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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작가 Sep 12. 2023

1. 엄마가 울던 날

 감은 눈 위로 햇살이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이던 어느 날 오후였다. 영화관 매니저로 일하던 난 전날 밤 근무를 마치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와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었다. 나른한 단잠에서 빠져있던 그때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괴성이 들렸다. 과거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었던 느낌의 불길한 소리였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 예상대로 괴성을 지른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수화기를 든 채 울고 있었다. 치맛자락을 꽉 잡은 손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엄마가 울고 있다.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가슴 가득 불안감이 차올랐다.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소리로 엄마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불길한 예감. 듣고 싶지 않은 마음과 확인해야 하는 현실 앞에 목소리가 떨렸다.

“큰 이모가… “

큰 이모. 엄마의 큰 언니. 엄마보다 9살이 많은 첫째 이모다.

“이모가… 왜?”

침묵.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어린 시절 나와 동생, 그리고 둘째 이모의 아들인 이종 사촌, 이렇게 셋이 함께 잠든 이모를 바라보며 키득거리던 장면. 이모는 초저녁잠이 많았다. 어린 우리도 반짝 깨어있는 시간에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누워버리는 이모의 모습이 어린 우리의 눈에는 너무 웃기게 비쳤다. 이모는 오늘은 기필코 드라마를 사수하겠다며 TV 앞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언제나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 잠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런 이모를 흔들어 깨우다가 안 되면 장난기가 발동했다. 우린 잠든 이모에게 말을 시켰다. “이모 니 뭐하노? 큰 일 났다. 지금 밖에 비 오고 난리다.” 이러면, 이모는 눈도 뜨지 않고 대답을 한다. 잠결이라 몽롱한 어투로, “비 많이 오나. 내 빨래 안 걷었는데...” “얼른 걷으라.” “그래, 알았다.” 꽤나 여러 번 대화를 주고받으며 대답을 한다. 하지만 이모는 깬 것이 아니다. 대답만 하고 그대로 잠들어있다. 우린 한 술 더 떠 이번엔 다급한 목소리를 연기를 해본다. “이모! 큰일났다. 불이다! 불!! 얼릉 일나라!” 그럼 또 이모는 잠에 취해서 꼭 술 취한 사람처럼 꼬부라진 발음으로 말을 한다. “하이고 갑니다. 가요.” 이모의 태연한 대답에 우린 웃고 만다.  

 

 어린 시절 이모는 하지 말라는 것이 많은 여느 어른들과 달리 우리가 뭘 하던 다 받아주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화장실을 벌컥 열어젖히는 짓궂은 장난에도 허허 웃어넘기고, 엄마 몰래 학원 숙제를 대신해주던 이모. 동요든 가요든 가리지 않고 모든 노래를 교회 성가처럼 과장된 바이브레이션을 넣어 부르던 이모. 우리와 뒹굴고 놀다가 웃음이 터지면 가랑이를 잡으며 “아이고 오줌 나온다, 그만 웃겨라.” 하던 이모. 여름방학이면 대구에서 대전에 있는 우리 집까지 찾아와 내 생일상을 차려주던 이모. 길쭉한 몸매로 사근사근 걷던 이모. 외출할 때는 꼭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껌을 씹던 이모. 얼굴이 하회탈처럼 쪼글쪼글 해질 만큼 활짝 웃던 이모. 그런 이모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모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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