘러 언쇼는 늙고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힌들리는 대학에 입학했고 그동안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함께 자라며 둘도 없는 친구, 아니 영혼을 나누는 단짝이 되었다. 힌들리가 대학에 간 지 3년 후, 이번에는 언쇼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힌들리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폭풍의 언덕으로 돌아왔고 곧 저택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그는 이미 결혼을 했는지 아내까지 데리고 왔다.
힌들리의 아내는 폭풍의 언덕에 올 때 임신해 있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녀는 아들 헤어튼을 낳다가 죽고 만다. 아내를 잃은 힌들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술을 입에 달고 살면서 망나니처럼 굴었다. 사람들의 발길은 끊겼고 하인들도 폭풍의 언덕을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힌들리는 집안을 전혀 돌보지 않았고 히스클리프를 하인처럼 부리며 학대했다.
다행히 히스클리프에게는 캐서린이 있었다. 힌들리의 학대가 심해질수록 두 사람 사이는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다. 히스클리프는 떠돌이 처지로 캐서린과의 결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캐서린은 스러시크로스 저택 주인인 애드거의 청혼을 허락한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히스클리프를 남겨둔 채 말이다. 캐서린은 유모에게 말했다.
“언젠가 천국에 간 꿈을 꿨지. 내가 땅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엉엉 울었더니 천사들이 나를 폭풍의 언덕에 있는 숲 한복판에 내던지더라고. 나는 너무 기뻐서 잠에서 깼어. 에드거와의 결혼도 똑 같아. 오빠가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만 않았더라면, 에드거와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을 거야. 내가 얼마나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는지 그는 모를 테지. 그가 잘나서가 아니야. 그는 나 이상으로 내 자신과 닮았기 때문이야.”
모진 박대를 당하면서도 폭풍의 언덕을 떠나지 않았던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결혼 소식을 듣고 깊은 상처를 안은 채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3년 뒤, 히스클리프는 돈 많은 신사가 되어 다시 ‘폭풍의 언덕’으로 돌아온다.
다시 돌아온 히스클리프.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뜨겁게 환영한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히스클리프가 아니었다. 캐서린을 여전히 사랑했지만 그의 마음은 힌들리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과 애드거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아내를 잃고 폐인이 된 힌들리에게 일부러 접근한다. 사업가로 변신한 히스클리프는 힌들리를 도박으로 파멸시킨 후, 폭풍의 언덕을 손에 넣는다. 또한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을 하인으로 부리면서 지난 날 당했던 수모를 철저히 복수한다.
그의 다음 목표는 캐서린의 남편 애드거. 히스클리프는 영혼의 단짝 캐서린을 빼앗아간 애드거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애드거를 괴롭히기 위해 애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한다. 철없던 이사벨라는 말쑥하고 남자다운 히스클리프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겨 그와 결혼한다.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오로지 복수할 생각으로 마음에 없는 결혼을 했을 뿐, 이사벨라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사벨라는 뒤늦게 히스클리프의 의도를 눈치 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히스클리프는 그 후로도 스러시크로스 저택을 찾아가 캐서린을 만나며 애드거를 괴롭혔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반기면서도 한편으로 괴로워한다. 그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남편 애드거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캐서린은 심신이 쇠약해진 탓이었는지 딸 캐시를 낳다가 끝내 숨을 거둔다. 영혼의 단짝, 캐서린이 세상을 떠나자 히스클리프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고 그의 복수는 더욱 잔혹해졌다.
히스클리프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이사벨라 사이에서 태어난 린튼이었다. 이사벨라는 자신이 히스클리프에게 속았다는 걸 깨닫고 홀로 아이를 키우다 병을 얻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사벨라의 오빠, 애드거는 조카 린튼을 데려다 키우려 했었다. 철천지원수인 히스클리프의 자식이었지만 죽은 여동생의 아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친권자인 히스클리프가 어느새 눈치 채고 린튼을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히스클리프가 아들을 데려간 것은 결코 린튼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병약한 린튼을 이용해서 악마라도 된 듯 몹쓸 계략을 세우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 린튼이 성년이 되고 캐서린이 남기고 간 딸 캐시도 성숙해졌다. 히스클리프는 아들 린튼에게 캐시를 꼬드기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캐시는 히스클리프의 꼬임에 빠져 린튼과 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얼마 후, 병약한 린튼은 아내 캐시를 남기고 죽는다. 히스클리프는 자기 아들 린튼이 죽어 가는데도 의사를 부르기는커녕 약 한 번 제대로 쓰지 않는 잔인함을 보인다. 이미 캐시의 아버지 애드거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 버린 후였다. 마침내 스러시크로스 저택마저 히스클리프의 차지가 되고 그의 처절한 복수는 끝이 난다.
복수는 끝났지만 히스클리프는 공허했다. 그는 매일 밤 캐서린의 영혼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날 쓸쓸히 숨을 거둔다. 영혼의 동반자, 캐서린을 따라 세상을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